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일어남. 


엊그제 문형배 대법관의 독서일기 블로그를 보고 큰 반성. 

쓰기 위해 읽는다.는 자타가 그랬냐? 싶은 내 모토인데, 읽고 나서 쓰는 것이 영 안 붙는다. 


박솔뫼 에세이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 

책에 대한 책은 좀 질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좋았다. 

역시 오랜만에 박솔뫼가 이야기한 책들을 많이 메모해두었다. 볼라뇨, 하라 료,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실, 박솔뫼의 소설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을 때는 좀 지루했던 기억만 남았었다. 다시 읽으면 이전보다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변했고. 에세이를 읽고, 작가가 좋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경우는 에세이 읽고, 작가가 좋아진 경우이다. 아니, 신기해진 경우에 더 가깝다. 


정해연 소설 읽고, 작가의 말 읽고도 느꼈던건데, 박솔뫼의 에세이를 통해서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 

소설을 정말 좋아하고, 소설 생각만 하고, 소설의 틀로 세상을 보는구나. 소설 시점 인생을 살아가는구나. 그리고, 그렇게까지 몰입하고, 좋아하는 것이 소설인 소설가인 것을 알게 된 이상 그 소설가의 소설을 재미없게 읽기는 불가능하다. 


소설을 쓰고 소설을 쓸 생각을 하고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 생각하고 헤매고 쓰다가 생각하고 이런 과정들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볼라뇨 같은 사람이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고 나의 노동과 주변인들의 친절과 사랑, 노동으로 번 돈과 그 돈으로 산 음식과 휴식 같은 것이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읽고 쓰고 읽고 쓰는 생각을 과하게 하고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거의 미쳐 있는 사람들의 힘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정말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137) 


"나는 예정대로 달리는 것을 저항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좋았다. 이 책 속 유미리는 힘 있고 동시에 너무 많은 해야 할 일과 여러 사건 속에서 힘없고 그러나 힘없는 채로 다리를 후들거리며 나아가고 움켜쥐고 휘어잡고 그래서 힘 있고 힘 있다. (180) 



저자가 이야기하는 책요정 이야기도 좋았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나온 무언가가 다음 책을 읽는데 또 나온다거나, 내가 고민하는 일이 있는데, 마침 읽고 있는 책에 나온 주인공이 똑같은 고민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우연은 사실 책을 그냥 계속 읽다보면 늘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그것을 책요정이라고 부르고, "모두에게 책요정의 축복과 만남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세상에, 그렇구나. 책요정이었구나. 스파크 튀듯 좋았던 그 순간들이 그냥 우연인 줄만 알았지. 책요정을 알려준 박솔뫼 덕분에 책읽기가 조금 더 즐거워졌다. 


저자의 볼라뇨 사랑이 엄청나서 볼라뇨의 <전화>를 몇 번인가 빌려왔는데, 한 페이지도 못 읽고 반납했다. 

사실 다카하시 겐이치로랑 하라 료도 엄청 좋아하는데, 다카하시 겐이치로까지는 손이 안 가고, 언젠가 다시 읽어야지 마음만 남겨두었고, 하라 료, 나도 하라 료 좋은데, 볼라뇨도 좋고. 하면서 볼라뇨랑 하라 료만 다시 읽으면서 박솔뫼를 떠올릴 것 같다. 나는 좋아하는 책들은 많은 편이지만, 사랑하는 작가는 손에 꼽아본 적 없다. 사랑하는 작가가 있으면 좋겠구나. 사랑하는 작가를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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