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시의 루브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오후 네 시의 루브르
박제 지음 / 이숲 / 2011년 10월
평점 :
언제였을까요, 호암미술관에 갔는데, 도슨트 설명하는 시간이 있다고 얘기 해주더군요. 아마도 10년은 족히 넘은 이야기입니다. 도슨트가 뭘까 싶어, 기다렸죠. 네, 아무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무식하다고 무시하는 그 눈빛들한테 전 여러번 상처를 입었으니까요.
시간이 되어 도슨트를 따라 그림과 그림을 보고 듣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경험을 했습니다. 때로 불편할 때도 있었어요. 저 혼자 우두커니 서서 그림의 요모조모를 찾아내고 즐거워하는 그런 시간을 갖기 힘들었거든요. 도슨트를 굳이 따라다니지 않아도 되는데, 그때는 왠지 놓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어요. 신기했거든요. 하나하나 마다 작가와 연대,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에피소드는 물론이요, 그 많은 걸 술술 풀어 설명해주시는 것까지 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의 힘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때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달달 외운다해도, 잘 전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요.
저는, 그런 경험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했습니다. 가보진 못했지만, 루브르의 크기가 하루만에 모든 걸 볼 수 없다는 건 많이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쉬지 않고 걷기만 해도 하루 만에 다 못 걷는다는 거였죠. 어후, 국립현대미술관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지하철역에서 내려 미술관까지 걷고, 쉽게 오기 힘들다며 모든 작품을 보려고 마음 먹었었죠. 하지만 포기했습니다. 다리가 너무 아팠거든요. 감상도 체력이라는 걸 절감하며 집에 돌아와야했지요. 그런 저에게 루브르는 어떤 곳일까요? 어쩌면 숨만 쉬어도 한 달 이상을 소요해야 하는 곳이 아닐까요? 그건 불가능하지요. 시간도 돈도 체력도 그 무엇도 불가능해요.
직접 가보기도 쉽지 않고, 가서 본다해도 깊이 있게 작품을 만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요.
야구장 얘기를 해볼까요? 우리는 우리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주로 보러 가지요. 그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한 것도 있지만, 팬들과 함께 응원을 하기 위해서가 크죠. 제대로 공을 보고 타자를 보려면 TV가 훨씬 낫습니다. 훨씬 가까운 자리에서 해설을 들으며 여유롭게 볼 수 있거든요. 장단점이 있다는 소립니다.
'오후 네 시의 루브르'는 야구장에 가고 싶어도 여러 제약 때문에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TV로 경기를 보며 마음을 달래라고 말해줍니다. 명작들의 아우라가 넘쳐 흘러나는 루브르.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좀 더 가까이에서 도판을 보고, 나보다 먼저 이 작품을 보고, 아름다움과 배경을 설명해주는 도슨트가 있지요. 우리는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고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루브르에 있는 모든 작품들이 나오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이 도슨트의 컬렉션 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하나의 라인업을 만난 것이죠. 자 이제 그 다음은 우리 차례일 수도 있겠습니다. 직접 어느 미술관이든 찾아가 각각의 작품에 숨어 있는 진의를 찾아내어 이야기를 완성해보고 나만의 컬렉션을 만들어 볼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처음엔 어설프고 어리어리한 게 당연하겠지요. 그렇지만, 이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나에게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우리가 영화를 보고 우리만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 같은 거 말이에요.
참, 책이란 재미있습니다. 한 권으로도 이런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다니요.
연말입니다. 모두 안팎으로 훈훈해져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