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코스투라 1 - 그림자 여인 시라 샘터 외국소설선 9
마리아 두에냐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샘터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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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면 스티그 라르손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나. 여인의 몸으로 운명에 맞선다는 그럴듯한 카피보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을 제친 소설이라고 해서 읽었다. 더군다나 작가의 데뷔작이란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데뷔작으로 <밀레니엄>을 제쳤을까라는 호기심이 동했다. 디자이너의 직업을 가진 여자가 스파이라는 설정도 솔깃했지만 스티그 라르손에게 무한 신뢰를 갖고 있는 내가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건 당연하지 않을까?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기 전, 시라와 시라의 엄마는 옷 만드는 일을 하며 가난하지만 오붓한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어느덧 근사하게 자란 시라는 어느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지만 첫 눈에 반해버린 라미로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시라에게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버지는 유산을 물려준다.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유산을 가지고 어머니와 약혼자를 외면한채 시라는 라미로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모로코로 떠난다.

 

처음에는 시라와 라미로와의 열정적인 사랑에 내 마음도 두근두근해졌다. 운명적인 사랑이 있다면 그들 같았을까? 천상 여자라 순진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시라는 약혼자를 버리고 떠날만큼 냉정했다. 강렬한 사랑에 사로잡힌게 이유였지만 단 한 순간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만큼의 냉정함에선 팜므파탈의 매력이 물씬 풍겼다. 라미로에게 큰 상처를 받고난 뒤의 시라는 너무 가녀리고 아팠지만 시련을 꿋꿋하게 극복하는 모습은 한 층 더 빛나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소설 속에서 함께 한다. 실존했던 인물과 허구 인물들의 조합은 그럴듯하다. 역사적인 배경 외에 시각적으로 충만했던 그 시대 귀부인들의 사교계 패션과 디자이너의 직업 세계는 신선하다. 읽다 보면 작가가 굉장히 공들여서 쓴 소설이라는걸 알 수 있다. 탄탄한 역사적 배경 지식은 물론 패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놀랍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했으니 수많은 언론사들의 찬사들은 이해할만하다.

 

내전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부분들은 조금씩 지루했지만 여자들이 동경해 마지 않는 디자이너 직업의 세계는 흥미로웠다. 한 권으로 탄력받지 못함이 아쉬운건 디자이너 시라의 다음 행보인 스파이로 변신한 모습을 아직 못 봤기 때문일거다. 책 뒷표지에서 미리 읽었듯 스파이로 변신한 시라의 모습이 너무 궁금하다. 다음 권에선 시라의 운명이 어떤 곳을 향하게 될지, 과연 시라에게 새로운 사랑이 나타날지, 얼른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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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네오픽션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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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슬슬 먹어 가는데 뚜렷한 직장이나 비전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여행등을 하고 다니는 자유로운 영혼인 경민. 어느 날 별똥별을 보기 위해 캐나다로 떠났다가 알 수 없는 폭발 사고로 연락두절인 상태였다가 극적으로 돌아온 경민이 이상하다. 경민의 여자친구로 10년을 지켜봐온 한아. 전에 없이 자상해지고 넘치는 사랑을 주는 경민이 부담스러워 급기야 국정원에 간첩이라고 신고하기에 이르는데...

 

주인공 한아는 날로 오염되가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저탄소 생활을 몸소 지향하는 디자이너다. 직장에 들어가는 대신 친구 유리와 함께 의류 수선 가게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오염된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캐릭터에 개성을 불어 넣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착하고 온순한 성격으로 통통 튀는 개성은 없지만 한아의 성격을 잘 살리기만 했다면 저탄소 생활을 한다는 것 없이도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완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후반부에서 한아가 보여준 경민에 대한 사랑은 굉장히 진실해 보여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외계인이 사랑을 한다? 언뜻 상상하기 힘든 설정이다. 수많은 컨텐츠들에서 보아왔던 외계인이란 항상 인간보다 상위에 존재했다. 인간들이 나누는 사랑의 감정을 원시적이고 배척해야할 감정이라고 표현해 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쉽게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한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난다는걸 알게 되니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사랑에 대해 설레어졌다.

 

책에서는 한아가 외계인과 사랑을 했다. 남들이 보기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관계인건 분명하다. 한아가 사랑하는 사람이 외계인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누구나 축하를 해주는 사랑은 했겠지만 외계인과 나눴던 사랑만큼의 깊이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드러내놓고 사랑을 할 수 없는 관계임에도 당당하게 사랑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워졌다.

 

남녀(?)간의 사랑이 등장하는걸 보면 연애 소설인 것 같기도 하고 외계인이 나오는걸 보면 SF 소설로 보이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아닌 불분명한 장르로 아리송하게 만들지만 책을 덮고 나면 이건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라는걸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상대가 외계인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그 마음 하나만 진실하다면 세상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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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궁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향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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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세계문학상 대상작이다. 상받은 책들은 이유불문하고 좋아하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세계문학상 수상작들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참신함이 물씬 풍기는 글들과 지루할 틈이 별로 없어서다. 이번에 나온 <에메랄드 궁>은 에메랄드 모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모텔이라는 단어가 주는 호기심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그 공간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지는건 당연한 얘기 아닐까?

 

외곽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에메랄드 모텔의 안주인인 연희는 한숨이 늘어가는 일뿐이다. 무리하게 대출 받아 리모델링했지만 장사가 안되서 대출금 이자 갚기도 힘들고, 모텔 어느 방에서 잠만 자고 있을 것 같은 남편 상만은 꼴도 보기 싫을 지경이다. 모텔을 청소해주는 한씨는 오늘도 걸죽한 욕을 늘어 놓고, 약간 정신이 이상한 선정은 언제나 그렇듯이 211호로 들어가 버린다. 어려 보이는 연인들이 큰 가방을 들고 모텔로 찾아와 숙박비를 선불로 받고 방을 내주지만 갓난 아기가 있다는 말에 내보내기로 한다.

 

에메랄드 모텔의 안주인인 연희는 모질지 못하다. 모텔 장사를 하기 위해선 악착같고 모진 면도 있어야 하는데 연희는 냉정하게 내치지도 못하는 편이다. 연희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큰 상처가 있었다. 그 상처가 그녀를 모질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연희뿐만 아니라 모텔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은 다들 가슴 속에 상처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 힘이 되어주고 얘기도 들어주면서 그들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내 마음을 울리고 여운을 주기엔 충분했다.

 

요즘 어쩌다 스릴러 소설을 주로 읽다 보니 국내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골라본 책이었고, 재미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밀한 욕망의 배출구로만 생각했던 모텔에서 그들이 찾은 사랑은 잔잔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 한없이 빠져들다 에메랄드 모텔에 찾아온 노년의 커플 얘기를 보고는 울컥해지기도 했다. 한없이 서러운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이지만 나름대로의 희망을 가슴 속에 품고 지내는 모습들을 보며 어쩌면 나 스스로도 그들과 같이 작은 희망을 품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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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와 몬스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8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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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미스터리의 고수(?) 가이도 다케루의 신작이 나왔다. 의학을 소재로 미스터리 상까지 수상한 작가였기에 기대가 되는건 당연한게 아닐까. 그리고 마침 중국에서 새롭게 변이된 조류 독감이 유행중이라 현실감 있게 다가올 것 같아 고민 없이 읽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신종 바이러스 '캐멀'이 확산되고, 일본 정부는 바이러스의 방역을 철저히 하기 위해 공항마다 완벽한 시스템을 갖춰 놓았다며 매일 뉴스에서 떠들어댄다. 나니와 시의 외딴 곳에서 병원을 하고 있는 기쿠마 부자. 그들에게 신종 바이러스 '캐멀'의 존재가 확인되지만, 감기보다 약한 바이러스 독성에 호들갑 떠는 언론은 믿을 수가 없다.

 

솔직히 내가 예상했던 이야기들은 바이러스로 인한 불안과 공포, 아비규환으로 변한 일본을 그린 소설인줄 알았다. 참혹한 일본을 예상했던 나에게 전혀 뜻밖의 이야기 전개여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일본 의료계나 정치가 어떤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전반적인 일본 의료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부패한 정치계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 작가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에 '불상사 뒷수습 회의'라는게 등장한다. 정치계에 큰 스캔들이 터지면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그곳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자잘하게 모아뒀던 스캔들을 하나둘씩 터트려 한 곳으로 쏠린 관심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킨다는 고급 관료들의 회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명 '물타기'수법과 비슷했다. 우리네 현실과도 너무 닮아 있어 놀라기도 했다.

 

의학 미스터리 소설을 잘 쓰는 작가의 신작이니 당연히 그럴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예상 밖의 정치 소설이라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의료와 정치라는 소재로 적절하게 배합한 솜씨는 놀랍다. 일본 의료계와 정치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 긴 호흡은 참기 어려웠다. 그래도 메디컬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구축한 작가라는 믿음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만의 탄탄하고 독특한 장르는 어디서도 보기 힘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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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그래닛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8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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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도시 에버딘을 배경으로 '로건 맥레이'경사가 주인공인 스릴러물이다. 동유럽쪽 스릴러물은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어떨까 내심 기대를 했다. 그쪽 나라들답게(?) 날씨는 비와 눈이 지겹게도 내렸고, 차가운 화강암의 도시이다 보니 서늘한 기분이 읽는 내내 따라 다녔다. 물론 끔찍한 아동 연쇄 살인 사건도 빼놓을 수 없고.

 

일년 전 여성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을 잡으면서 생명까지 위태로워졌던 로건이 다시 복귀했다. 복귀하자마자 몇 달 전 실종된 어린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고 잔혹하게 살해한 방법이 부검을 통해 밝혀지면서 충격에 휩싸인다.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온전치 못한 몸으로 수사에 참여하게 되고 출중한 능력을 바탕으로 사건을 차근차근 파헤쳐 나간다.

 

이보다 더 끔찍하고 잔혹한 살해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다. 게다가 어린 아이를 상대로 한 살인 사건이다 보니 그 충격은 다른때보다 더 했다. 빨리 범인을 잡고 평화로운 일상이 되길 바랬지만 생각만큼 범인 찾기는 쉽지가 않다. 정황 증거는 있는데 확실한 단서가 없다 보니 수사는 언제나 제자리. 그래도 적재적소에 배치된 픽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여러 장면들 덕에 힘 빠지게 하는 수사 과정을 무리없이 지켜볼 수 있었다.

 

흔하게 보이는 마초적이고 남성미 물씬 풍기는 남자 주인공들과 달리 <콜드 그래닛>의 로건 맥레이 경사는 조금 친근하게 느껴졌다. 상사의 눈치도 보고, 여자 부하와의 로맨스도 기대하는 점들이 소소한 재미로 다가와 친근한 캐릭터로 다가온 것 같다.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들이 부각되다 보니 카리스마는 덜 했지만 옆집 아저씨(?) 같이 편한게 매력이라면 매력으로 꼽을 수 있겠다.

 

보다 친근한 캐릭터와 영국 냄새 물씬 풍기는 분위기로 강력한 임팩트는 없었지만 잔혹한 아동 연쇄 살인 사건을 덤덤하고 사실적으로 그려 읽는 내내 서늘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독불장군같은 캐릭터들에 슬슬 지쳐갈때 만나면 좋을 소설. 개인적으로 강한 캐릭터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로건같은 남자도 만나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건... '형사나 탐정은 이래야만 해'라는 고정 관념을 좀 깨줘야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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