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건망증, 문학적으로 기억력이 완전히 감퇴하는 고질병이 다시 도진 것이다.
그러자 깨달으려는 모든 노력, 아니 모든 노력 그 자체가 헛되다는 데서 오는 체념의 파도가 휘몰아친다.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그림자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도대체 왜 글을 읽는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지금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책을 한 번 더 읽는단 말인가?
모든 것이 무로 와해되어 버린다면, 대관절 무엇 때문에 무슨 일인가를 한단 말인가?
어쨌든 언젠가는 죽는다면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88쪽
그러나 혹시-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 본다- (인생에서처럼) 책을 읽을 때에도 인생 항로의 변경이나 돌연한 변화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도 있다.
의식 깊이 빨려 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직접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이 병은 축복, 거의 필수적인 조건일 수 있다.
그것은 위대한 문학 작품이 꼼짝못하게 불어넣은 경외심 앞에서 그를 지켜주고, 표절의 문제도 복잡하지 않게 해준다.
그렇지 않다면 독창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