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의 <일인칭 가난> 글 정말 잘 썼다. 좋은 책이다. 기회 될때마다 말하고 다녔는데, 같은 출판사인 마티에서 나온 길쭉한 책 시리즈인가, 이 책도 정말 잘 읽었다.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돌봄도, 간병도, 양육도 책에서만, 뉴스로만, SNS에서만 보고, 아직 내게 직접적인 이슈 아니라서 어느 정도 거리 두고 읽게 된다. 살다보면 결국 언젠가 내게 직접적으로 영향 끼칠 것이 분명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관심 있는 주제라서 관련 도서들을 꾸준히 읽고있다. 이 책은 '백혈병 걸린 아이를 간병 돌봄을 위해 일을 그만 둔 여성' 의 이야기로 나와 맞닿아 있는 부분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읽고 나니, 내 이야기 아닌데, 내 이야기같이 느껴지는 그런 몰입을 할 수 있는 글이었다. 


독박 양육도, 남편 부모 모심도, 남편 돌봄 이야기도 답답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혹은 그런 현실이고,   

가족 안에서 엄마가, 아내가 어떻게든 현실을 이어가고,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들 흔하고, 

가족 중에 누군가가 갑자기 병에 걸려 가족이 무너지고, 다시 이어가는 이야기들도 많다. 이 이야기도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 하나이다.


혼자 살면 나이 들어 외롭지 않냐, 명절 때 외롭지 않나(그럴리가) 이런 글들을 보면서 이 책을 읽었는데, 정말 외로운건 둘인데, 혼자 있게 만들어서 외로워지는 것이 진짜 사무치게 외로운거 아닌가 싶었다. 양육을 하면 남편이 아내를 진짜 외롭게 만드는 것 같다. 아픈 아이를 양육하면서는 그게 더 극대화되고. 


그는 결코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좋은 자질과 유능함을 돌봄에서는 발휘하지 않는 걸까? 고의인가? 생각해보면 내가 직장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출근 준비 때문에 새벽잠을 설친다는 그의 불평에 나는 다음 날 입을 옷까지 전날 밤에 미리 챙겨놓고 닌자처럼 집을 나섰다. 내 하루의 시작보다는 아침에 윤이를 챙겨 등교시킬 그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쌓이지 않기 힘들겠다 싶다. 그런 마음들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설명해보려 하고, 합리화해보려 하고, 개선시켜보려 하는 애쓰는데, 답답함을 넘어서 진짜 이번 생에는 답이 없구나 싶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을 정치로 '사랑의 돌봄'을 '정치'로 해결해보고자 계속해서 자신이 겪어내고, 겪고 있는 날 것의 경험들을 기반으로 한 화두를 던진다.  


나는 좋은 시터를 찾자고 했다. 아이 아빠는 내게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곧 화가 났으며 종내 슬펐다. 내가 마약판매상도 아닌데 아무리 남편이라도 내게 일을 그만두라고 먼저 말할 권리는 없다. 심지어 근무시간 대비 수입, 복리후생, 4대보험 가입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면 내가 아니라 그가 사업을 접고 아이를 보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108)


아이가 아프면, 남자 직장에서는 병원비 벌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겠네. 하고, 여자 직장에서는 그만둬야겠네. 한다. 


인정투쟁의 개념을 적극 확장한 악셀 호네트는 사람은 인정받지 못하면 분노하고, 그 분노로 사회적 투쟁에 나설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여자사람'은 인정투쟁에 실패했을 때 분노 대신 불안을, 자신의 존재가 지워질 것이란 두려움을 느낀다. 이 두려움은 기어이 자기희생을 감내하게 만든다. 엄마의 고통과 희생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강요된다. 희생의 당사자와 목격자, 수혜자 모두 고통에 무감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받는 데 실패하면 여성은 제일 먼저 희생의 강도를 높인다. (114)


그러니 여자로 태어나 '자기희생'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돌봄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지고, 과거처럼 개인을, 가족내의 한 성별을 갈아서 이어지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돌봄을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공짜 노동으로 여기는 마인드를 뿌리 뽑아야 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고, 돌봄 또한 그러하다. 생애주기동안 내가 주는 쪽이건, 받는 쪽이건 돌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기 위해 정치가 앞서가야 한다. 정치가 앞서갈 수 있도록 시민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 교육이 든든한 받침이 되어줘야 한다. 교육이 든든한 받침이 될 수 있도록... 두 손, 두 발 다 묶인 학교 생각하니, 아, 갑자기 두 배로 갑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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