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들 -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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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들>은 과학계, 그 중에서도 동물학계에서의 암컷의 위치를 재조명하는 이야기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다. 착취의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사실에 있다." 고 말했다.


동물학이 생긴 이래 수동적인 암컷과 적극적인 수컷이라는 고정관념이 정착되어 왔다. 학계의 지배층은 수컷의 관점에서 동물계를 연구하는 남성들이 대부분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질문도 답변도 남성의 관점에서 수행되고 이들은 암컷에는 관심이 없었다. 수컷을 디폴트로 조사하고, 암컷은 연구되지조차 못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여 생물계의 기준을 수컷으로 세우고, 당대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수동성, 모성애, 등의 프레임에 넣었다. 페미니즘의 물결과 여성 과학자들이 닫혀져있던 실험실의 문을 열고 수컷에 대한 것과 같은 호기심으로 암컷을 관찰했다.


"인간은 동물을 인간 행동의 예시이자 본보기로 삼아왔다. 많은 이들이 자연은 인간 사회에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옳은지를 가르쳐준다고 오해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지양해야겠다고 되새겨야했던 것은 동물의 의인화이다. 저자도, 저자가 반박하는 기존 수컷 중심의 생물학계도, 독자도 당장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수컷 위주로만 관찰되고 연구되어왔던 동물학의 무대위에 암컷 관점을 올려놓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언어의 사용은 저자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하고자 한 이 책의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 책을 읽는 내내 사용되는 언어들에 대해 민감하게 의식하게 된다.


1장에서는 암컷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두더지와 하이에나의 예를 들어 풀어내고 있다.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성호르몬은 모두 콜레스테롤에서 만들어진다. 스테로이드는 효소의 작용으로 프로게스테론으로 변환된다. 프로게스테론은 흔히 임신과 연관되는 호르몬이며 안드로겐의 전구물질이다. 또 안드로겐은 에스트로겐의 전구물질이다. 결론적으로 이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은 서로 쌍방향으로 변환될 수 있고 남성과 여성에 모두 존재한다.


듀크대학 교수인 크리스틴 드레아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성 스테로이드를 바꾸는 효소의 상대적 양과 호르몬 수용기의 분포와 민감성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호르몬을 가지고 있고, 효소의 작용에 따른 호르몬의 우세에 따라 정해질 뿐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가 알려주는 것은 성호르몬은 남자,여자에게 다 있는 것이고 어떤 성호르몬이 우세하냐에 따라 남성과 여성이 정해진다.


텍사스대학 동물학 및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크루스에 따르면 성의 양식에는 염색체, 생식샘, 호르몬, 형태, 그리고 행동의 다섯 종류가 있는데, 이것은 유전자나 호르몬은 물론이고 환경이나 경험에도 영향을 받는 가소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크루스는 성의 기원에 토대를 두고 성 분화의 진화를 보는 관점을 발전시켰다. 최초의 생물은 복제를 통해 번식했고, 알을 낳을 수 있어야 했기에 암컷이라고 추정한다. 성이 도래할 때까지 수컷은 진화의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 6억~ 8역 년 전에 존재했던 생물은 복제한 알을 낳는 생물(암컷)로 추정되고 수컷이 등장한 것은 2억 5천만년~ 3억 5천만년 후로 보고 있다.


2장에서는 그동안 수컷은 싸워서 쟁취하고, 암컷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관점을 그동안 무시되어 왔던 암컷을 관찰하여 암컷의 관점을 더하여 암컷의 선택을 이야기한다. 성선택을 하는 암컷들은 수컷의 유전자에만 집중한다. 2장의 예시로 나온 산쑥들꿩의 구애는 글로 읽어도 영상으로 봐도 대단하다.


각 장에서 예시로 들어지는 동물들의 놀라운 행태들이 많은데, 산쑥들꿩과 거미가 가장 인상깊었다. 그동안 배워왔던 수컷 관점의 동물학에 대한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예이기 때문에 더 새롭고 놀랍게 받아들여졌다. 아니, 근데, 몇 페이지나 이어지는 다양한 거미 교미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이 책에서 포유류 외의 조류, 어류, 파충류, 양서류, 척추동물 외에 절지동물 갑각류, 다지류, 육각류, 협각류 등의 암컷과 수컷의 성행동에 대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에 대한 의견은 저자의 의견을 따라가고 있긴 하지만, 더 다양한 책을 읽어봐야겠다.


3장에서는 정절을 지키는 암컷에 대한 이야기로 조류와 랑구르 원숭이가 주인공이지만, DNA 검사 기술이 발달한 이후 도마뱀에서 뱀, 바닷가재까지 일처다부의 경향은 모둔 척추동물에서 발견되고 무척추동물에서도 예외가 아닌 표준으로 선언되었다고 한다. 성적 일부일처는 지금까지 알려진 종의 7퍼센트 미만에서 확인되었다. 초파리 실험으로 유명한 베이트먼의 원칙은 암컷은 언제나 수컷에게 주도되므로 연구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오랫동안 과학자들이 암컷이 다수의 파트너에게 섹스를 요청할 뿐 아니라 그것이 암컷 자신과 자손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했다. 여전히 베이트먼의 패러다임을 가르치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는 그를 반박하는 고와티의 연구는 '정치색이 강하다'는 이유로 추천되지 않는다. 그들은 다윈주의적 세계관의 이론적 근간이 남성중심적임을 간과하고 F로 시작하는 단어를 들으면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색이 강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4장은 성적 동족 포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컷 거미를 다양한 방법으로 잡아먹는 암컷 거미과 목숨 걸고 교미하는 수컷 거미들의 이야기와 각각의 전략에 대해 나온다. 수컷 거미는 수정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제 몸을 바쳐 알에게도 암컷 거미에게도 양분을 재공하여 생존 기회를 높여준다. "수거미의 희생정신은 새끼 거미와 어미, 그리고 고인이 된 아비 모두에게 이득이 되었고 극단적인 부성애의 발로" 로 여겨진다. 라는식으로 지금까지 동물계의 암컷들은 묘사되어 왔다.

이 외에도 인간의 어머니와 동일시되어왔던 모성적 존재로서 동물의 암컷만을 조명해왔던 것, 암컷의 음핵과 오르가슴, 알파 암컷의 결투 등에 대해서 이어진다. 거미 이야기 다음으로 충격적인 것이 암컷의 피도 눈물도 없는 서열 싸움이다. 그러니깐, 이런 의식들 말이다. 이미 비판적인 주제의 저자의 어조조차 비판적으로 읽고 있지만, 계속 의식하지 않으면 수컷 관점으로 돌아가버리는 것, 알파 수컷이 그동안 무리에서 해왔던 것을 알파 암컷이 한다고 하면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의식과 언어가 내 안에서 교정되어야 한다. 서열 싸움에 더해 여왕벌과 여왕개미의 무소불위의 권력 이야기가 이어진다.


8장에는 자매애의 힘이라는 부제가 달려있고, 9장 범고래 여족장과 완경, 10장은 수컷 없는 삶까지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다. 완경 후에도 사회적 활동을 이어가며 무리를 이끄는 범고래 여족장과 코끼리 우두머리 암컷의 이야기는 경이롭다.

생물의 시작은 여성이고, 생물의 미래 또한 여성일 것이라는 것은 이 책에 따르면 과학적 사실이다. 인류가 전쟁과 파괴를 이어나가 인류를 포함한 다양한 생물들을 멸종시키더라도 450종이 모두 암컷인 윤형동물의 질형목 생물은 자기복제를 통해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가복제를 통해 번식하는 생물들은 포유류를 제외한 다양한 생물에서 발견되는데, 그로 인한 다양성의 부족을 극복하는 전략으로 무성생식과 유성생식 모두가 가능한 종들이 발견되어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환경에 따라 성변환하는 생물들이 나온다. 앞에서 내내 암컷들이 조명받지 못하는 이야기를 내내 하다가 사실 성은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형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뜬금없는 결론같지만, 암컷들을 마침내 과학계의 무대에 올려 놓는 과정중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암컷의 관점에서 본 동물학을 이야기하는 교양 과학서로써 굉장히 흥미로운 동물들을 알게 되어서 재미있었고, 지금까지 배워온 수컷 관점 세계관의 블록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을 수 있는 경험이 되어주었으며, 이 책을 시작으로 다양한 과학책 연계 독서를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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