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편력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앗, 그러고 보니, 표지의 글씨 써주신 박원규님 얘기 어제 술자리에서 한참했는데,
내 가방 속에 그 분 글씨가 들어 있는 줄은 몰랐네.

드디어 이광주의 '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편력'을 다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필자들, 유재원이라던가, 유재현이라던가 이주헌이라던가 ( 왠지 이름이 다 비슷;)
에 이광주를 추가.

유재원의 글처럼 시적이거나, 유재현의 글처럼 유머가득하고 따뜻하다거나 이주헌처럼 바르고 착한 느낌이 팍팍 나지는 않지만, 호모 루덴스로서의 말그대로 지적 편력 놀이에 꼭 맞다.

그 놀이에 동참하는 것은 간만에 즐거운 고전놀이였다.

저자의 첫 마에스트로는 괴테이다. 첫 챕터인 '유럽, 나의 지적 편력'과 '지중해 찬가'에서 그가 이 책에서 돌아보고자 하는 그의 마에스트로들에 대해 잘 버무려 놓았다. 좋은 시작이다.  만만치 않은 이름들이 나오지만, 마음 편히 먹고, 아벨라르, 유럽 최초의 지식인에서부터 그의 편력을 쫓아가면 된다. 지위와 부를 버리고 '변증법'의 무기를 지니고 담론의 싸움을 선택한 아벨라르의 이야기. 뒤에 나오는 엘로이즈와의 사랑 이야기는 꼭 더 찾아서 읽고 싶다. 항상 젯밥에 더 관심이 많다.

두번째 마에스트로,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 챕터는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이다. Nulli concedo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습니다.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으로 학교다닐때 교과서에서 본 것, 그리고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를 내셔널뮤지엄에서 본 것 말고 그에 대한 나의 지식은 전무했다. 가장 격렬한 종교혁명의 한 중심에 서서 아무곳에도 속하지 않고, ' 나는 비극 배우보다는 오히려 관객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던 에라스무스. 이광주는 한 세대의 위인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그들 저서 또한 풍부하게 인용해 두고 있으며, 에피소드들도 실감나게 소개하고 있다.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를 다음에 읽을 책으로 사 두고, 페터 회의 '여자와 원숭이'( 에라스무스 사랑을 말하다) 의 원숭이 이름이 에라스무스인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다시 고민해본다.

세번째 마에스트로, 몽테뉴. 
시민 계급 출신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아주 어릴적부터( 두 살때부터 독일에서 초빙된 라틴어 학자를 가정교사로 두고) 학구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다. 어릴 적부터 받은 고전 세례에 더해 그의 뛰어난 인간에 대한 관찰력과 천재성은 일찌감치 그를 범인의 경지에서 위인의 반열로 올려 놓았다. 그는 '독서를 즐기고 글쓰기에 나날을 보낸 서재인이기에 앞서, 담론과 사교를 즐긴 모럴리스트이며 에스프리의 인간, 그리고 오네톰(honnête homme ) 이기도 하였다' 몽테뉴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수상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서재인으로서의 몽테뉴 말년에 대한 이야기 등은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한껏 키워 놓아 기어코 '수상록'을 장바구니에 넣고 만다.


 

 다음 챕터는 괴테. 저자는 괴테에 대해 가장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고, 그 지식의 깊이도 깊은듯하다. 그렇기에 가장 짧은 챕터? 혹은 그나마 내가 아는 괴테이기에 이 챕터는 그닥 신기하지는 않았다.

다음 주자는 부르크하르트, 낯선 이름이었고, 왠지 집중도 안 되었는데, 내 탓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 다음은 츠바이크. 이 책 전에 막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를 끝낸지라, 그리고 츠바이크의 책들은 많이 읽었지만, 그에 대한 글은 막상 읽은 적이 없기에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말년의 우울, 그리고 자살로 마감한 천재의 인생은 새삼 충격적이었다.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의무를 짊어지지 않는, 그럼으로써 모든 나라에 대해 차별 없이 속하게 되는 그런 무국적의 상태라면 그것은 얼마나 좋을 것인가' 라고 말하는 츠바이크. 그가 쓴 사람들에 대해 열광하면서, 난 왜 지금까지 그를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인지.

역시 예전에 사 놓은 책이다. 츠바이크의 책은 이 책과 '발자크 평전' (안인희 번역본도 사고 싶다), '에라스무스 평전' 이 남았다.

스펜더, 교양 있는 좌파. 역시 이 책에서 처음 접했고, 발레리에 대해 읽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 책의 두 번째 수확. 클림트를 읽는 것이었다. 클림트야 너무나 잘 알려진 화가이고, 예전부터 좋아했었지만, 그가 산 시대 세기말 비엔나를 읽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울 듯하다.

다음은 윌리엄 모리스의 이야기
19세기의 진정한 르네상스맨.
그의 사인을 묻자 주치의는 "윌리엄 모리스였던 덫이 주요한 원인이었습니다' 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1인분의 인생에 몇 사람치의 일을 한 까닭이었다는 것이다.
건축, 인테리어, 미술, 시詩, 출판, 사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연구대상이다.

마지막으로 호이징가와 베토벤 이야기.

인문학 이야기만 나오다가 마지막 마무리가 베토벤이다.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은 워낙에 오래 보관함에 들어 있던 책이긴 하다만,
다시 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렸다.

이 책, 이광주의 '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편력' 은 보기 드물게 예쁘게 나온 책이다.
책의 내용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내용이거니와 도판도 최상의 질로, 참으로 세련되게 삽입되어 있어서( 요즘 나오는 책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미덕이다) 옆에 있어도 보고싶은, 아니, 가지고 있어도 소유욕이 드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다 훌륭하고, 체인리딩, 이 책을 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책을 읽게 되리라는 점에 있어서 더욱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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