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주 내려와 처음으로 함덕을 벗어나 서쪽에 다녀왔다. 아름다운 수목원을 걸었고, 예쁜 수국들이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다보니, 낮잠도 놓치고, 강기사가 사 준 연어회와 멍게회로 각각 연어장과 멍게비빔밥을 만들었다. 남는 연어와 남는 멍게는 회로 먹었다. 연어 먹을까 멍게 먹을까 하다가 둘 다 사서 둘 다 한꺼번에 처먹다니, 참 나..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라. 연어는 연어장 만들거였는데, 양이 많았다고. 라고 핑계를 대 보지만.

 

연어는 회로 먹으나 연어장으로 먹으나 맛있을게 틀림없다. 그러나 멍게는?

멍게 회를 즐겨 먹지는 않고, 멍게젓갈은 좋아한다. 멍게젓갈 맛있어. 멍게비빔밥도 맛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집에 있는 풀떼기는 그제 닭똥집 튀김과 함께 다 쓸어 먹었고, 비빔장과 참기름과 김을 잘라 넣었고, 대부분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내 입에도 맛 없었다. 대부분의 음식을 맛있게 먹다 가끔 맛 없는데, 그게 다 내가 한 거. 젠장젠장! 여튼, 먹다가 포기하고, 이를 닦아도 기분이 나빠. 아이스커피나 마셔야지. 하고 있었는데, 잠이 들었고, 깨 보니 열두시 반이다. 평소 같으면 그냥 다시 잤겠지만, 오늘은 저녁때 맛없는 멍게비빔밥 먹다 남은게 생각 나서 안 자고, 그냥 침대 옆의 책 들고 읽기 시작했다. 밤 새게 되면, 내일부터는 잘 자겠지 뭐. 하는 마음으로다가.

 

그리고, 멍게비빔밥을 살려보기 위해서 파랑 마늘 볶고, 양송이버섯 (1끼 1양송이버섯 하고 있다.나의 요즘 최애 식재료) 한 개 자르고, 양파 썰어 놓은거 넣고, 볶다가 멍게비빔밥 투하, 고추장 추가해서 먹어도 멍게향은 여전히 진하다. 음. 멍게 너 이런 맛이었구나. 고추장 너무 많이 넣어서 짤까봐 계란 후라이도 얹었더니,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맛 괜찮은 거 같아. 이것도 맛 없으면, 튤립햄이랑 미국 소세지도 넣어보려고 했지. 하하

 

아니, 이건 멍게에 대한 페이퍼가 아니라, 1만 시간에 대한 페이퍼였지.

 

침대 옆의 책은 '마녀체력'이다. 선물 받은 이 책 너무 좋았고, 선물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선물하기 전에 한 번 더 읽어보려고 읽던 중에 만시간 이야기 나와서, 아! 하고 벌떡 일어나 멍게볶음밥을 ..

 

정말 좋은 책이고, 나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 좋은 영향을 이 사람도 받았으면 좋겠어서 멀리서 선물해 준 마음 너무 알 것 같고, 나도 같은 마음으로 이 책을 선물하려고 한다. 이 책을 처음 선물 받고 읽었던 때가 올해 여름이다. (06-17이라고 페이퍼에 나와 있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또 꽤 다르고, 이 책은 또 다르게, 더 좋게 읽힌다. 좋은 책 선물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해요!

 

다시 메모하면서 읽다가 이 부분을 당장 얘기하고 싶어서 이 새벽에 침대에서 일어나 멍ㄱ..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에 나오는 전문가의 1만시간

 

" 작곡가, 야구 선수, 소설가, 스케이트선수, 피아니스트, 체스선수, 숙달된 범죄자, 그밖에 어떤 분야에서든 연구를 거듭하면 할수록 이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1만 시간은 대략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간 연습한 것과 같다. "

 

나는 이 책을 2010년 2월에 읽었다 (역시 알라딘에 나옴) 지금으로부터 8년 8개월 전이다.

이걸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루에 세 시간씩 십년이면 전문가가 된다고? 그럼, 나는 일본어를 세시간씩 하고, 또 뭐는 몇시간씩 하고, 막 이렇게. 8년전만해도 시간이 무한한 것 같았고, 무모한건 지금이나 그 때나 같다. 그 때 뭐라도 시작했으면, 나는 만시간은 아니라도 만시간 가깝게 뭔가를 해서 전문가가 되어 있을텐데 말이다.

 

2010년 2월의 나는 몰랐을테지만 그해 가을 나는 꽃을 시작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꽃만 하던 시간들이 몇 년이고 쌓였으니 전문가인가? 라고 하기엔, 음..

 

이건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몰라서 몇 년에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전에 만시간 이론을 다시 접했을 때, 만시간 이론을 인용한 저자는 하루 세시간이건 열시간이건 수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도움되지 않는다. 공부하고, 연습하고, '어제보다 낫게' 발전하는 그런 시간들이 모여야 한다. 는 글을 봤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난 오늘 (사실 몇 달 전에도 이 책을 읽었지만, 그냥 지나갔던) 1만시간 이론의 '십년동안 하루 세 시간'이 처음으로 무겁게 다가왔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아서.는 아니고, 하루의 시간을 쪼개서 잘 쓰는 것을 열심히 생각하고 있고, 모든 걸 뒤엎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 시작해서일 것이다.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노력한 시간들이 있었고, 이제 나를 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쓰자마자 오랫동안 나의 한심한 꼴들을 봐왔던 사람들이 응원을 해주고 있고,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 큰 힘이 된다. 말하지 않아도, 부담될까봐 말하기 힘들어도 마음으로 응원 해주는 사람들 마음까지 나 혼자 막 짐작하고, 힘내고 있다.

 

책 속의 비유 문장들을 아, 이런 뜻이구나,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최근에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는 말을 아, 이럴때 쓴 말이겠구나. 깨닫게 되었고, 요즘은 '날개를 단 것 같다' 는 말이 이 비슷한 기분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40에 운동을 시작해 10년을 한, 저자의 모토는 '천천히,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였다.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지만,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움직이고 싶기 때문이고, 언제라도 손짓하며 지나가는 기회를 확 잡아챌 수 있는 몸 상태를 준비해 놓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53살? 저자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사십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 것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준비된 나이고 싶다. 오늘의 서쪽 방문은 어쩌면 나에게 찾아온 기회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 해보려고 한다. 내가 여기 내려온 것만으로도 이미 준비는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번 일이 그냥 작게 끝나던, 커지던간에 다음 기회를 위해 지금 당장부터라도 꾸준히 준비를 시작해,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가겠다.

 

일 뿐만 아니라, 책읽기도 그렇다. 책은 시간이 많을 때가 아니라, 내가 열심히 살 때 가장 잘 읽힌다. 나는 그랬다.

책이 안 읽히는 건, 그냥 숨쉬는 것만큼 쉬운게 책읽기였는데, 책이 안 읽혔던건 나에게 충분히 내가 뭔가 잘못 됐다.는 신호였던 것을 이제는 알겠다. 그리고, 이제 다시 무의식적으로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내가 책읽는 것을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내내 마음에 남았었던 것 같다. 제대로 반박하지도 못했었다.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은 도피가 아니고, 내가 잘 살고 있는 증거라고.

 

하루 세 시간씩을 무언가에 내 줄 수 있다는 거. 무거운 하루 세 시간. 24시간, 7일의 일상을 가꾸는 중의 가장 농축되고 소중한 시간일 것 같다. 맨날 쉬는 날 없다고 엄살 떨며 징징댔지만, 내게는 그  세시간이 있다. 내가 뭘해도 좋을 세 시간. 그건 나의 소중한 시간자산이고, 이제 나는 그걸 잘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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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8 1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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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9 0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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