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이 떠난 거리 - 코로나 시대의 뉴욕 풍경
빌 헤이스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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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헤이스의 <별빛이 떠난 거리>

원제는 Scenes from the Pandemic, 번역본 부제는 코로나 시대의 뉴욕 풍경 이다. 


읽다보니, 아, 올리버 색스가 죽기 전에 커밍아웃했던 연인이 빌 헤이스였지. 

아, 빌 헤이스가 쓴 책이 <해부학자>였지. 


이 작은 책이 굉장히 맘에 드는데, 왜 맘에 드는지 계속 생각중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어 나가는 것에는 개인차가 있을테지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에는 모두 동의할 것 같다. 점점 나빠지는 많은 것들로 인한 변화가 코로나라는 역병, 재앙으로 인해 가속화 되었다. 

이 시기를 버텨 살아 나가야 하고, 다가오는 코로나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데, 먹고사니즘 말고 마음과 관계에 대한 대비 또한 필수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들. 혹은 덮고 지나쳤을 것들. 


이 책은 사진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다. 사진 에세이의 미덕은 뭘까. 내가 생각하는 사진 에세이의 미덕은 사진이 기억나지 않는거다. 글에 녹아져 있어 사진이 딱히 인상적이지 않은 것. (사진파 아니고, 글파라 그런듯) 이 책이 그렇다. 인상적인 표지부터 안에 있는 역병이 덮친 뉴욕의 모습들까지 글에 녹아 있다. 특별하지는 않은데, 가장 특별한 것은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것이라서. 


두렵고, 화나고, 슬프고, 걱정되고, 불안하고. 


지금 이 시간들에 생각하는 것. 


"내가 마지막으로 낯선 사람과 악수를 나눴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미소 짓는 모습을 봤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헬스클럽에 갔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영화간에 갔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키스를 했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잤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식당에 갔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아무 두려움 없이 식료품점에 갔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같이 목욕을 했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들로 붐비는 인도를 봤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아무 걱정 없이 누군가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마스크나 장갑을 끼지 않고 밖에 나갔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시간.

내가 마지막으로 지금 같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시간." 


"짧은 기간 동안에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변했다. 2020년 달력을 들여다본다. 날짜들마다 다양한 약속들이 적혀 있다. 나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랬듯이 1월과 2월 내내 완벽하게 정상적으로 살고 있었다. (..) 나는 얼마나 한 치 앞도 못 보고 있었던 건가. 불과 며칠 안에 삶 전체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얼마나 모르고 있었던 건가."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한지 반년이 지났다. 2020년 3월에 생긴 역병은 2020년을 백일여 남겨두고도 수그러들 기세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죽고, 살아 나간다. 코로나에 관한 책들도 바삐 나오기 시작했고, 아직까지는 경제서나 미래전망 위주이긴 하지만, 실시간 기록의 글들도 계속 나오겠지. 코로나라는 해시태그로 묶일 책들이 계속 나온다면, 이 책도 그 안에 들어가겠지. 


나는 사회적 거리두기 이전에도 만족스럽게 사회적 거리두는 생활을 하고 있었고, 대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와 있는터라 영향이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관계 면에서, 그리고, 밀집 지역이 없다는 면에서 몸으로 와닿기보다 사람들의 글을 보며 실감을 하고 있고, 이 책은 나에게 또 다른 눈을 준 것만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쓰는 거야 - 지적으로, 창조적으로, 비판적으로,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지금 이 시대에 사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서.

올리버는 많은 것들에 열광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언어의 힘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시에 대한 열광에는 미치지 못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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