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은 ㄷ도서관이었다. Y와 도서관에서 데이트를 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좋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희미해졌지만, 도서관만은 생생하다. 

 

도서관은 '책'이 있는 '장소'다. 도서관의 기억들은 책을 찾고, 책을 빌리고, 책을 읽는 기억에 한정되지 않고, 도서관에서의 봄, 도서관에서의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의 기억을 포함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은 지금 나의 작은 도서관이다.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이 두개면 안되나? ㄷ 도서관에는 데이트할 때나 갔었다면, (아니면, 그 멀리까지 갈 일이 없었음) 지금 나의 작은 도서관은 집에서 걸어 십분이 안 걸리는 곳에 있다. 집, 알바, 도서관, 정원 거의 매일 가는 곳들이 다 걸어 십분 이내에 있다.

 

이전 이십년에 비하면 지금은 책을 거의 사지 않는다. 예전의 내가 책을 사는 행위는 뭐랄까, 정말 뭐랄까, 읽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책과 나는 가족과 나만큼이나 깊고 여러겹의 감정들이 쌓여 있어서, 지금 뭐라고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생각할수록 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세상 누구도 한 생에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는 없거든. 지금이라고 딱히 나아진건 아니다. 책은 거의 사지 않지만, 도서관을 정말 부지런히 이용한다. 그리고, 다 못 읽는다. 아이고.

 

시골로 이사간 책 좋아하는 사람이 베스트셀러만 있던 시골 도서관에 독립서점에 나올법한 책들을 계속 신청해서, 독립서점같은 힙한 책리스트가 꽉 찬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다. 육지의 큰 도서관에서는 좀 있기 힘든일일거라고 생각하는데, 시골에서는 가능하지. 내 작은 도서관은 여성학 도서관이 되고 있다.

 

희망도서 신청이 계속 된다. 책이 들어오는건 두 달에 한 번인지, 석달에 한 번인지. 여튼, 읽고 싶은 책들이 있을때마다 도서관 검색을 먼저 해본다. 신간 말고도 좋다는 책들을 부지런히 빌리고 있다. 책검색해서 도서관에 있을 때마다 (보통 도시 도서관에서 검색하면 다 있는데, 여기는 있으면 반가운 수준이고, 그 수준도 내가 읽을 수 있는 양보다는 훨씬 많다) 굉장히 기쁘다.

 

미니멀책들에 나올법한 이야기, 마트를 내 팬트리처럼 이용할 것, 도서관을 내 서재처럼 이용할 것. 둘 다 가능.

 

도서관 가는 길에 풀과 나무들 구경하며, 계절을 느끼는 것도 좋고, 도서관 안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느끼는 것도 좋다.

책과 책을 읽는 공간과 그 공간을 둘러싼 시간이 있는 곳. 그러고보면, 책을 늘 사서 읽고, 도서관은 가지 않던 내가 이렇게 도서관에 익숙하게 된 계기가 된 구애인에게 고마워. 도서관, 정말 나랑 찰떡이고, 사람은 사라져도 도서관과 나는 굳건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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