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 vs 찰튼

1989.3.21

이제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이 책의 첫 부분에 등장했던 불안한 소년은 사라졌다. 이십대 시절 내내 자신을 비꼬던 젊은이도 없어졌다.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어리다거나 젊다는 것을 핑계 삼아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해명할 수 없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 삶과 내 주변 사람들의 삶에 축구가 미치던 절재적인 영향력은 이해하기도 힘들고 호감도 가지 않는 것으로 변했다. 오랜 세월 동안 나 때문에 기운 빠지는 일들을 겪어온 가족과 친구들은, 어떤 약속이든 결국은 축구경기 날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들은, 다른 가정에서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우선권을 가지는 세례식이나 결혼식이나 그 외의 모임을 나와 상의한 다음에야 계획할 수 잇따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축구는 결국 견디며 살아야 하는 장애 같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내가 만일 휠체어를 타야 하는 처지라면 내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서 행사를 열 계획은 하지 않을 테니, 축구 시즌 중의 토요일 오후에 행사를 열어야 할 까닭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 또한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삶 속에서는 주변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이 사람들은 보통 1부 리그의 경기 일정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고는 싶지만 할 수 없이 사양해야 하는 결혼식 초대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집안에 일이 있다거나 마감이 바쁘다거나 하는,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변명을 대고 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라는 것은 이런 상황에 적절하지 못한 변명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리 알 수 없는 무슨 컵의 재경기, 주중의 경기 재편성, 텔레비전 방송 일정에 맞추어 경기 직전에 날짜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는 경우 등이 있으므로, 나는 실제로 경기 일자와 겹치는 행사뿐만 아니라 경기 일자와 겹칠 가능성이 있는 행사의 초대까지도 거절해야 한다. (혹은 내가 어떤 행사를 주관하게 되면, 관련자 모두에게 마지막 순간 내가 빠져야 할지도 모른다고 미리 말해 두지만, 잘 먹혀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때때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피할 수 없다. 이날 찰튼 전은 일정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아주 친한 친구의 생일 파티, 그것도 딱 다섯 명만 초대받은 생일 파티와 겹치게 되었다. 일단 두 가지 이해관계가 상충할 것을 알고 나자, 나는 나 없이 홈경기가 열릴 것을 생각하는 동안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친구에게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 사연을 털어놓았다. 웃으며 괜찮다는 반응이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그녀의 음성과 거기에 실린 실망감과 지긋지긋한 짜증에서 절대 그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대신 그녀는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해." 혹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는 식의 무서운 말을 했다. 그것은 나의 정체를 드러내놓는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나는 생각 좀 해보겠다고 대답했지만, 그 대답으로 내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을 것이며, 나는 쓸모없고 천박한 벌레만도 못한 존재임이 밝혀졌음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나는 결국 축구를 보러 갔다. 나는 경기를 보게 되어서 기뻤다. 폴 데이비스가 하이버리에서 내가 본 골 중에서 가장 멋진 축에 속하는 골을 넣었던 것이다. 찰튼의 공격수를 뒤따라 그라운드를 날쌔게 횡단하다가 다이빙 헤딩으로 완성한 골이었다.

이런 사건에서는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내가 소속감을 느끼는 대상이 아스날 팀보다는 하이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경기가 크리스털 팰리스나 웨스트햄의 홈에서 있었다면, 그곳 역시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비록 내가 광적인 팬일지라도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무슨 까닭일까? 왜 나는 런던의 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아스날의 경기는 반드시 봐야 하면서, 같은 런던의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아스날의 경기는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요기에 작용하는 판타지는 뭘까? 단 하루저녁이라도 하이버리에 가지 못해서, 행여 리그 순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경기-반드시 재미있다는 보장도 없다-를 놓치게 된다면 큰일이라도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 생각에, 해답은 이렇다. 나는 놓친 경기의 다음 경기를 볼 때, 응원가라든가 관중들이 어떤 선수에 대해 느끼는 반감 등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곳, 내 집 이외에 절대적이고 의심의 여지없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곳이 낯설게 느껴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나는 1991년 코벤트리 전과 1989년 찰튼 전을 놓쳤는데, 그때는 외국에 있었다. 처음으로 홈경기에 가지 못하게 되자 기분이 이상했지만, 하이버리에서 몇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어 그런 대로 참을 만했다. 딱 한 번, 아스날이 홈경기를 하는데 런던 안의 다른 곳에 있은 적이 있다. (1978년 9월에 우리가 퀸스파크 레인저스를 5-1로 이기고 있었을 때, 나는 빅토리아에서 프레디 레이커스 스카이트레인 비행기표를 끊으려고 줄을 서 있었다. 스코어와 상대 팀을 모두 기억한다는 사실로 미루어, 얼마나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때 나는 가만히 서 있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다.

하지만 언젠가는 하이버리에 가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며,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병이 나거나,(하지만 나는 독감에 결렸을 때나 발목이 삐었을 때나 그 밖에 이곳저곳이 아플 때,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하지만 않는다면 어떤 경우에라도 하이버리에 갔다. ) 장차 아이가 처음으로 축구경기를 하거나 학교에서 연극을 할 때나, ( 학교 연극에는 꼭 갈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걸 빼먹을 정도로 미치광이라서, 그 아이가 2025년쯤 햄스티드의 안락의자에 앉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정신과 의사에게, 어린 시절 내내 아버지가 자기보다 아스날을 더 중하게 여겼다고 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든다.) 가족의 장례식이 나, 일 때문에...

그렇다. 경기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생기는 두번째 문제는 바로 일이다. 남동생은 현재 정규 근무시간 외에도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잇다. 지금까지는 남동생이 일 때문에 경기를 놓친 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이번 시즌이나 다음 시즌 중 어느 날, 누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회의를 요청하고 그 회의가 8시 30분이나 9시까지 끝나지 않는다면, 남동생은 머스가 상대 팀 풀백을 괴롭히는 곳에서 3,4마일 떨어진 자리에 앉아 메모지를 노려보고 있게 될 것이다. 아무리 못마땅해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 남동생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참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이유에서, 나는 결코 남동생 같은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일을 하게 된다면, 나도 남동생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쩔 줄 몰라서 미친 듯이 발길질을 하고 입을 내밀고 난리법석을 떨어서, 성인으로서의 생활이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기를 바란다. 작가는 보통 사람들보다 운이 좋은 편이지만, 언젠가 나도 재난에 가까울 정도로 불편한 시각에 어떤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에만 만날 수 잇는 사람과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인터뷰를 해야 할 수도 있고, 마감 날짜 때문에 수요일 저녁에 워드프로세서 앞에 앉아 있어야만 할 경우도 생길 것이다. 제대로 된 작가라면, 작가 여행을 가기도 하고 토크쇼에도 출연하는 등 온갖 위험천만한 일을 하게 되는 법이니, 나도 언젠가는 그런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 책을 발행하려고 하는 출판사 사람들이 제정신이라면, 이런 식의 강박증에 대해 글을 쓰게 해놓고서, 그들의 출판을 위해서 축구를 못 보게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나는 사이코라고요, 그거 기억하시죠?"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다 그런 거라니까요! 난 수요일 밤에는 절대로 낭독회를 할 수 엇ㅂ어요!" 그러면 나는 조금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10년 넘게 봉급쟁이로 살면서도, 경기를 놓칠 수밖에 없는 입장들을 모두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로 우연이나 운 덕분일까?(보통의 경우, 사람들이 사교 생활을 즐겨야 한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던 극동 무역회사의 상사들조차도, 나에게는 아스날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인정해주었다.)그렇지 않으면, 강박증 덕분에 소망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충격적인 것이니까. 만약 정말 강박증 때문이라면, 십대 소년 시절 내가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선택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며, 1968년의 스토크 시티로 인해 나는 사업가나 의사나 진짜 저널리스트가 되지 못한 것이 된다. ( 다른 많은 팬들처럼 나 역시 스포츠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하이버리에서 아스날과 윔블던의 경기를 봐야 할 시간에, 어찌 리버풀과 바르셀로나의 경기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있단 말인가? 또 내가 사랑하는 경기에 대해 글을 쓰면서 많은 돈을 받는 것은 몸서리가 나도록 두려운 일 가운데 하나다.) 나는 운 좋게도 내가 선택한 작가라는 직업 덕택에, 경기가 있을 때마다 하이버리에 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편이 훨씬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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