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 페스티벌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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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 한 권의 책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신작이 나오면 꾸준히 책을 사게 되는 작가가 있다. 처음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었을 때 이유모를 수집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츠지무라 미즈키가 그 작가에 속한다. 처음에는 표지에 낚여서, 두 번째는 절판 소식을 듣고서였는데 어쩌다 보니 읽지도 않은 이 작가의 책이 수두룩하다. ‘물밑 페스티벌을 읽으면서 동반자 같은 수집병(?)에 대해 반성도 좀 했고 의외의 실력과 필력에 반해버렸다. ‘뭐 나오키상도 받았는데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하는 우스갯소리도 생각났고. ^.^

 

해마다 록페스티벌이 열리는 작은 마을 무쓰시로’. 마을의 발전을 위해 유치한 페스티벌이지만 주인공인 고등학생 히로미의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하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광장(?)에서 여배우 오리바 유키미를 알아보는 히로미. 같은 마을 출신의 유키미는 오래 전에 마을을 떠나 여배우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유키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유키미에게 쏠리고 히로미는 그녀를 둘러싼 여러 소문을 듣게 된다. 유키미에게 호기심을 느낀 히로미. 마을 호숫가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유키미가 마을로 돌아온 이유는 분명 있다. 복수를 꿈꾸는 유키미에게 히로미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유키미가 전해주는 마을의 숨겨진 비밀을 듣게 된 히로미. 고등학교 2학년의 평범했던 히로미의 일상은 단숨에 무너져 내린다.

 

사춘기 소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설은 아니다. 광고는 연애소설이라고 하지만 성장소설 혹은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해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마을의 비리를 둘러싼 음모론은 히로미를 정신없이 흔들었고 사랑의 열병으로 뜨겁게 유지되던 체온이 순식간에 식어버릴 만큼 히로미를 격정 속으로 몰아넣었다. 처음과는 너무나 다른 방향으로의 전개가 뜻밖이어서 뭐라 설명할 길이 없네.

 

소년의 불안정한 심리, 마을의 음모, 사랑의 열병, 거듭되는 반전 등. 지루할 틈 없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페스티벌이 아니었나 싶다. 분위기가 좀 어두운 축제 같은. ㅋㅋㅋ 예쁜 표지처럼 말랑한 이야기를 기대하지 마라. 말랑보다는 좀 과격한 이야기여도 축제를 즐길 마음만 있다면 푹 빠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의외의 실력과 필력에 반했으니 집에 모셔두기만 한 작가의 다른 책도 차근차근 읽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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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의 인형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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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궁극의 아이로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장용민 작가!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여기저기 추천도 많이 했고 작가의 전작까지 찾아보기도 했었다. 신작이 나왔다는 소리에 아끼고 아끼다가 뭘 읽어도 시큰둥한 요즘 이만한 책도 없을 것 같아서 꺼내기로 했다. 내용도 모르고 작가의 이름 하나 믿고 시작.

 

백연미술관 큐레이터이자 실력 있는 미술품 감정사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가온. 건강에 이상을 느낀 그에게 췌장암 판정이 내려진다. 인연을 끊고 살다시피 하던 아버지의 뜬금없고 알 수 없는 문자에 놀라는 것도 잠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아버지의 빈소가 차려진 안동의 어느 마을로 찾아간 가온은 아버지의 죽음이 우연한 사고가 아님을 알게 된다.

 

남사당패의 꼭두쇠였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가온에게 무관심했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가온은 아버지를 미워했고 불신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설아라는 배다른 여동생이 존재함에 화를 내지만 이상한 기운을 풍기는 설아가 밉지만은 않다.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뜨개질만 하고 있는 설아는 가온에게 아버지가 남긴 의문을 초대장과 인형을 내민다.

 

설아가 가온에게 내밀었던 인형은 남사당패의 꼭두쇠에게만 전해지던 인형이다. 기괴하고 음침한 모습을 한 인형의 비밀을 둘러싼 미스터리! 작은 인형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나중에는 역사를 둘러싼 커다란 이야기로 변모한다. 진시황이 그렇게 애타게 구했다던 불로초의 비밀까지. 상상을 마구 마구 자극하는 작가의 농간(?)에 당하고 말았다.

 

세련된 문체는 아니다. 어딘가 조금 부족해 보이기도 하고. 뜬금없는 로맨스도 살짝 불만이고. 하지만 그 모든 걸 상쇄할 정도의 강력한 힘은 있다.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궁극의 아이에서도 느꼈지만 속도감과 몰입감은 가히 최고라 할 만하다. 이번에도 역시 평일 늦은 밤에 읽지 말았어야 했는데 결국엔 새벽을 꼬박 지새웠다. 기쁘다. 이런 책을 마주할 때의 기분은 뭐라 설명을 못하겠다. 이 좋은 기분을 다른 사람도 누렸으면 좋으련만. 그저 푹 빠져 즐기기만 하면 되니 한 번들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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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즈가 울부짖는 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2
오사카 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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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도시 한복판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한다. 테러를 모의하고 주도했던 가즈히코는 조직으로부터 비밀 은폐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 절벽에서 떨어진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가즈히코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의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을 할 수가 없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직장상사라는 사람과 여동생이 찾아온다.

 

오랜만에 동창 모임에 나갔던 아내가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공안 엘리트 형사인 구라키는 사적인 감정에 휩쓸려 수사에 나서지 말라는 주위의 압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수면위로 드러나는 사건에서 살인청부업자 가즈히코의 존재가 확인되자 그를 쫓으려 동분서주한다.

 

복잡하게 꼬여있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 안달하는 킬러와 형사가 주인공이다. 가즈히코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과 여동생을 찾아 나서면서, 구라키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폭탄테러사건에 집중하면서 흩어져있던 퍼즐 조각은 제자리를 찾아 하나의 그림이 되어간다. 깔려있던 복선들과 모호하기만 하던 단서들이 해결될 때의 짜릿함이란. 더 없이 통쾌하고 시원하다.

 

하드보일드가 이래서 좋다. 거칠고 잔인해도 씁쓸하게 만드는 뒷맛에 여운이 깊고 진하기 때문이다. 범죄사건을 둘러싼 긴박한 추격전은 또 하나의 볼거리이기도 하고. 킬러 가즈히코와 공안형사 구라키의 본격 대결을 예상했지만 뜻밖의 전개로 놀라기도 했다. 그게 더 진한 풍미를 느끼게 해주는 요소였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서스펜스 가득한 거친 남자들의 이야기, 사랑해요, 하드보일드! ㅋㅋㅋ 올해 초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도 했다는데 찾아봐야겠다. 미지의 인물인 모즈가 영상화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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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미묘한 사이
임시우 지음 / 마롱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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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짝사랑의 기억은 있을 것이다. 딱히 짝사랑이라고 할 것도 없이 보면 설레고 자꾸 보고 싶고 얼굴만 봐도 콩닥거리는 심장을 주체하기 힘들었던 그런 기억 말이다. 대학 시절부터 선배를 짝사랑해온 주안이 여기 있다. 꽤나 친하게 지내 붙어 다닐 일도 많았던 선배여서 아직도 편하게 만나고 있다. 꾹꾹 눌러 담았던 마음이 크리스마스이브에 터져 버린다. 술기운을 빌어 선배에게 애정 빠진 담백한 사이를 제의한다.

 

사소한 거에 신경 써주고 눈치 보고 하는 게 귀찮아서 연애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주익. 아버지가 쓰러지신 뒤 얼떨결에 떠안게 된 아버지의 사업일로 바빠 연애에 할애 할 시간도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난 대학 동아리의 모임이 끝난 후 술 한잔 더 하자는 주안을 따라온 주익’. 주안의 발칙한 제안에 어안이 벙벙하다.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어도 아끼는 동생이어서 살갑게 지내던 사이가 와장창 깨져버릴 텐데, 주안은 정말 진심인 걸까.

 

당당하게 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들의 관계는 아슬아슬 위태롭기만 하다. 주체할 수 없이 서로에게 흘러가는 마음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사랑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이들이 안타깝다.

 

마음 없이 몸만 나누는 관계라는 설정은 19금이 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어디에 있을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렇게 해서라도 선배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주안의 욕심, 여동생 같았던 후배에 대한 마음이 그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주익의 진심이 만나 특별한 이야기가 되었다.

 

주인공들의 스펙(?)은 로맨스 소설치고 굉장히 무난하고 평범하다. 아픈 가정사도 없고, 특별한 상처도 없고, 그저 보통의 사람들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가 누구에게는 흔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더 깊은 공감을 하게 만든다. 내가 그랬고, 내 남자와의 연애시절이 자꾸 생각나게 하는 애틋하고 아련한 이야기에 잔잔했던 여운은 커다란 파동으로 변해 마음을 둥둥 울려대더라.

 

 

사랑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마음에서 하나씩 꺼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씩 채워 넣는다는 것을. 내 마음에서 너의 마음으로, 너의 마음에서 나의 마음으로. 뒤섞인 마음들이 꽉 채워져서 하나로 부풀어 오르는 것. 그 마음이 너여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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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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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이게 대체 얼마만의 글인가요. 감동과 감격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홍대 와우북 페스티벌에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들어간 은행나무 부스에서 작가님 이름을 보고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게 아닌가 해서. 내 눈은 정상이었고 폭풍감동을 하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간의 사은품들과 함께 품고 나왔더랬다. 아끼고 아끼다 이제야 꺼내보곤 우울의 동굴을 파고 있는걸 보니 역시 그녀의 글답다.

 

존재 자체가 가족들에게 짐이었던 선화. 서른다섯의 선화는 엄마의 안식처였던 꽃집의 사장이다. 물이 마를 틈이 없는 손은 습진 때문에 수시로 껍질이 벗겨지고 진물이 난다. 졸업시즌과 각종 이벤트로 한참 바쁜 날에 엄마의 기일이 다가온다. 서른일곱의 언니는 결혼을 하면서 엄마의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조카가 여덟 살.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다.

 

선화의 얼굴 한 쪽에는 꽃이 활짝 펴 있다. 그걸로 놀림을 당했고, 이렇게 태어나게 만든 부모와 언니를 미워했고, 세상을 외면했다. 바다에 홀로 외로이 떠 있는 섬처럼 그녀는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살고 있다. 얼굴에 피어있는 그 꽃 하나 때문에.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온다. 누구보다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선화에게 불행이 끊이질 않는다. 엄마가 죽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에게는 남아 있는 날들이 별로 없다. 하나뿐인 언니는 형부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다. 자신의 불행을 감싸주지 않던 가족이었지만 선화는 끌어안지도 버려두지도 않는다. 그저 닥친 일을 받아들이고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김이설, 그녀의 글은 언제나 불편하다. 삶의 한 귀퉁이를 덤덤하게 그려나가지만 밑바닥 인생은 결코 담담하지가 못하다. 처음엔 선화도 불편했다. 그녀의 얼굴이 그랬고, 너무 무심한 그녀의 성격에 그랬고, 꽃집 사장답지 않은 그녀의 냉정함이 불편했다. 서른다섯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세상을 마주보기 위해 터득한 그녀의 생존방식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도 계속 찾아 읽을 거다. 가슴 속에 구멍이 뚫린 듯 쓸쓸하고 씁쓸하게 만들어도 그럴 거다. 그녀의 글에서 짙게 맡아지는 삶의 냄새가 너무 진솔해서 저릿하게 만드니까. 다음을 위한 그 기다림이 너무 오래 걸리지만 않기를 바란다.


p.60
내가 싫어하는 계절인 봄이었다. 긴 겨울이 지나면 봄 햇빛처럼 일상이 화사해질 것 같지만,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한 헛된 희망을 품게 되는, 그저 허망하기 짝이 없는 계절이 바로 봄이었다.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꽃을 찾지만, 달콤한 초콜릿과 사탕을 유난하게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하지만, 그저 매년 반복되는 계절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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