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정원가기도 너무 지쳐서 늙은 부모에게 정원일을 팽개치고, 잠깐 잠깐 얼굴만 비치고, 삽질하고, 무거운거 옮기고, 얘기 들어주고, 아.. 얼굴만 비치는거 아니고, 삽질하고, 무거운거 옮기고.. 물 주고. 이거 좀 봐라. 이거 좀 봐라. 이게 꽃 잘라주니깐 순이 버럭버럭 올라오고, 하는 아빠 쫓아다니면서 얘기 들어주고..

 

제주는 장마긴 장마인데, 하루 내내 비가 오다말다 하고, 왠일로 바람도 별로 안 불고, 날은 계속 흐려서, 비 오는 시간에는 '하늘이 물 주네' 하고, 마음의 부담을 좀 던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120프로까지는 어째어째 모자란듯 하더라도, 121프로가 되는 순간, 몇가지 일을 하든, 다른 일에 확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121프로든 122프로든 그런 임계점이 사람마다 있는거겠지. 내가 지금 121프로라고. 다행히 비님이 오셔서 정원일의 마음의 부담은 덜하고, 새로운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쌈빡하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고, 이걸 과제라고 생각하면, 시간 좀 들이고, 계속 고쳐나가고 하다보면, 그럴듯하게 될 것 같은데,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크지만, 사실, 목표는 완성이다. 혼자 하는 일 아니라서, 내가 힘내는건 이만큼 힘내더라도, 같이 하는 사람이 나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힘내줬음 하는 수동적 ... 쓰다보니 개웃겨서 막 혼자 피식거리게 되네. 뭘 바라는거야. ㅎㅎ

 

여튼, 약간 머리 팽팽 돌아가고, 오늘 알바 안 가고, 비 오고, 아침에 커피 마시고, 고양이 쓰담쓰담하고, 책구경하러 알라딘 들어왔다.

 

 

  캐머스 데이비스 <칼을 든 여자>

 

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사이 중간지대를 찾아 나선 어느 도축사 이야기. 동물이 접시 위에서 생을 다할 때까지 거치는 모든 과정을 되도록 가까이에서 지켜보려는 어느 도축사의 집념 어린 다큐멘터리. 잡지의 라이프스타일 지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최고의 삶을 사는 방법을 조언하면서 10년의 시간을 보내다 환멸을 느낀 저자는 자의 반 타의 반 직장을 그만두고 도축과 정형을 배우러 프랑스 가스코뉴로 간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고기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좋은 삶을 살았고, 좋은 죽음을 맞았다 말할 수 있을까? 동물의 사체를 눈앞에 두고 죽음과 음식의 교환이 일어나는 어느 한순간도 외면하지 않는 저자의 태도에서 우리는 우리 대부분이 외면해온 육식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시도를 발견한다. ‘기르고, 죽이고, 먹는’ 모든 행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경험을 재료 삼아 저자가 차려낸 식탁은 풍부하고, 흥미로우며, 무엇보다 숨김없이 사실적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 앞에 놓인 접시를 스스로 바라보게 만드는 책.  

 

 

라이프스타일 잡지 편집자였다가 프랑스로 건너가서 도축업을 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다. 동물권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고, 재미있을 것 같다. 리뷰 보다보니, 왜 제목 Killing it 인데, 여자 그림 표지에 제목 자극적으로 바꿔서 페미니즘에 얹혀가냐는 글이 나온다. 아니. 여자가 주인공이고, 남초인 일터에서 여자가 일하고, '라이프스타일잡지'에서 일하다가 '도축업'을 하게 된 건 충분히 넘치게 페미니즘이다. 비건이 되지는 못하지만, 좀 덜 먹고, 덜 전시하고, 동물권에 신경쓰고 싶지만, 그렇다고 적나라한 글들을 볼 자신은 없었는데, 이 책이 시작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여자 이야기니 금상첨화

 

 

  김애리 <열심히 사는 게 뭐가 어때서>

 

김애리 에세이. 소확행, 워라밸, 욜로… 다 좋다. 애쓰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고, 나만 생각하고, 대충대충 하자고? 이것도 좋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 괜찮겠어? 열심히 사는 게 그다지 멋있지도,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는 세상이 도래하였다. 언젠가부터 일에 몰입하는 사람, 땀 흘리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을 한심하게 보거나 비하하는 분위기다. 진정한 '열심'의 의미를 몰라서다.

자신에게 떳떳한 삶,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열심히 산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기준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 나답게 행복하고, 내 식대로 성공하며, 마음대로 꿈꾸면 된다. 저자는 말한다. "즐겁게 살고 싶어서 열과 성을 다해 내 인생에 집중합니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아. 류의 책들이 지겹게 나오니, 이제 열심히 사는게 뭐가 어떻냐는 책이 나온다.

열심히 사는 것이 무언가 잠깐 생각했다. 열심히 사느라 지친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하는데, 열심히 산 것이 자의였을까, 타의였을까. 학교생활.. 취준, 회사생활. 자의로 열심히 살아서 그렇게 힘들었던걸까? 그 자의가 정말 자의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내뜻대로 살았(다고 믿고 있)지만. 열심히 안 살았군.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오력을 하면서.

 

P. 91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이 늘 그대로였다면, 아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진다는 생각만 든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열심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 ‘’열심히‘에 대한 7가지 오해’ 중에서

 

 

  에일린 보드만 <매일매일 모네처럼>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는 <인상, 해돋이>, <파라솔을 든 여인> 등 걸작을 남겼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한 최고의 작품은 따로 있었다. 바로 1883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보금자리였던 지베르니. 그는 이곳의 집과 정원을 직접 가꾸고 꾸몄으며, 이를 화폭에 옮기곤 했다.

이 책은 아름답고 경이로운 지베르니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자연 가꾸기, 요리, 인테리어를 아우르는 모네의 라이프스타일이 담긴 집과 정원을 둘러보고, 여러분 생활에 모네의 빛과 색, 향기를 어떻게 담을 수 있는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야외 활동 전문가이자 미식가였던 모네가 지금 살아있다면, 우리가 날마다 자연과 좀 더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할 것이다. 모네 대신 이 책이 여러분을 좀 더 자연으로 나가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추천마법사에 언젠가부터 추리소설이 빠지고 '원예'가 들어간다. 모네 그림책인데 원예라, 지베르니 정원 얘기겠군! 역시. 

저자가 모네를 너무 사랑해서 모네를 알리려고 Monet's Palate 를 설립했다고 한다. 어머니 헬렌 라펠 보드먼이 지베르니의 모네 집과 정원을 되살리는 일에 최초 미국 대표 자원봉사자였고, 딸도 어머니 따라감. 영화제작자이자 사진작가.

 

P. 171 모네는 채소를 좋아했다.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식탁에서 바로 먹으면서 모네가 얼마나 좋아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모네는 방울양배추를 가을에 뽑아야 가장 좋다고 우겼다.

 

  마르타 멕도웰 <베아트릭스 포터의 정원>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토끼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는 스스로를 여성농부라고 말할 만큼 정원일과 농장일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가꾼 정원과 농장은 무려 500만 평(4000에이커)으로 여의도의 다섯 배가 넘는 크기. 처음에는 힐 톱 언덕의 소박한 집과 땅에서 시작했으나 사랑하는 마을, 언덕과 호수 주변이 개발 위기에 처하자 조금씩 땅을 사들여 꽃과 나무를 심고, 허드윅 양을 키웠다. 그렇게 지키고 돌본 땅은 세상을 떠날 때 모두 환경보호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했다.

영국 상류층 가정에서 자랐으나 그 시대 여성에게 주어지던 삶의 틀을 조용히 깨고 나와 자신만의 길을 걸었던 베아트릭스 포터. 그 아름다운 삶과 정원, 그리고 사랑 이야기가 베아트릭스 포터가 그린 풍성한 그림, 생생한 사진과 함께 펼쳐진다.

 

정원일 겔름 피운다고 글 앞에 적어두고, 이렇게 정원책 보다보니 맞아맞아! 나도 여성농부! 하게 되는군. 정원일이 내 마음 속 메인이 되고, 시간도 돈도 따라와주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근데, 베아트릭스가 사랑했던 500만평 정원 속으로..라니, 오..오..오백만평이요?

저자가 '글쓰는 정원사' 마르타 맥도웰이래. 멋있다. 글쓰는 정원사

 

  김인선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은 1980년대 말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 등의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이미 뛰어난 문장으로 두각을 드러냈지만, 가세가 기울어 일찌감치 낙향한 이후 평생 빚에 쫓기며 일정한 직업을 갖지 않았다. 지난 2018년 김인선이 급환으로 홀연 세상을 떠나자, 평소 그의 글재주를 알고 사랑하던 이들이 슬픔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 책을 기획했다.

<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는 그의 사후 저자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된 산문과 그가 온라인에 남겼던 글, 출판을 계획하고 집필하던 괴담 형식의 글을 선별해 한 권으로 엮어 세상에 선보인, 그의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다.

작성된 시기에 따라 계절별로 엮은 이 책에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동식물과 어울려 살아가는 즐거움, 농촌의 인간군상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함께 곤궁한 생활을 버티게 하는 허풍, 삶과 죽음에 대한 독특한 철학, 현실과 꿈의 경계를 뛰어넘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그가 쓴 글에는 부적응자이자 아웃사이더인 동시에 자연 속에서 천진하게 살아가는 사색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꾼, 자신마저 웃음거리로 삼는 탁월한 농담가의 면모가 담겨 있다.

 

책소개는 별로 안 땡기는데,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살이 하는 이야기는 좀 읽고 싶다.

 

P. 59 밭 모양이 농부를 닮는 것 같다. 밭이 캔버스라면 농부는 화가지 싶다. 나는 가끔 동네 밭을 그림처럼 감상하곤 한다. 오이밭, 깨밭, 가지밭, 녹두밭, 배추밭, 총각무밭, 마늘밭. 심은 것 따라 밭 모습이 다르다. 분위기도 다르다. 또 그 밭 임자 따라 같은 것을 심더라도 밭 분위기가 다르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다르고 저녁 어둠이 내리는 모습이 다르다. 같은 풍경을 그려도 화가마다 구도가 다르고 빛깔이 다르고 붓질이 다르듯이.

P. 89 오이가 어떻게 오이지로 변신하는지, 도토리가 어떻게 도토리묵으로 성육신하는지, 햇살이 옥수수에 어떻게 단맛을 들이는지, 잡초에 갇힌 고추에 어떻게 빨간 물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면, 염천을 견뎌낸 콩이 물과 소금과 하늘을 만나 어떻게 된장이 되는지, 어떻게 간장이 되는지 알 수 있다면,

그걸 알 수 있다면, 내가 왜 태어났는지,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을 텐데.

 

그 외 궁금신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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