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강아지 파랑새 그림책 36
난 그레고리 글, 론 라이트번 그림, 김세희 옮김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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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런 책만 이야기하는 이유는...
5월은 사랑과 감사의 계절...
누구보다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 그렇지만 잊혀지고 소외된 곳에 있는 아이들..
매스컴을 통해 보여지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는 현재의 모습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난 그레고리 글에 론 라이트번 그림의 그림책 [잃어버린 강아지]는 표지그림에 눈이 가서 고르게 된 책입니다. 서점에서 책구경을 할 때 휙휙 넘겨가면서 내용은 보지 않고 일단 그림부터 보거든요.
우둘두둘한 종이 위에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
사실적이면서도 중심인물에만 포커스를 맞춘 간결하고도 깔끔한 그림에 눈이 확 꽂혀버렸습니다.

“신디가 분명히 아는 것이 있다면“라는 문장이 연속해서 두 번 반복되며 시작되는 내용.
왜 분명히 아는 것을 강조할까? 다소 의아해했습니다. 비로소 클로즈업된 신디의 얼굴을 보고서야 아! 하고 말았습니다.
옆으로 올라간 눈꼬리에 평평한 얼굴... 다운증후군이로구나...비로소 감이 왔습니다.

그룹홈에 살면서 호스피스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신디가 주인공입니다.
(그룹홈이란 장애인들을 아파트나 단독주택과 같은 곳에서 4~5명의 정신지체인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면서 그들이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는 금전관리나 행정적인 절차, 대인관계 등의 일들을 전문적인 사회복지사들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형태의 제도로 정신지체인들의 사회적 자립을 돕고자 만들어진 지역사회 통합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70년대부터 이미 시행되고 있었고 우리나라는 서울시가 92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호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살기 위한 의술이라기 보다는 죽음을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위로와 안락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병원을 말합니다)

신디는 강아지가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것을 분명히 알지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신디, 더 이상 바보같이 굴지 마”
“넌 강아지를 돌볼 수 없단 말이야”
“넌 하루종일 일하잖아”
“네가 하루종일 일할 동안 강아지는 어떻게 하니?”
“넌 강아지를 가질 수 없어”

신디가 강아지를 가질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곳은 그룹홈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된다거나.. 원칙적으로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는 곳이라거나... 그런 이유였다면 신디도, 저도 화가 나고 가슴 아프지 않았을 거예요. 신디가 전화번호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고 단정지어지는 현실인 겁니다.

좋은 가정에 입양시키기 위해 동물보호협회에 간 강아지 얼룩이를 찾으러 가보지만 얼룩이는 이미 떠나버리고. 신디는 오랫동안 공원벤치게 앉아 있었지만 아픔이 가시지 않았어요.
흔히들 다운증후군 환자들은 희노애락을 잘 못 느낀다고 하지요. 하지만 그럴까요? 아니요..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말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감정을 잘 못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비장애인인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익숙한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단정지어 말하는 거 아닐까요?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아픈 것 같았지만 우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신디는 풀피리를 만들어요. “얼룩아 이리와. 얼룩아, 내게로 와”
그리곤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매정하다 싶은 세상이긴 해도 우리 주변에는 그를 진정 아끼고 이해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신디에게도 말이죠.

난 그레고리의 최소한의 수식을 배제시킨 간결하면서도 솔직한 언어는 현재형으로 쓰여지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아주 객관적이면서도 유려하게 진행하고 있어요.
거기에 더한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 론 라이트번의 일러스트인데 배경이 일체 생략된 채 핵심을 강조하여 얼굴 단면이나 한쪽 손과 같은 신체의 일부분만을 잡거나 또는 어깨너머의 유리창만을 비쳐주는 마치 영화앵글과도 같은 구도(때로는 표정조차도 흐릿하게 그려지지요) 않은데다가 명암이 풍부하지만 색채가 강하지는 않은 그런 그림을 그려넣음으로써 이야기를 아름답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원제는 “
How Smudge Came”인데 Smuge가 강아지 이름이예요. Smudge, 왜 얼룩이가 되었냐하면요...

신디는 강아지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어요,
“오, 이런 이러. 강아지로구나”
“wid, 강아지가 보여요?”
"잘 보이지는 않아. 어둠 속에서 얼룩무늬만 보여.“
신디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어요.
“저도 이 강아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랬어요. 어둠 속에서 얼룩무늬만 눈에 띄였거든요”

이 이야기를 할 때의 저 만족한 신디의 얼굴을 보세요.
“잃어버린 강아지”보다 원제인 “ How Smudge Came”가 더 이 책의 내용을 잘 나타내고 있는 거 같아요. 잃어버린 강아지..그러면 꼭 강아지와 아이의 우정 내지는 해프닝을 담은 그런 책으로 생각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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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4-05-1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정리 쭈욱 해서 올린 리뷰 보면 음메~기 죽어~~~~~!

밀키웨이 2004-05-15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기죽지 마세요.
딥따리 길기만 하지.. 별 영양가도 없고 알라딘에 워낙 출중하신 분들이 많으신지라 많이 배우고 있는 중이랍니다.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좀 터득했으면 좋겠어요 ^^
진짜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