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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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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있어서나 장래에 있어서나, 고민하고 있을 때면 듣게 되는 말이 있었습니다. 미련보다는 후회. 그렇습니다. 주저하다가 때를 놓치고 ‘그때 했으면 잘 됐을 텐데’ 따위의 미련을 가지느니, 질러놓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는 말이지요.

선택을 한 적도, 끝내 하지 못한 적도 있다보니 제 20대는 온통 미련과 후회로 가득합니다. 미련과 후회, 왠지 반반 정도의 확률 게임인 것 같지만 백이면 백 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의심을 해보기도 했어요. 어느 날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하죠. 그래도 그때의 결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라고 믿게 되는 선택들이요.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 마르크스를 가슴에 품은 코뮤니스트들에게 코뮤니즘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전쟁과 이념싸움이 어느 정도 끝난 뒤에 태어난 저는 소비에트 연합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편하게 TV로 볼 수 있었죠. 왠지 공산주의는 이제 끈 떨어진 가방처럼 쓸모없어졌다 생각하고 말아버렸을 시대가 있었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저는 다시 공산주의를 생각하는 요즘, 책을 열심히 읽으며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요.

 

마르크스, 혹은 마르크스 이전부터 새록새록 피어난 공산주의에 대한 갈망은 마르크스를 만나 정점을 찍게 되지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 이론 정립에 박차를 가하면서 그들의 저작은 공산주의계의 바이블이 됩니다. 성경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것처럼, 마르크스의 저작도 시간이 흐른만큼의 주석서들로 넘쳐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의 욕망 때문이 아닐까 해요. 성경이든 마르크스든.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서비스는 1917년 이전부터 현재까지의 코뮤니즘을 정리했는데, 얼추 따져보면 약 백 년 정도의 역사를 훑은 것이 되지요. 한 나라의 백년사를 다루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인데, 유럽에서 시작하여 아시아를 거쳐 전지구적으로 번져나간 코뮤니즘의 불길을 정리하는 것은 신기에 가까운 일입니다. 번역본으로 700여 페이지 분량의 책이라니 정리한 것도 놀랍지만 그 양도 엄청납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백 년 여의 역사를 700여 페이지로 정리하는 작업도 대단합니다. 요점 정리를 한다해도 이렇게 줄이기 쉽지 않을 거에요. 그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문장이 굉장히 단단합니다. 수사를 줄이고 되도록이면 간결하게 역사를 정리해나가고 싶은 사가의 마음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자수처럼 알알이 박혀 있달까요.

 

그래서 이 책은 쉽게 읽기도 어렵고, 양도 만만치 않아 단숨에 읽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책은 그 무게를 달리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간단히 코뮤니즘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이야기를 듣듯이 읽고 싶으시다면야 슬렁슬렁 진행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되겠어요. 생각보다 다이나믹하거든요. 코뮤니즘은 혁명을 일으키고 또 다시 일으킬 수 있는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미련의 문제일 겁니다. 조금만 달리하면, 조금만 희생하면, 조금만 완력을 쓰면 모두가 행복한 그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울 수 있을 거라는 그 희망을 지피기에 부족함이 없거든요. 그러니, 미련스럽게 굴지 말고 하자, 해보자, 외칠 수 있는 것이죠.

 

하워드 진이 쓴, 맑스인소호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맑스는 영국의 소호에 살았었거든요. 그런데 어쩌다-아마도 관리의 실수로- 미국 소호로 오게 됩니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허락받아서요. 백 년 정도의 시간 동안 세계를 지켜본 맑스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다시금 설파하고 떠납니다.

 

그 작품을 읽고, 꼭 한 번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감사하게도 무대에 올릴 수 있었지요. 배우는 아니었지만 대사를 읽고 또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마르크스의 가장 큰 단점이 있다면, 그건 어쩌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아닐까 했죠. 마르크스는 인간을 너무 믿었어요. 아직도 헷갈리는 역사의 단계, 공산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건지 아님 그 역인지, 어쩌거나 일당독재가 있고나서 사회 체제가 완전히 바뀐 후엔 독재를 끝내고 시스템에 맞춰 행복하게 살게 될 거란 기대는 정말 기대가 아닐까 싶은 거지요. 어느 누가 권력을 쥔 후에 그걸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 반지인 걸요.

 

많은 시도들이 독재까지는 어떻게 끌고갈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넘어가지 못했고, 또 아직도 그러고 있지요. 그 사이에 노선을 달리한 사람도 있고, 포기한 사람도 있죠. 미련과 후회, 두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혁명을 꿈꿉니다.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이 책은 아마도 미련과 후회, 두 사이로 당신을 밀어넣을 수도 있고 책장을 덮는 순간 미련이고 후회고 다 필요없다는 생각을 하며 코뮤니즘을 지워버리게 해줄 수도 있을 만큼, 코뮤니즘을 잘, 또 세세히 정리해줍니다. 아차, 글쎄요. 어쩌면 이 책을 덮은 후엔, 입맛에 맞게 코뮤니즘을 읽어 줄 또 다른 책을 찾게 만들어줄 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마르크스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거든요. 위정자들은 제 잇속 챙기기에 바쁘고, 경쟁에 지친 사람들은 독기를 품은 채 범죄에 집중하거나 그도 아니면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해버리는 일이 빈번해지는 요즘에도 내일을 꿈꾸며 잠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잖아요. 우리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은 채로 살고 있다는 걸요. 저라고 다르겠습니까?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이 어떻게 출근을 하고 밥을 먹겠어요.

 

그런데 이거 미련이면 어쩌죠. 이게 미련이라도 우리는 살아갈 겁니다. 그런데 이 미련, 영원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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