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은 단정하게 - 볼티모어 부고 에세이
매리언 위닉 지음, 박성혜 옮김 / 구픽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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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Baltimore Book of the Dead 

번역본 제목은 '안녕은 단정하게' , 부제는 '볼티모어 부고 에세이' 


원제와 번역본 제목과 부제까지 다 좋은 책은 오랜만이다. 


아주 두꺼운 부고 모음집 책을 샀던 적이 있다. 아주 두꺼웠음. 대사전 같았고, 아주 지루해서 아주 심심할 때도 앍기 힘들었다. 


이 책은 부고에세이이다. 

부고에세이라는 장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이 책에 적절한 부제다. 


서문에 저자가 하우스 파티에서 이런 책을 쓰고 있다고 소개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작업중인 원고 낭독회를 하게 되는데,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볼 기회가 없던 차라 꼭 그렇게 해 보고" 싶다고. 

근데, 사람들이 너무 싫어함. "제발요, 전 지금 휴가를 보내러 왔어요.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본인의 방으로 가 버리고 만 사람, "그냥, 계속 할까요?" 물어보니, 주최자는 이 역시 별로 동의하지 않고, 저자 부부를 초대한 일이 후회스러울 지경에 다다랐으며, 남은 사람들은 저자의 글이 얼마나 우울했는지, 죽음이라는 주제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적절했는지 토론을 이어간다. 


시작부터 이 책의 원고를 사람들이 싫어했어. 라는 에피소드를 이렇게나 재미있게 쓸 일인가 싶다. 

그리고, 길게 길게, 왜 우리가 죽음에 대하여 말해야 하는지, 죽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가족에서 셀럽까지, 금붕어, 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다양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좀 시적이기도 하고, 저자가 유머리스트 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서문의 에피 빼고, 유머러스한 부분이 나오지는 않는다. 

산문시 같은 느낌을 받기는 했다. 


죽음에 대한 어떤 과잉 없는, 생활의 일부분으로서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음에 대한 책을 많이 읽는데, 이런 톤은 처음 읽어본다. 한 번 읽으면서, 얼른 다시 읽고 싶은, 곱씹어 보고 싶은 책이다. 연말에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연초에 읽었다면, 연초에 읽기 좋은 책이라고 말했을 것 같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부고 에세이 각각에 한 사람/ 동물의 죽음과 이야기와 남은 사람의 소회가 꽉꽉 차 있다. 

죽음의 소식을 들었을 때, 남은 사람이 느끼는 주마등 같은 에세이다. 


지난달에 다시 읽은 책 중,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이 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한 주인공의 인생이 강한 임팩트를 주는 소설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몇몇 부고를 읽으며 생각했다. 나는 어떤 문장으로 남고 싶을까. 고양이 세 마리와 책을 읽고, 책을 쓰며, ㅇㅇ를 ㅇㅇ하고, 현재에 만족하며 살았다.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내가 지금 일을 좋아하는 구나, 깨달았다. 

역시, 연말에 읽기 좋은 책인 것 같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우울하지 않다. 만약 그런걸 기대한다면, 그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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