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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지 않는 소녀 트루디 ㅣ 삶과 사람이 아름다운 이야기 3
지젤 포터 그림, 어슐러 헤기 글, 김경연 옮김 / 베틀북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장애인이 주인공인 책은 대충 그 내용의 줄기가 다음의 두가지 정도인 거 같아요.
★ 여기 한 장애인이 있다 → 장애를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고 속상해한다 → 어느날 누군가를 만난다 → 그(그가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든 아니면 정상인이든..)와의 일로 인해 자신의 장애를 극복한다.
★ 여기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이 있다 → 자신의 환경에 대해 그리 만족하지 않는다, 장애인을 무시하고 거부한다 → 어느날 한 장애인과 가까와진다 → 그 장애인의 밝고 긍정적이며 무지하게 노력하는 삶의 자세를 보고 느낀 바 크다 → 새로운 삶의 모습을 갖는다
예, 이게 실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일상의 모습이겠지요.
외국의 다른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장애인에 대한 시각이 조금 더 인간적이고 발전지향적이라고 들었어요. 하지만 사회전반의 인프라에 상관없이 장애를 가진 이들이 느끼는 생각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모두 다 한결같이 자신도 정상이길 바라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겠지요 (물론 정상인 사람도 자신의 존엄성 인정에는 목을 메겠지만...)
트루디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밤에 잠이 들 때면 내일 아침에는 키가 커져 있기를 바라고 문틀에 매달리는 행위를 통해서 팔다리가 길어지기를 바라고 (실제로 키가 작은 아이를 두신 분들 중에 이렇게 매달리기를 시키시는 분도 있다고 하더군요. 팔다리의 생장점을 자극해서 키가 커지게 하시려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말여요) 머리가 더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엄마의 스카프를 머리에 동여매기도 하는 그런 난쟁이 소녀입니다.
트루디는 자기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또 있는지 그게 궁금하고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지요.
서커스 구경을 갔다가 만난 난쟁이 조련사 피아는 그런 트루디에게 먼저 자기 자신의 생각이 진정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세상 어디를 가든 외롭다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음을 일깨워 줍니다.
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란 서로간의 생각의 차이, 즉 아름다움을 규명하는 잣대의 기준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트루디가 처음 만난 난쟁이가 서커스단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이어야 할까입니다.
난쟁이라는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은 보통 그런 것이었다는 어떤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듯 해서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피아가 서커스단원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요?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정을 꾸미면서 비장애인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하고 있는 그런 사람...
트루디 마음 속의 “저도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갖게 될까요? 아이들도 저처럼 키가 작을까요?”와 같은 고민들의 해답이 조금이나마 보여질 수 있는 그런 거 말입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한명도 없는 그런 마을에서 느끼는 트루디의 이질감으로 인한 탈출욕구에 맞추기 위해서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사람, 또 트루디와의 만남이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한순간일 뿐이고 곧 그 곁을 떠나야 하지만 “너는 외롭지 않다“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서커스단이라는 설정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역설적으로 피아의 직업을 놓고 마음에 걸려하는 것이 오히려 그 직업을 하찮게 여기는 저 자신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요.
“네가 나랑 같이 간다고 해도 혼자라는 느낌은 바뀌지 않을 거야.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너 자신밖에 없단다. 이렇게 말이야”
피아는 짧은 팔로 자기 몸을 감싸안았어요. 그리고 천천히 팔을 풀면서 빙그레 웃었어요.
“어느 날, 넌 이걸 꼭 기억하게 될 거야”
마지막 맺음이 아직 심각하게 자기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한 어린 아이들에게는 다소 어렵거나 재미없을지도 모릅니다. 어른의 시각에서 보아서 좋은 그림책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주제를 담고 있는데다가 지젤 포터의 화사하고 섬세한 일러스트가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거기에 믿을만한 역자 김경연이 번역을 했기에 점수를 더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