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에 예민해야 하는 지점이 꼭 호칭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같은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중립이나 중재라는 말을 쓸 때 이해 당사자가서로 비슷한 힘을 가진 경우라면 별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강자와 약자가대립하고 있을 때는 그런 말이 강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하기 쉽다. 김여사, 된장녀 같은 말이 가진 여성비하적인 측면에 관한 고려, 하사금下賜金이나 고위층高位層처럼 권력에 따른 상하관계가 스민 측면에 관한 고려 등도 충분히 감안해야 할 사항이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있는 동안 많은 교사가 학생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말을 자주들었다. 가령, "딴짓하지 말고 선생님이 하는 말 잘 들으라고 했지?" 라든지,
"선생님이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라는 식이다. ‘선생님‘ 이라는 말 역시 다른 사람이 교사를 높여 부를 때쓰는 호칭이지 교사가 자기를 지칭할 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선생님을 대신 그냥 ‘나‘를 쓰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그게 왜 문제인지를 모르는 교사가 다수다. 스스로 자기 권위를 높이려다보니 그렇게 된 듯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서 엉뚱하게 고착되고만 형국이다.

어려운 어휘를 즐겨 쓰는 사람은 어휘량이 많은 게 아니라 쉬우면서도 쓰기 편리한 말에 관한 어휘량이 적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문가 집단이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어휘의 세계에 갇혀 버리면, 거기서 배제된 이와는 정상적인 소통이 어려울 뿐 아니라 자칫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할수 있다. 의료계나 법조계에서 쓰는 전문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어야한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나왔고, 당사자들도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폐쇄성의 울타리 안에 갇힌 어휘를 간명하면서도 알아듣기 쉬운 어휘로 대체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야하며, 그런 작업이 언어의 민주화로 가는 길이자 우리 사회의 어휘 자산을 늘리는일이 될 터이다.

어휘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너무 당연한 말일 수 있겠으나 독서를 많이하는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확실히 사용하는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레 책 속에 있는어휘의 개념이 머릿속에 쌓인다. 책에 나오는 말 중에 모르는 어휘가 있을 경우 굳이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앞뒤맥락을 통해 저절로 뜻을 알게 되는경우가 많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울 때 국어사전을 가지고 공부하지 않아도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낱말을 익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독서 행위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나 교양을 쌓는 일일 뿐 아니라 어휘를늘리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다.

외국어 습득을 통해 인식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 즉 ‘다른 또 하나의 관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은 무척 중요한 지적이다. 가령 에티켓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에티켓이라는 외국말이 우리말의 예의나 예절이라는 말과 똑같을까? 서양 사람이 생각하는 에티켓과 우리나라 사람이 생각하는 예의는 포함하는 범주가 다르다. 식당에 갔을 때 남자가 여자의 의자를 앉기 좋게 빼 준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의 행동 양식에 없었다.
에티켓이라는 말과 함께 그런 행동도 들어온 셈이다.

언어가 사유를 이끌어 가는 측면이있다면, 어휘량이 많은 사람이 더풍부하고 깊이 있는 사유를 할 수 있으리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어휘를 익힌다는 것은 교양을 넓히는 일일 뿐 아니라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기르는 일이 된다.

어휘를 늘린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양과 질을 늘린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양상은 대부분 언어 행위를 매개로 이루어지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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