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쇼 선생님께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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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적...
저희집은 그렇게 단란하고 따스한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밖에서 다치고 들어와도 그 상처에 붙일 밴드가 없는 집이었지요. 너무너무 아파서 죽겠어도 차라리 양호실에 누워있는 것이 집에 가는 것보다 더 편한...... 그것이 육체의 상처이든 마음의 상처이든.

사춘기 우울하고 힘들 수도 있었던 그 시기에 제게는 참 고맙고 고마우신 분이 두 분 계십니다. 두 분 다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이셨는데 마음 붙일 곳이 없어 허우적거리는 제게 당장의 목표가 무엇인지 세울 수 있게 해주셨고 늘 따스한 말씀으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지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저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두 분께 보내는 편지와 일기를 쓰면서 그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답니다.
그때 저는 그 선생님들을 한분은 탈무드라, 한분은 뽀루뚜까라고 불렀지요.
뽀루뚜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책을 아시는지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조그마한 아이, 제제에게 든든한 사랑의 나무를 심어주신 뽀루뚜까 아저씨.
저는 아직도 이 소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 초라하고 작은 아이, 제제가 꼭 저인 것만 같고 그가 뽀루뚜까 아저씨를 잃었을 때의 그 아픔이 가슴을 에이게 한답니다. 이런이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나는구만요...

제제에게나 저에게나 그렇게 누군가를 마음 깊이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어서 미약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된 것처럼 누구에게나 뽀루뚜까 아저씨가 필요하겠죠. 그것이 가장 가까운 내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저처럼 제3의 누군가일 수도 있구요.

[헨쇼 선생님께]도 누군가의 쓸쓸한 삶에 따스한 영향을 끼친 또 다른 뽀루뚜까 아저씨 이야기입니다. 비록 이 뽀루뚜까 아저씨는 직접적인 사람이 아니라 연필과 종이였다는 것이 다르지만요. 아니, 리 보츠에게 “헨쇼 선생님”은 마음을 의지하고 기대는 뽀루뚜까 아저씨였르겁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 떨어져 엄마와 따로 살게 된 리 보츠는 우거지상을 하고 혼자 다니는 아이입니다. 그는 부모의 이혼이 자신 때문인가 하는 자책감을 가지고 있고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대다수의 아이들이 이렇게 느낀다고 하더군요) 학교에서는 누군지 모르는 아이로부터의 도시락 도둑질을 당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그 누구와도 마음을 터놓고 지내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웃을 줄 모르는 아이.

하지만 좋아하는 동화작가 헨쇼 선생님께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답답함과 억눌림을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글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에는 무슨 말부터 써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전개시켜야 할지 참 어렵고 막막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자꾸자꾸 쓰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이 눈앞에 활자화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생각이 정리되고 단순명료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때로는 가물가물 아련하기만 했던 감정들의 색깔이 뚜렷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휘몰아치는 감정을 순화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에서 풀 수 없는 답답함과 억눌림이 해소되는 것도 느끼게 되지 않던가요?

리는 글을 쓰면서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 아빠의 일들을 나름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글쓰기를 잘 한다는 인정을 받게 되어 뿌듯해집니다. 이렇게 “넌 **을 참 잘 하는구나”라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세상을 밝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는지요.

이제 리에게는 더 이상 헨쇼 선생님이 필요 없을런지도 모릅니다. 그에게는 이미 그 자신이 자신의 뽀루뚜까 아저씨가 되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비록 엄마 아빠가 다시 합치시지 않더라도 리는 그것이 자신의 탓도 아니고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의 맛을 또 알아가겠지요.

단순명료한 글, 결코 오버하지 않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승민님의 흑백그림이 어우러진 이 책은요, 아이들도 읽어야겠지만 임기응변식이고 입시위주의 글쓰기에 골몰한 부모들이 함께 보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채점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스스로의 내면의 욕구가 동하여 쓸 때 비로소 참된 글쓰기가 되고 그것이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이렇게 잘 보여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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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04-26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해요..오랜만에 오셔셔는 또 울리고ㅠㅠㅠ

밀키웨이 2005-04-2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봐요, 반디님아
이런 일로 울면 안되지요.. 자, 자, 여기 손수건 ^^

lieschen 2005-09-16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꾹 누르고 갑니다. 오랫만이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