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스의 산 2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정다유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기대가 무척 큰 작품이 그 기대를 넘어서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마크스의 산>이 그렇다. 아마 평범한 일개독자인 나의 상상력과 기대가 작가의 커다란 이야기와 그림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5년이 넘게 위시리스트에 있었던 작품이 손안의책에서 새로 출간되었다. 당장이라도 읽어치울 것 같았지만, 하루면 읽을 줄 알았던 상,하권 두권의 책을 일주일 가까이 붙들고 있었다. 전작인 <황금을 안고 튀어라>를 읽다읽다 포기한 독자들이라면 이 책 역시 그 과인가.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독성과 재미는 리오우>마크스의 산>황금을 안고 튀어라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확실히 재미도 있고, 잘 읽혀 나가는데, 문장을 읽고 또 읽고 씹어 읽게 되니, 천천히 읽게 된다. 그러니깐 내 경우에는.

이 책은 경찰소설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경찰소설을 좋아해서 찾아 읽는 편인데, 이 작품은 그간 읽어왔던 경찰물 중에서도 단연 탑2에 들어갈 것이다. 고다형사를 중심으로 사건을 좇는 7계의 모습은 얼마나 실감나는지.

하루가 끝나고 남은 것은, 아무런 성과 없이 아오야마 장례식장에서 시간을 죽인 히고 일행의 찌푸린 얼굴, 자기라면 더 잘 햇을 거라 말하고 싶은 듯한 모리의 불만 가득한 얼굴, 이놈이나 저놈이나 바보들만 모였다는 아즈마 페코의 김이 샌 얼굴, 본청 팀에게 덮어놓고 몰아세워진 관할서 수사 요원들의 불쾌한 얼굴, 그리고 변함없이 바싹 마른 숙주나물 같은 하야시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284-   

각각의 인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 그들간의 애증, 자신과 조직에 대한 회의, 경멸. 다른 무엇보다 '사건'위주로 돌아가는 그들의 피폐한 삶. 범인을 찾고, 범죄를 막는 것이 그들의 일인데, 인간 세상의 범죄와 인간이 만든 법이라는 것이 그리고 그 법을 운용하는 '인간'이라는 것이 믿을 것이 못된다.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생활을 하기 위한 '신념'을 받쳐주는 것들이 연약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썩을대로 썩고, 과연 이렇게 삶을 불태우고 나서 한줌 재라도 남을까 싶은 그런 안쓰러운 삶이다.  

탐정소설에 등장하는 멍청한 경찰같은건 없다. 각각의 인간적 단점을 가지고 있고, 실수를 하기도 하고, 완벽한 것 이상을 하지 못했던 것에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명석하고,직관적이며, 집요하고, 경쟁적이다.  

이 책을 읽는 몇가지 포인트가 있다. 사실,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그것이 뭐라도 주의깊게 읽을 가치가 있는데, 첫째로 위에 이야기한 경찰 각각에 대한 이야기, 둘째로 조직의 알력.정계,재계와 검찰청, 그리고 현장의 부딪힘. 고다형사는 중간엘리트로 현장을 담당하는 수사과장과 형사들 사이를 잇느라 힘들고, 수사과장은 나름대로 현장과 커리어들 사이를 중재하느라 힘들다.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이들이 경찰이라는 하나의 조직이라는 것은 이상하다.고 고다가 그랬던가. 셋째, 고다 형사의 친구이자 전매부는 이혼한 아내의 쌍둥이 남자형제이다. 검사로 일하는 그와 고다는 대학시절 등산친구였다. 이들의 관계가 미묘하다. 서로의 모습에서 여동생과 전아내의 모습을 보는지도 모르겠고, 검사와 형사라는 위치에서 정보를 나누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굉장히 애잔한 관계다. 고다가 '애달프다' 라는 말을 이 책 통털어 두 번 정도 사용한 것 같은데, 고다라는 남자와 어울리지 않는 이 '애달픈' 감정은 모두 이 남자에게 쓰여진 표현이다.  

넷째, 산. 제목에도 들어 있는 '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중요한 장치이자 역할을 한다. 마크스의 산도 히로유키의 산도 고다의 산도..그 중 고다의 산은 이야기와는 그리 관계없을지 모르지만, 인상깊었다. 이 책을 목숨걸고 산행한 사람에게 추천하기는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젊은 시절, 목숨 걸고 미친듯이 산행에 빠졌던 아빠가 떠올랐다. 그렇게 산을 오르는 심리, 그렇게 혼자 나아가게 하는 힘. 산을 타는 것은 좁은 것인가, 넓은 것인가. 산은 밝은가, 어두운가.

다섯째, 범인. 우리는 미드와 일드와 뉴스로 '사이코패스'라는 단어에 어느정도 무뎌져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 범인을 사이코패스.라고 분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아닐지도), 어느 정도 스테레오 타입을 가지고 있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의 모습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적어도 나는) 근데, 이 작가, 이 범인의 마음 속을 파고든다. 감정이입이라던가, 미화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선과 악의 판단을 '법'에 근거하여 내리기는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코인로커앞 어떤 장면에서 나는 그의 모습과 독백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독자에 따라 이 어두움에 대한 우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종국에는, 범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이는 상황 앞에서, 혼란스럽고,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린다. 고다와 7계의 형사들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나도.  

마지막 책장의 여운을 가슴에 담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간다.
이번엔 좀 더 그들을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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