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하현 지음 / 비에이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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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라는 제목과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라는 부제를 보고, 외향형인줄 알고 살다가, 내향형 인간으로 거듭나서 이제야 이해가는 내향형의, 실내형의 약속에 취소되는 기쁨에 대한 이야기인가보다 하고 샀는데, 별로 그렇지는 않았다. 


책 읽고 나서 어떤 책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내향형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살면서 만나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저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고 술술 읽히며, 중간 중간 좋은 이야기들도 있었다. 


비혼에 대한 이야기, 정혈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책에서 만나게 되는 일이 더 많아져도 좋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이어 읽고 있는 이야기가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 인데,내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생각했던 것, 이 책 처음에 나오는 것, 그리고, '외로운 도시'까지 연결되는 정서가 있다.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좋고, 피자 먹는 것도 좋고, 노래방도 좋은데, 약속이 깨지면 미안할 정도로 기쁜 저자. "원하는 만큼 충분히 혼자 있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톨이가 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 그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고, (놀랐다. 정말 그럴 수 있다니)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쌓이는 사람이 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쌓이는 사람이라 전자의 사람이 너무 신기하다. 좋은 자리와 만남과 사람은 '좋은' 에 방점이 찍혀있는한 당연히 좋고, 에너지 깎임을 감수하고 기꺼이 나가지만, 분명 에너지 깎이는 일이라서, 만나도 좋고, 취소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향형 인간에게 취소되어 아쉬운 약속이란게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고양이 병원 약속 정도인 것 같다. 이건 아쉬움을 넘어서는 속상함이겠지만. 내 병원 약속도 별로 안 아쉽고 집에 있어 좋을 것 같다고. 


올리비아 랭의 '고독'은 좀 더 병적이고, 문제적이어서 좀 다른 결이긴 하지만, 내가 공감한 구절은 


"언어를 불신하게 되고, 언어가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게 해줄 능력이 있음을 의심하게 되어 (...)침묵은 상처를 피하는 방법, 참여를 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잘못된 소통 때문에 겪을 고통을 피하는 방법일 수 있다." 라는 것. 


다시 하 현으로 돌아와서, 저자는 아동용품 박람회에서 이어지면 기차가 되는 자동차를 판매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어진다고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면서, 왜 이어지지 않으면 소용없을 것을 한 개만 사가냐고 하소연하자, 사장이 말하길 사람들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더 사서 연결할 수 있는 그 가능성을 좋아하는 거라고.  


혼자인건 홀가분하지만,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은 좋아하는 것. 편의에 따라 자유롭게 연결하고 분리할 수 있는 모듈형 인간. 외톨이는 아니지만, 혼자일 수 있는 사람. 


아무런 에너지도 쓰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고,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 만 바란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하는데, 역시 사람들 만나면서 에너지 깎이는 한, 그 사람들이 친구나 애인이나 좋아하는 지인이 아닌 이상, 내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나에게 쓰고 싶은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사교적인 내가 나와야 하는 자리는, 유체이탈되는 느낌이다. 


곽두팔 아세요? 여자 이름으로 택배 받으면 불안해서, 세 보이는 이름을 적을 때 최고가 곽두팔이었고, 그걸 쓰면서 외려 혼자 살고, 그걸 무서워 한다는 정보까지 밝혀지게 된다는 거. 그런 팁들이 돈다. 빨래건조대에 남자 옷 걸어두기, 현관에 남자 신발 놔두기.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도 봤다. 그게 누가봐도 티나서, 배달원들이 보면 혼자 사는데, 남자랑 사는 척 남자 신발 현관에 둔 것까지 안다고. 그 얘기 봤을 때는 좀 참담했다. 


미용실에 석달에 한 번씩 가는데, 스몰토크 하는게 너무 괴로워서 간만에 발견한 스몰토크 없는 미용사가 머리는 맘에 좀 안 들게 자르지만, '머리 잘하는 미용실은 많으니 다른 걸 잘하는 미용실도 하나쯤 있으면 좋겠지.' 하고, 그 쓸모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세 달에 한 번씩 그 곳에 간다는 이야기. 


에세이를 너무 사회학책이나 인문학 책으로 보려고 했나. 리뷰 쓰면서 생각해보니, 내향형 인간 에세이 맞네. 


마트 아르바이트 이야기도 좋았다. 마트에서 주 3일 커피 시음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마가 낀 날로, 진상 퍼레이드였던 어느 날, 마트 언니들이 불러서 대보름 오곡밥을 얻어 먹는다. 땅콩 깨물며 "새로운 한 해의 안녕을 빌고, 몸에도 마음에도 부스럼 나지 않기를 , 좋은 손님만 만나기를, 우리의 밥벌이가 우리를 해치지 않기를." 빈다. 


그래요. 우리의 밥벌이가 우리를 해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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