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oonnight > 잔인했던 나를 후회하며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도너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있는 찰리 고든은 서른을 넘은 나이이지만 지능은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엄마와 누이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하고 조금이라도 더 영리해지기를 기원한다. 그렇게 되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고 친구들도 더 좋아해 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정말 기적같은 제안이 들어온다. 뇌수술로 그를 천재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SF적인 발상으로, 수술받기를 선택한 찰리가 스스로 쓰는 보고서 형식을 띠고 있다. 어린아이의 맞춤법으로 서툴게 써내려가는 글들이 어느 순간부터 어렵고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내용이 되어간다. 그와 함께 찰리의 내부에서 저능아 찰리와 천재 찰리가 분열된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장면들도 오버랩된다. 이전에는 몰랐던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과 잃어버린 자아에 괴로와하던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실험쥐 앨저넌에게 변화가 생겼음을 알게 된다. 퇴행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실험대상에서 주체적 실험자로 자리를 바꿔 행한 연구에서 찰리 자신역시 그 과정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보고서는 서서히 처음의 어린아이와 같은 맞춤법과 내용으로 바뀐다.

마치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무대 이쪽 찰리의 대사가 끝나면 불이 꺼지면서 반대쪽 창문안의 찰리를 비추고.. 이런 상상을 하며 글을 읽었다.

꽤 오래전에 어딘가에서 서평을 읽고서 주문한 책이다. 읽을 책들이 줄을 서 있는 관계로 이제서야 집어들게 되었는데.. 약간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던 느낌과는 달리 근무 틈틈이 읽던 책을 덮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천재가 되면 친구도 더 많이 생길 것이고 더욱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바보에서 천재가 된 그를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멀리했다. 예전에 그를 보며 자신의 우월함에 자부심을 느꼈던 사람들은 이제 찰리로 인해 스스로가 오히려 모자란 사람임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웠던 거다.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교수에게 찰리는 절규한다.

 

그렇게 나를 창조해 낸 듯 생각하지 말라고.

바보였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인간이었다고.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국민학생이었을 적, 나의 반에도 찰리 고든 같은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코가 묻어있는 얼굴로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리지 못해 가끔은 옷에도 실례를 해서 온 반에 냄새가 풍기기도 했었다. 힐끔거리고 수군거리는 아이들 속에서 항상 무표정한 얼굴의 그애. 당연히 함께 놀아주는 친구가 없어서 그애는 늘 혼자였다. 어느 일요일이었나, 엄마가 친구가 왔다고 해서 나가보니 문앞에 그애가 서 있었다. 나는 당황했고 왜 왔어? 내뱉고는 쑥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한참을, 지금 기억으로는 몇 시간을 그 아이는 문앞에 서 있었고 나는 집안에 숨어서 훔쳐보다 그애가 어느 순간 없다는 걸 알고는 안도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그애를 무시했고 얼마 후 그 아이는 전학을 갔던가 아니면 학년이 바뀌었던가..

책을 읽으며 난 내내 그 아이를 떠올렸다.

아무에게도, 한 번도 털어놓지 못한 이 이야긴 철들며 내 마음속 한 구석에 늘 어둡고 무거운 기억이었다. 그 아인 어떻게 우리집을 알았을까. 그 아인 왜 나를 찾아왔을까. 무슨 할 말이 있었던 걸까.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의 마른 몸과 하얀 얼굴. 아무말 없이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던 그 눈은 흐릿한 영상이지만 확연히 남아있다.

나와 다른 사람. 몰개성적이고 획일화된 기준에 의해, 나보다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어렸고, 그만큼 무지하고, 이기적이고 또 잔인할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지금의 내가 과연 더 나은가 생각하면 두렵다. 내가 아무리 착한 척, 좋은 사람인 척 해도 조금 더 사회적으로 포장되었을 뿐 내 안에 든 나는 그 어린 시절, 문앞에 서 있는 아이의 면전에서 등을 돌리고 마는 야멸찬 인간이 아닐까. 나 역시 그 애가 나와 똑같은 사람이란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다. 그 때는. 

번역후기에서, 머리가 좋아진 후 그가 처음 읽은 것이 "로빈슨 크루소"이고 퇴행이 시작되고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돈키호테"임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천재의 지능을 가지고서 결국 얻은 것이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고독과 모든 것의 덧없음이란 것.

고독한 천재보다 행복한 바보가 낫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라면 난 공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가끔 저렇게 살아서 뭐해. 바보로 살 바에야 첨부터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았겠는걸. 이라고 말하기 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겠다. 타인을 동정하거나 그들의 인생을 정의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는 걸. 내가 함부로 내뱉는 말 한 마디가 내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편견을 보여 줄 뿐이라는 걸.

이 책이 1959년에 처음 씌어졌다는 사실은 놀랍다. 최근까지도 tv며 영화, 연극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건, 시대를 초월하는 공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겠지. 원제는 <flowers for Algernon>인데.. 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은, <빵가게 찰리.. >보다는 원제 쪽이 훨씬 더 애틋하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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