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스 윌리엄스의 이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토끼들의 사랑이야기는 미국에서는 사랑하는 연인들간에 주고받는 선물이라고 할 정도로 사랑에 대해 아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 그림책입니다.
작가인 가스 윌리엄스의 다른 책들( 잘자라, 프란시스. 샬롯의 거미줄, 보름달이 뜰 때까지)에서도 보여주다시피 이 작가는 동물들의 그 생생한 표정 하나하나까지도 어찌나 환상적으로 그려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처음 출판되었던 1958년 당시에도 심각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지만 최근까지도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답니다. 무엇이 문제인고 하니 1958년에는 주인공인 까만 토끼와 흰토끼라는 것이 인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그들의 결혼을 서로 다른 인종간의 결혼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백인으로써 도저히 유색인종과의 결혼을 상징하는 이런 그림책을 눈뜨고 보아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인종간의 편견이 어느 지역보다 강했던 알라바마 주에서는 1959년 반인종 분리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추방시키고 금서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서, 백인을 위한 수호대라고 하던가요? 그 하얀 두건을 쓰고 다니던 KKK단 말여요. 그들이 연상되면서 활활 타는 도서관이 그려져서 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쨋든 무사히 살아남아 이쁘고도 이쁜 사랑 이야기의 대명사처럼 불리우던 이 그림책이 말입니다. 최근에 최근에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지요. 책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인공인 두마리 토끼를 놓고 어떤 토끼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확실하게 나타나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정이 남성, 하양이 여성이라는 선입견에 비추어...또 먼저 사랑고백을 하는 쪽이 남성이려니..하는 생각으로 그냥 까만 토끼가 남자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읽어주지요. 그런데 이러한 성의 모호함이 최근에는 동성애적인 사랑으로 해석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영어의 특성상 남성이라면 He라는 인칭대명사를, 여성이라면 She라는 대명사를 쓸만도 한데 이 책에는 모든 문장이 그런 대명사가 아닌 The black Rabbit, The White Rabbit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번쯤 콤마를 찍고, he나 she로 시작해도 될 법한 그런 문장에도 말입니다.이러한 문장의 특성으로 동성애적인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작가인 가스 윌리엄스가 동성애자였다는 그런 추측(?)이 일고 있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렇게 해석이 달라지는 그림책이 몇권이나 있는지... 그냥 이쁘고 아름다운 사랑과 결혼에 관한 사랑이야기로 보아주기엔 생각이 너무나 많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