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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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관을 삽입하는 겁니까?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면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머니를 괴롭히는 거죠?" 

그는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겁니다." 그는 물을 밀치면서 들어가 버렸다. (36) 


시몬 보부아르의 사르트르에 대한 애도의 책 <작별의 의식>에 이어 엄마와의 이별을 쓴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게 되었다. 사르트르도 엄마도 (엄마가 먼저지만)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죽음을 숨기고, 그에 죄책감을 가지는 부분이 나온다. 이 책을 읽고나니, 이 때 한 번 겪었으면서 왜 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에 대한 변명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불행해질 것이고, 죽음의 공포를 겪게 될 것이라는 거였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땠을지는 영원히 알 수 없지만, 정작 본인이 죽음을 알리기를 무서워했음을 읽을 수 있다. 


보부아르의 엄마는 딸들을 통제하고자 했고, 딸들과 불화했다. 죽음을 한 달 앞두고, 희망 없는 수술로 얻게 된 한 달의 유예기간 동안 딸들의 간병을 받게 된다. 보부아르는 엄마에게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회고하며, 그래도 얻은 것은 있다고 말한다. 그 때 수술하지 않고 바로 돌아가셨다면 심리적 타격이 더 컸을 것이고, 죽음 앞에서 그의 부재가 세계만큼 거대한 존재가 되고, 극단적인 경우 삶 전부에 해당하는 존재로까지 여겨지게 되는 대신 그 역시 다른 이들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엄마를 피했던 과거에 엄마 곁에서 헌신했던 그 한 달의 시간들 덕분에 엄마가 느낀 마음의 평화, 엄마와의 불화로 인해 엄마를 등한시하고 피했던 것에 대한 죗값을 치른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런 것들을 생각해볼 때 

" 사실 엄마는 비교적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 라고 결론 짓는다. 


"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예측, 그리고 결정을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었다. 환자는 의사들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니 그들의 손아귀에서 환자를 빼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수요일에는 수술과 안락사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로서는 굳어 가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게 되면 엄마가 장폐색증을 견디면서 지옥을 맛봐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게 뻔했다. 의사들이 안락사를 거부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도 용기를 내서 N 박사에게  "그대로 돌아가시도록 어머니를 내버려 두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N 박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아는 자 특유의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나를 냉대했다.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머니에게서 몇 년 더 사실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셈입니다"라고. 내가 엄마를 죽게 내버려 두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은 그래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핑계를 대 보아도 내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이 책에서 가장 이입하면서 봤던 것은 안락사 vs. 연명, 죽음 vs. 고통의 이야기였다. 보부아르도 거기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 엄마가 죽고 싶다고, 얘기햇으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보부아르의 선택은 어렵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삶을 너무나 사랑한 사람이었고, 보부아르를 비롯한 가족과 친구들, 병원의 모두는 환자의 암을 복막염으로 속이고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만한다. 삶을 사랑하는 죽어가는 사람은 그 희망에 매달린다. 


오늘 하루를 살지 못했구나.

며칠을 버리게 된 셈이잖니.

엄마에게 매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죽어 가고 있지 않은가. 엄마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를 대신해서 나는 체념하지 않고 있었다. (119)


몸이 썩어가고,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삶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의학 기술에 연명하는 삶. 


동생이 문을 열다가 창백한 얼굴로 나를 향해 돌아서서는 흐느끼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엄마의 배를 봤어!" 

나는 그 야에게 줄 진정제를 가지러 갔다. P박사가 병실에 들어왔을 때 동생이 말했다. 

"엄마의 배를 봤어요! 끔찍했어요!" 

그는 조금 당황해하면서 "천만에요, 정상적인 겁니다"라고 답했다. 

푸페트는 내게 "엄마가 산 채로 썩어 가고 있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애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수다를 떨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엄마의 머리맡에 가 앉았다. 하얀색 실내복 위에 얹힌 검은 색깔의 가느다란 끈이 숨을 쉴 대마다 아주 조금씩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할 뻔했다. 6시경에 엄마는 눈을 떴다. (118)


내가 죽어가는 사람이 되면 어떻게 할까. 내가 죽어가는 사람의 보호자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닥쳐야, 경험해야 알게 되는 일이 있고, 죽음이 그럴 것이다. 각각의 삶과 죽음은 또 달라서 영원히 면역되고, 알게 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으로 죽음의 앞에서 화해했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죽음을 앞에 두고, 연민의 여지를 넓혔다고는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엄마의 이름을 세상에 책으로 불러낸다. 


프랑수아즈 보부아르는 책읽기를 좋아했고, 한가롭게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를 배웠고 영어 실력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다양한 강연을 들으러 다니고, 쉰 넷의 나이에 출퇴근을 위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시험과 실습을 거쳐 자격증을 땄고, 사서로 일했다. 책을 다루고 덮개로 씌우고 분류하고 색인 카드를 적고 독자들에게 조언해주는 일들을 좋아했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살았지만, 그것을 참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몸과 마음을 억압당했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 받았다. 내면에는 불같은 정열을 지녔으나 뒤틀리고 훼손되었다.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는 놀랄 만큼 용기 있는 모습으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남편의 죽음에 무척 슬퍼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 속에 매몰된 채 있으려 하지 않았다. 다시 자유로워진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재정비했다. 아빠는 땡전 한 푼 남기지 않은 채 돌아가셨고 그때 엄마의 나이는 쉰넷이었다. 엄마는 몇 차례의 시험과 실습을 치르고 나서 자격증을 하나 땄고, 그 덕분에 적십자에서 보조 사서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출퇴근용으로 자전거 타는 법을 다시 배우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집에서 삯바느질을 해 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때는 나도 도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가로운 생활은 엄마에게 맞지 않았다. 기어이 자신의 방식대로 살길 원한 엄마는 수많은 활동을 찾아냈다. 파리 근교에 있는 결핵 예방 의료원의 도서관에서 무보수로 일하기도 했고, 그 다음에는 동네에 있는 한 가톨릭 단체의 도서관에서도 일했다. 엄마는 책을 다루고, 덮개로 씌우고 분류하고, 색인 카드를 적고, 독자들에게 조언을 해 주는 일을 좋아했다.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를 배웠고 영어 실력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수예실에서 수를 놓기도 하고 자선 판매 행사에도 참여했으며, 여러 가지 강연을 들으러 다니기도 했다. 새로운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아버지의 우울증 때문에 멀어졌던 옛 친구 및 친척들 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도 했다. 가장 간절히 바라던 일 중 하나를 이루기도 했는데 바로 여행하기였다. 엄마는 다리를 뻣뻣하게 만드는 관절 경직증에 결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24)


" 엄마가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갖추게 된 것은 말년에 이르러서였다. 하지만 희로애락 속에서 인생의 가장 거친 풍파를 겪어야 했던 시절의 엄마에게는 자기 삶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의견도, 생각도, 언어도 없는 상태였다. 기겁하면서 불안해하는 증상을 보이게 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반박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많은 걸 얻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것이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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