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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입니다, 고객님 - 콜센터의 인류학
김관욱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콜센터에서 담배를 많이 핀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저자는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이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해 한국 사회에서 '콜센터'라는 블랙홀이 담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문제에 대한 책을 읽는다고 다 내 이야기처럼 와닿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 내 이야기로, 내 주변의 이야기로 와닿았다. 많이 속상하고, 좀 울기도 했고, 답이 없지만, 저자가 반복해서 말하듯이,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아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몸과 말이다. 그리고나서야 마음이 움직여 진정으로 변하게 된다.
달걀을 던지는 것과 같은 일을 계속 하는데, 그 바위가 모습만 계속 바뀌고 있다면 어찌해야 할까. 페미니즘과 비슷하다. 몸이 알고 있는 것을 거꾸로 알게 되었을 때, 관성은 힘을 잃고, 바뀐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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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상담사들은 담배를 많이 피울까?' 에 대한 답을 찾고자 석사 시절이던 2012년 처음 콜센터에 방문했다. 여성 흡연자층이 확산하는 하나의 이유를 찾고자 했던 셈이다. 그런데 연구가 끝날 무렵 나는 콜센터가 낮은 임금으로 여성 상담사의 노동력을 사용하면서 이들의 건강을 조금씩 빼앗아가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이상적인 여성상'에 대한 고정관념마저 재생산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친절하고 공감에 능통하며 순종적인 딸과 아내, 어머니의 모습 말이다. 수화기 너머 상대방이 불친절하거나 짜증과 화를 내도, 상황이 불쾌하거나 어색해도, 조금 무리한 부탁을 해도, 그리고 임금이 많지 않아도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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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사 이야기 읽고 있다. 영국 산업혁명과 미국과 유럽의 노예제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정말 야만의 시대였구나. 그 시대가 그리 먼 과거가 아니구나 싶었는데, 아니다. 그 야만의 시대가 지금도 바로 여기에도 펼쳐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과거까지 갈 것도 없이 이야기는 1970, 80년대 소위 '공순이'로 불리던 여공의 삶에서 시작한다.
당시 여공들의 장시간 노동은 한국 노동집약적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었고, 잔업은 물론이고, 철야 작업까지 자주 이어졌다. 각성제인 타이밍을 비타민인 양 먹으면서 일했고, 타이밍마저 없을 때는 쓴 커피 가루를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일했다고 한다.
구로공단 50주년 기념행사에 '수출의 여인상 복원 기념' 행사 또한 있었다. "그때 우리를 산업역군이라고 불렀는데 정말 '개지랄'이다. (...) 당시 우리 여공의 목숨은 파리만도 못했다. 인권이고 뭐고 없었다. 성폭행 같은 것은 정말 비일비재했다. "
과거 여공들에게 타이밍을 먹이며 매일 야근과 철야를 시켰듯이, 여성 상담사의 경우 담배를 워킹 드러그로 허용했다. 가까운 곳에 흡연실을 만들어주고, 바깥에서는 여성의 흡연에 대한 나쁜 시선이 유지되지만, 안에서는 흡연을 일의 연장으로 권한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압박 받을 정도로 매 초, 매 분 모니터 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인류학자 윌리엄 잔코비악에 따르면, 드러그 푸드, 특히 술과 담배가 노동력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기술이 더욱 복잡해지면서 그것은 담배와 커피로 대체된다. 상담사들이 술보다 담배를 더욱 선호하는 것은 술을 마시면 다음 날 머리도 아프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아 업무에 지장을 주지만 담배는 큰 부작용 없이 곧바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워킹 드러그로 담배, 커피, 약국에서 각성제 먹는 사람들 이미 주변에 많다.
콜센터 상담사들의 감정노동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상은 감정 이상의 노동 현장이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이 일이 완전히 여성형 막노동이라고 느끼게 되었다며, 이를 "여공들의 디지털 버전"이라고 했다. 정적이고 지엽적이고 반복적인 일의 특성을 '여성적'이라고 보는 고정관념도 심했으며, 먼지 대신 전자파에 노출되고, 일의 개념이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표현했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말이다. 동료 시민을 하인이나 부하나 백성으로 격하시킨다는 말이야? 조선시대로 가시던가요. 진상들은 늘 있어왔고, 나 또한 그런 진상짓 했었을텐데, 참 못났다. 구조적 문제라고 하면 보통 모호한데, 이건 분명히 알겠다. 진상에게 그래도 된다는 시그널을 주는 주체가 바로 구조적 문제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컴플레인을 세게 해도 되는 무대, 즉 진상의 세계를 만든 제작자' 말이다.
"이것은 시민들에게 감정노동자를 배려해달라고 감정에 호소할 문제가 아니라 안전한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정말 그렇다.
나는 병원에 거의 안 가지만, 병원에 가는 것도 눈치 봐야 하는 것이 일의 가장 비인간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콜센터에서는 CCTV 다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시간과 모든 일이 다 실시간으로 모니터되고, 평가 되고, 피드백을 주게 된다. 상담사들은 기계가 아닌 인간 부품 취급 당한다. 화장실 가는 시간 조차 통제당한다. 200명이 넘는 상담사가 한 공간에서 일하던 센터가 있었다. 사무실 양쪽 벽 끝에 부채가 각각 세개씩 걸려 있고, 근무 시간 중에는 이 부채를 든 사람만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모두들 일하면서 부채가 걸리기만 기다렸다가 기회가 생기면 그 즉시 달려가 부채를 잡았다고 한다. 모욕적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물리적 외형 및 그 안에서 일어나는 노동 양상을 가리켜 "양계장과 같은 대량 사육 농장" battery farms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끔찍하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이 단순 비유가 아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를 듣는다. 모 센터에서는 봄이 오면 에어컨을 켠다고 한다. 봄이라 나른해서 졸지 말라고 에어컨을 켜서 상담사들이 실내에서 목도리 두르고 카디건 걸치고 일한다. 창문은 다 블라인드 내린다. 창밖 보지 못하게.
"상담사는 체온과 시각마저 높은 생산량 (콜 수)을 위해 통제받는다. 이것은 마치 실제 양계장에서 닭이 달걀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도록 축사의 온도를 엄격히 조절하는 것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료에 항생제를 섞어 인위적으로 병균에 내성이 생기게 만들듯 콜센터 밖과는 달리 편리한 흡연실을 구비해 악성 고객의 공격에 내성이 생기도록 상담사들이 자유로이 흡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
이 책에서 가장 섬찟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은 '미소 띤 음성' 이다.
서비스만 친절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는 목소리에마저 친절함이 배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 상담사가 받은 통화 품질 평가표를 보면
"평이한 상담이 진행되었습니다. 다소 정중한 어미 표현 및 미소 표현 부족하여 건조한 상담이 진행되어 아쉽습니다. ㅇㅇ콜의 특성상 미소 띤 음성과 생동감 있는 어미 구사, 정중한 언어 표현이 필요함을 당부드립니다."
상담사의 목소리는 ARS의 기계음과 달라야 한다. 인간이지만 기계처럼 일하기를 강요당하고, 기계와 다른 인간미를 강요받는다. 미소 띤 음성을 읽는 순간, 그게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이걸 내가, 개인이 그렇게까지 친절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공범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버렸다.
여성들이 모인 곳, 여초 직장이 저임금, 강도 높은 노동에 감정노동까지 더 하여 여유들이 없기 때문에 간호사들의 태움 같은 것들이 나오는 것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본 적 있다. 콜센터에서 미소 노동을 하면서 본인들의 감정은 죽이고, 실적으로 매 순간 평가 받고, 그를 위해 팀장에게 빵셔틀, 커피셔틀, 과일셔틀을 하고, 동료가 아닌 경쟁자와 왕따가 있는 내외부 모두 극한의 공간이다.
그리고,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의 세계가 펼쳐진다. 가장 약한 그곳에서부터 팬데믹이 악습들을 들춰낸다.
상담사들은 필수노동자가 되지만,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이례적인 과로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한다.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상담에 투입된다. 여기까지도 답답한데, 상상 이상이다. 업무량 뿐만 아니라 폭언과 책임 전가 또한 폭발적으로 늘었고, 상담사는 온몸으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 19사태로 전체적으로 콜 수가 증가하자 최소 기준 콜 수를 100콜에서 120콜로 상향 조정한다. 죽어라 달리고 있는데, 결승선을 뒤로 밀어 버린다. 이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함에도 보상은 없다. 추가 보상도 없고, 휴식 시간이나 인력 확충도 없다. 기준선을 더 올려 버리고, 더 열심히 하라고 지시한다.
코로나 19로 인한 분산 근무 방역지침은 원청회사에게 콜센터를 풀 아웃소싱으로 전환해 완벽하고 지속적인 간접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줬다.
상담사들은 '벽'이다. 정규직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민원인을 끝까지 막는 벽!
6장에서는 상담사들의 노동운동 도전기가 나온다. 나는 6장에서 조금 울었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까지 읽고나니 씁쓸하지만, 그렇게 계란으로 바위를 쳤지만, 상담사의 힘은 유한하고, 그들의 저항을 억누르는 무게는 무한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이 함께 만들어갔던 실천의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몸자보 걸기, 돌발파업, 로비 점거 시위, 적정 콜 받기, 동시이석, 그리고 이로써 얻어낸 크고 작은 성과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7장에서는 몸펴기 운동에 대해 나온다. 서문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상담사들이 맨날 앉아 있으니깐, 하기 쉬운 운동 나오나보다.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다. 이 책에서 '몸'은 아주 중요하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 '마음'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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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학문과 연구의 최종 목표가 있다면 바로 이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첫째,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된다. 둘째, 내 몸을 내 스스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이 생긴다. 셋째, 돈을 들이지 않고 일상에서 건강을 쉽게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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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또한 감명 깊게 읽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사례로 나온 어느 상담사가 나쁜 음식들을 먹고, 잠을 못 자고, 흡연을 하고, 술을 마시고. 그것을 '가난한 루저들의 싸게 노는 법' 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몸을 돌 볼 여유 한 톨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몸펴기 운동'이 결국 마음을 펴는 이야기가 좋았다.
몸펴기 운동을 소개하는 김사범은 영리만 추구하는 기업 때문에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건강을 잃고, 그렇게 잃게 된 건강이 또다시 의료 자본의 영리 추구 수단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 또한 몸펴기 운동에 감명 받아 사범 자격증을 딴다)
8장에서는 타국의 콜센터들과 비교하여 한국의 콜센터들의 특징을 보여준다. 저임금의 낮은 지위를 유지하며 전통적 여성상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첫 직장으로 몸에 밴 사회생활 목소리와 톤이 있다. 어떤 화난 고객도 달랠 수 있고, 가족도 못 알아듣고, 친구와 지인도 놀라는 그런 목소리. 나는 웃기기도 하고, 그렇게 내가 가진 가면에 은근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이 책을 읽다가 깨닫고 화가 났다. 나는 누구에게 배워서 그런 사회생활 목소리를 냈고, 그것이 필요 없는 지금까지도 그 목소리와 톤을 종종 내고 있는 것일까. 그걸 누구에게 또 전달하고 있었던 것일까.
리뷰에 다 쓰지 못한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
저자는 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고, 나 또한 그렇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구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개인이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알았고, 알리고, 그 다음은 몸.
바위는 바람과 비에 닳아 바스라져 모래가 된다. 달걀에 깨지지 않을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