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받고 싶은 상, 꼭 받고 싶은 상

'김치'라는 글은 2002년 문화일보에서 주관한 김치 엑스포를 보고 나서 쓴 참관기였다. 그러나 그 글 가운데 다음의 대목은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라는 책을 읽고 나서 썼던 오래 전의 독후감이 부분 수정, 인용된 것이다: " 나는 평소에 김치의 매력은 그것이 건강을 시험할 수 있는 리트머스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혈관이나 신장, 위 어느 한 곳이라도 좋지 않은 사람은 김치를 먹을 수 없다. 어느 한 곳이라도 탈이 나서 병원에 가면 의사는 맵고 짠 음식을 피하라는 처방을 내리기 일쑤고, 그것은 바로 김치를 금하는 것이다. 더 말해서 무엇하랴. 고작 입천장이 헐어도 맛나게 먹을 수 없는 것이 우리집의 주치의인 김치인 것이다." 1995년에 그 글을 써 놓고 나서 나는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도대체 우리나라에는 김치협회도 없고, 김치제조업조합도 없는가? 저런 문장을 보았다면 응당 '김치예찬 감사패' 같은 것 하나쯤은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는가?

재치 약간, 뻔뻔스러움 약간, 귀여움 약간을  억지에 잘 버무린 위와 같은 문장을 보니 알라딘의 어떤 분이 떠올랐다.

취미

루소 이후 서양에서 활약했던 지식인들의 위선과 모순을 적나라하게 추적한 [지식인들]이라는 제하의 두 권짜리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 나면 마르크스나 브레히트, 사라트르와 같은 지적 거장들에 대한 존경심이 일순에 가신다. 저자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 책의 얄미운 요지는 생생히 기억한다:"지식인들은 보편적인 인간은 사랑하지만 구체적인 인간은 사랑하지 않는다. " 다시 말해 지식인들은 수천 년 전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동원되었던 노예의 인권이나 아무런 혈연도 없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기아에 대해서는 게거품을 물지만 현재 자신의 주위에 살아있는 부모나 형제, 배우자, 자식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평생을 괴롭히는 이중인격자라는 것이다. 공동체의 이익과 선을 생각하는 지성인과 달리 지식인은 저 자신의 영달과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는 무리라는 80년대식의 의식화를 상기하면서 "당신이 방금 말하신 그 지식인은 지성인을 잘못 말하신 것이겠지요?"라고 말장난을 뇌까리며 덮은 그 책의 요지를 취미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떠올리는 까닭은 복잡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 무취미한 인간이 이런저런 취미를 가진 인간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바둑이나 낚시, 등산 등등의 취미에 빠진 인간이 제대로 가족구성원 노릇을 하는 걸 아직 못 봤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현관 앞에 군화가 놓여 있는 것을 봤다. 첫 휴가를 온 외사촌 동생이었다. 처음에는 " 흠, 용돈을 5만원 주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 외삼촌으로부터 받은 용돈이 얼만데. 그러나 좀 있다가 생각이 바뀐다. " 새로 나온 누구의 CD를 사야하는데." 그래서 2만 원이 깎이고, 좀 있다가 1만 5천원이 다시 깎이고 한 30분 뒤에는 "에이, 돈도 없는데 다음에" 함녀서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 버린다. 취미에 빠진 사람에 의해 그의 가족이나 친구가 착취당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들은 자기 취미 속에 빠지기 위해 늘 " 다음에" 하면서 달아나 버린다. 낚시광들의 '주말과부' 는 그렇게 해서 생긴다.

 

 

 

 

 

장정일의 독서가 보이는 글이다. 음악과 독서라는 취미로 주위 사람들을 꽤나 외롭게 하나보다.

[독서일기] 1권 자서

어린 시절의 내 꿈은 이런 것이었다.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 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 누가 이것을 소박한 꿈이라고 조롱할 수 있으랴. 결혼은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도 없이, 다만 딱딱한 침대 옆자리에 책을 쌓아 ㄴ호고 원 없이 읽는다는 건 원대한 꿈이다. 그러나 나는 재수 없게도 공무원이 되지 못했을 뿐더러, '행복한 저자' 역을 맡지도 못했다. 시인, 소설가라는 꿈에도 원치 않았던 개똥같은 광대짓과 함께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하고자 머리말을 짜내고 있는 나는 '불행한 저자'이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이 세상에 없는 책이다. 에를 들어 내가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내가 읽어보지 못했으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톨스토이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그 책을 읽어야 한다.

위와 같은 꿈을 가졌을법한 사람을 나 말고 한 명 정도는 더 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1. 대구 하면 장정일이 떠오르게 되었다.

2. 작가가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건 아마도 ' 음주 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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