일하지 않습니다 - 연꽃 빌라 이야기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2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글재주가 있었다면, 쓸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지 않을까. 

십년, 이십년 후 내 모습은 어떨까? 연꽃빌라의 누구 같을까? 


하이텐션으로 천재냄새 풀풀 풍기는 작가들의 책들을 읽어나가다가 오랜만에 한문장, 한문장 내꺼 같은 책을 읽었다. 

내가 그 동안 서재에 끄적이다 말았던 많은 이야기들에 뭔 소리야?했다면, '이게 나에요' (무슨 뒤라스 책 제목 같네;) 라고 이 책을 건네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지향하는 삶은 점점 무레요코의 책 속 인물들과 비슷해진다. 아니, 예전에는 '지향' 이라고 말했을지 모르지만,지금은 어느정도 일체화되고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깐, 더 다듬으면. 


저금생활자라고 하면 거액의 예금이라도 있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실상은 한 달 생활비로 10만 엔밖에 쓸 수없는, 마치 외줄 타기와 같은 생활이다.그러나 교코는 그 생활이 즐거웠다. 즐겁다고 해서 매일이 천국 같았던 것은 아니다. 장마 때 는곰팡이나 민달팽이, 한여름이 되면 모기 군단의 습격을 받는, 집에서 살지만 거의 노숙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야생의 기운이 넘치는 나날이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음. 나랑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감성이 똑같다.고 느낀다. 


그러던 중 연꽃 빌라를 관리하는 친절한 부동산 영감님이 너무나 고맙게도 창문에 방충망 다는 공사를 해줬다. 게다가 하는 김이라며 창틀에 설치하는 방식의 에어컨까지 달아줬다. 이것 덕분에 폭염도 극복할 수있었던 것 같다. 교코에게는 그 무엇보다 고마웠다. 그로 인해 운치 있는 나무창틀이 없어지고, 연꽃 빌라만의 케케묵은 멋스러움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새시 색깔 그대로가아니라 짙은 밤색으로 해 줘서 그나마 알루미늄 특유의 번쩍번쩍한 느낌이 조금 덜했다. 

전에는 비 오는 날이면 나무틀이 물기를 빨아들여 버려 창을 여닫기 힘들었다. 물론 맑고 습기없는 날에는 놀라울 만큼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것도 이 오래된 빌라에 사는 재미 중 하나라고 여겼는데, 실제로는 쾌적한 생활을 반겨 버린 자신에게 교코는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아직 한참 멀었구나 하고 반성하면서도 방충망 달린 창문이 좋아서 괜히 몇 번이나 여닫곤 했다. 


딱 이부분. 두번째 페이지에 나오는 글. 창문 이야기. 부터 완전 빠져들어 읽었다. 


교코와 나의 결정적인 차이라면 먹을 것에 신경 쓰는 교코와 먹을 것은 이 생에서 포기한 나다. 이런 생각을 상당히 굳게 오래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전 어떤 계기로 먹을 것에 신경쓰겠다. 고 선언하기도 했다. 


연꽃 빌라 이야기는  '지진'에서 시작된다. 큰 지진이 나자 연꽃 빌라에 사는, 연꽃 빌라를 아는 모두는 연꽃 빌라가 무너졌을꺼라고 걱정한다. 여행가가 직업인(?) 고나쓰는 여행에서 돌아와 '무너졌을꺼라고 생각했어요' 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지진이 나자 부동산 할아버지가 연꽃빌라가 무너졌을까봐 눈썹이 휘날리게 자전거를 타고 와서 빌라 벽을 밀어보며(??) 빌라의 안전을 점검(?)하기도 한다. 


두번째 이야기는 교코 옆방에 새로 들어오는 지유키. 키가 180센티미터에 얼굴이 조막만한 미대를 나온 젊은 그녀는 여러모로 독특하다. 연꽃 빌라에 합류한 그녀의 이야기와 새로운 사람에 적응하는 교코네 이야기도 재미있다. 


키가 큰 지유키 씨는 어떻게 해도 눈에 띄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에게 집중됐다. 그들은 분명 '대체 이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일까?' 하고 신기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고는 틀림없이 '모델일 거야.'하고 생각하겠지. 게다가 지진때문에 모두가 무너졌을 거라고 생각한,연꽃 빌라의 주민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상상하는그대로보다는 가끔은 반전이 있는 쪽이 훨씬 재미있구나.' 


내일의 스케쥴을 확인하고, 해결해야 하는 일의 순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행복한 것인지아닌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누군가에게 재촉당하거나 뭔가에 쫓기거나 하는 생활은 아니라는 것 뿐이다. 



무레 요코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봐서 그런지, 등장인물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교코, 구마가이, 지유키.. 


못생김을 덜하게 하기 위해 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한 교코는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 들른 찻집에서 자수를 하는 여자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교코는 자수를 시작하기로 한다. 


교코가 자수에 도전하는 이야기는 굉장히 현실적이고,(이렇게 쓰면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작가의 특징이고) 그런 그녀가 도움 받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는 굉장히 따뜻하다. 


교코가 '일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연꽃빌라에서 살면서 겪는 일들, 그녀의 소소한 머릿속 생각들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와닿았다. 이럴때면 난 늘 생각한다. 지금 내가 삼십대라서 그런건가, 이십대에 읽어도 그랬을까. 사십대, 오십대에 읽으면 어떨까. 그 외에도 내가 결혼을 했다면, 내게 아이가 있었다면, 내가 회사를 다녔다면, 내가 가게를 했다면 .. 등등의 수많은 뭐뭐 했다면의 가정들도. 뭐 그렇게. 생각하다가 뭐뭐였다면 이란 가정이 쓸데없음을 깨닫고 말지만, 요즘 책 읽을때마다 늘 반복하게 된다. 


무레 요코 등장인물 중 하나를 고른다면, 나는 카모메와 빵과 고양이와 스프가 있는 풍경을 합해 놓은 것 같은 것을 원하고 좇지만, 아마 지금으로서는  '수박'의 에로만화가 같은 포지션일 것 같다. 


이십대에 더 높은 연봉, 더 높은 인센티브, 더 빠른 승진을 보고 달렸던 내가 되게 낯설게 느껴진다. 


일도 해보고, 일하지 않는 것도 해보고, 일하는건지 안 하는건지 모르는 것도 해본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대부분의 경우,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리고 일하는 중에 힘들다는 건 알지만,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 시간이 하루종일이건, 하루에 십분이건간에 말이다. 


꽃도 사고, 자수같이 안 하던 것도 해보고,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고양이랑 놀고, 책도 읽고, 산책도 하는 그런 시간들. 

가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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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5-03-20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소중한 이야기. 오랜만에 빵과 스프와 고양이가 있는 풍경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