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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성경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열두 명의 제자를 뽑으셨는데, 이 열두 제자가 배를 타고 바다(라고는 하지만 알고보면 호수)를 건너고 있는데, 저 멀리서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지 않겠어요. 은근 다혈질인 베드로라는 제자가 예수님인 걸 알아보고 저도 걷고 싶어욤! 외칩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시지요. 그래? 자 나를 믿고 걸어오렴. 호기롭게 발을 내딛습니다. 오오? 안 빠져? 오오? 나 지금 물 위를 걷고 있는 거니? 신기한 것은 잠깐, 발 아래를 보니 시커먼 바다가 있지 않겠습니까. 침이 꿀꺽. 저기서 빠지면 끝인 건가? 뭐 이런 의심을 하는 그 순간, 발이 폭 하고 빠져버립니다. 오 마 이 갓! 


걱정은 마세요. 예수님이 구해주시니까요.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여, 의심 말라, 하십니다. 자세한 사항은 성경 중에서도 신약성경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바우만에 따르면, 우리는 의심이고 뭐고 생각조차 없이 물 위를 걷고 있습니다. 아니죠. 어쩌면 내가 물인지, 물이 나인지 모를 정도로 되는대로 흘러가며 살고 있는 겁니다. 유동하는 근대란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이해해보았습니다. 


몰랐는데, 지그문트 바우만은 소비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학자라고 하더군요. 아아 무식한 제가 어찌 그걸 다 알겠습니까. 이렇게 새 책이 나올 때 한 마디씩 주워들으며 알게 되는 것이죠. 바우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표지에 실린 이미지를 보니 어느 정도 파악이 되더군요. 세상에 저런 표정을 저렇게나 자연스럽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총 마흔 네 통의 편지, 라고는 하지만 나한테 개인적으로 온 편지라고 해도 한번에 읽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만 같은 글,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무심하리만치 냉정하게 바라보는 바우만이 있습니다. 어느 때는 혼나는 것만 같았어요. “네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이 따위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신경도 안 쓰고 살고 싶니? 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데? 네가 접하는 모든 게 엉망진창이라는 걸 정말 모르겠어?” 

아니 잠깐만요. 유동하는 근대라는 게 뭡니까. 담는 그릇에 따라 형태와 색이 변하고, 어떤 자극이냐에 따라 온도가 변하고 부피도 변한다는 그 액체성을 강조하시면서, 그래 늘 변하고 말아버릴 그 세계를 기적처럼 살아내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데, 이걸 또 멀찍이서 쳐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똑똑하게 살 수 있다면, 세상이 이 지경이 됐겠습니까? 라고 따지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할 수 있는만큼 우리는 우리를 알아야 하니까요. 단지 아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모든 걸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조금의 개념이 잡힌 기분입니다. 블로그에 아무렇게나 글을 쓰고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버릇처럼 쓰던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지켜볼 필요가 있겠더군요. 그래서 그 잃어버린 '고독'을 찾아볼까 해요. "뭐 어때, 이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이것저것 모든 게 이해받아야 하고 용인되어야 하는 거아냐?"라고 뭣도 모르면서 읊기만 했던 나에게서도 조금은 멀어져야 할 필요가 있겠더군요. 뻔하긴 해도 편리에 엿바꿔먹은 더 소중한 가치를 찾아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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