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것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2
서유미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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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박혜진은 이 책이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어온 여성들의 자발적 고립의 역사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소설들이 혼자라는 상태, 고립이라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아내는 데 그쳤다면 서유미의 성취는 각자의 고립을 넘어서는 느슨한 연대를 통해 멈춘 듯한 좌표를 이동시켰다는 데에 있다." 라고 평한다. 


앞문장에는 반 정도 동의하지만, 고립을 넘어선 느슨한 연대라는 것에는 물음표가 뜬다. 


서른 일곱의 경주는 또래의 주원과 아이가 생겨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육아 휴직은 고민 끝에 퇴직으로 이어진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어, 취업을 간절히 바라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동네의 카페 제이니로 출근하며 구직활동을 하게 되지만, 쉽지 않다. 그나마 연락온 곳에서는 야근과 주말출근이 가능하냐고 물어서 안된다고 하고, 집 근처여서 지원했던 회사가 얼마 후 두 시간 거리로 이사간다고 해서 포기한다. 


초반에 육아로 힘들어하는 것들 읽으면서, 내가 왜 이걸 읽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너무 많이 읽고, 봤던 이야기들 아닌가 싶었다. 이 책에는 내가 현실에서는 한 번도 듣고 보지 못했던 남편이 나온다. 아니, 이 책은 남편의 좋은 모습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아이, 남편, 시댁, 가족으로 힘든 일은 편집하고, 경주의 느낌과 깨달음, 힘든 심리에만 집중한다. 


비혼의 친구가 기혼이 되었을 때, 서 있는 자리가 달라졌을 때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남겨준다. 사회에서 우리는 약자의 자리를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안다. 육아를 하는 여자는 사회적 약자이다. 하지만, PC도, 배려도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자발적' 고립이어서인 것 같다. '출산'은 선택이어서. 하지만, 아무리 봐도 출산과 육아는 여자에게 외통수인 것 같다. 일과 육아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곡예와 같고, 대부분의 사람은 곡예사가 아니니, 몸과 마음이 갈릴 뿐이다. 


독립해서 살다가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평소 쓰던 고급 핸드워시를 더 이상 사지 못하고, 취준을 위해 방문한 카페에서 그 핸드워시를 발견하고 좋아한다. 아이가 조금 크니 어른의 것, 어른으로서 어른과 나누던 것들에 목마르게 된다. 임신과 육아로 고립이 되니, 이전에 벽을 유지했던 것과 달리 자꾸 사람들에게 마음을 쉽게 연다. 담당 산부인과 의사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집에 놀러와'주는' J를 절친으로 여기고, J를 기다린다. 그리고, 단골 카페 제이니의 여자 사장에게는.. 더 복잡한 마음. 누가 와줬으면 좋겠다. 나는 밖에서 못 만나니깐. J가 와주니 너무 고맙다. 절친이다. 느끼게 되는 것. 절박해 보인다. 서른 일곱까지 비혼으로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들 넷은 청첩장을 보내고, 돌잔치에 초대하면서 절연하게 된다. 고등학교때부터 서른 후반까지 절친으로 만났는데.. 어휴.. 


서른 후반의 직장인들이 비혼이거나 말거나 매 주 만나고, 여행하고, 이런 설정은 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힘들다고. 서른 후반은. 그런 에너지 없다고. 그런 만남에 결혼준비로, 임신으로, 육아로 빠지게 되고, 그렇게 일년 동안 아마도 소원하다가 돌잔치 초대를 하고. '고립', '자발적' 고립. 그 세계에 들어서기 전에는 몰랐던 감정과 상황과 이야기들. 근데, 정말 몰랐을까? 정말 모르나?  


베스트 시나리오는 지우 (경주의 딸)에게 귀여워 죽는 이모 넷이 생기는 것일 수도 있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기도 하고. 친구 관계가 그 정도였나보지 싶기도 하고. 기혼과 비혼 사이에 건너기 힘든 강인가 싶기도 하고.   


책은 비혼과 미혼에서 기혼으로 넘어간 경주가 어떻게 다른 길을 걷게 되는지를 한 눈에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를 중심으로 같이 웃고 고통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점이 남편과 더 큰 결속력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 그런가? 


경주가 SNS에 단골 카페로 태그를 달아 올리자 전직장 동료가 '대낮 카페 부럽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회사 사진과 함께. 경주는 취준으로 괴로워하는 그 시점에. 


"동료는 경주를 부러워하지만 구직자인 경주의 간절함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고 경주는 양쪽 입장에 다 처해봤지만 이제 저쪽의 마음에서 멀어졌다. 


오히려 경주는 지원했던 채용 공고가 하나씩 마감될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설득해야 했다. 왜 일하고 싶은지, 꼭 일해야 하는지. 경제활동을 해서 빚도 줄이고 생활의 눈금을 여유 쪽으로 옮기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리를 가지고 싶었다. 주원의 일, 회사에만 기대는 것도 싫고 지우가 크면서 친구들 쪽으로 좌표를 옮겨갈 때 졸졸 따라다니며 뒷모습만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111)


"집에만 있으려니까 답답하지만 그건 답답함이라기보다는 막막함에 가까웠다." (115)


의지하던 집에 와주는 친구 J 와도 마음이 상하게 된다. 

"나는 나를 책임져야 되잖아, 평생. 나를 책임질 사람이 나밖에 없잖아." 


남편이 부인을 책임져주지는 않는데, 누구나 나를 내가 평생 책임져야 하는거 아닌가. 나도 저 말 종종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보니 그렇다. 독립, 의존,연대,파트너, 돌봄과 책임 같은 것들 단순하고, 복잡하다. 나는 최대한 단순하기를 바라고, 그에 맞게 살지만, 그게 언제까지 될지, 그게 되는 지금이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경주는 주원(남편)에게 말한다. "너네는 가족이잖아. 다 자기 자리도 있고, 친구도 있고." 


'자발적 고립'이라는 말은 함정이다. 자발적인 것 같지만, 다른 길은 없는 함정일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걸어들어가서 '자발적'인 것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느슨한 연대를 통해 멈춘듯한 좌표를 이동시켰다' 고 하는 평. 

마음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저사람도 나처럼, 혹은 나보다 힘들구나 라는 것이 느슨한 연대를 통해 멈춘 좌표를 이동시킨 것일까? 비혼의 친구들과의 사이에 다리가 놓아진 것도 아니고, 좋아보였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는 것이 연대의 마음일까? 


나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 일만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일이 크기야 하겠지만. 책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관계'가 아니라 '타인' 이면 안되고). 봉사나 취미,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이 책을 읽고 생각하게 된 결론은 다르지만, 생각할 것들은 많이 남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나도 비혼으로서 이 문장의 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주는 다이어리를 펴고 11시 30분 출근이라고 썼다. 출근이라니, 웃긴다고 생각하면서도 경주는 자기가 써놓은 글자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출근의 의미가 돈을 벌러 나감이 아니라 ‘일터로 근무하러 나감‘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 그 단어의 쓰임은 좀 더 각별해졌다. 경주에게는 어딘가로 나아간다는 느낌과 소속감이 필요한 시기였다. 카페 ‘제이니‘에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은 그저 커피 주문인데도 시간을 지키려고 애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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