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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나무 ㅣ 풀빛 그림 아이 15
숀 탠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에서부터 우울하고 창백한 낯빛의 소녀가 종이배를 타고 있는 그 아슬아슬함이라니... 어쩔 수 없이 끌리는 듯한 기분으로 책장을 열었습니다.표지를 열자마자 콘크리트벽이 앞을 턱 가로막는 숨막힘...그 숨막힘은 곧 어디선가...저 위에서 떨어져내리는...너무 가벼워서 중간에 몇번이나 휘돌아내리는 작은 잎사귀 하나에 시선을 던지게 합니다. 한장을 더 넘깁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일까요? 빛이 사라져가는 곳에 한 소녀가 자신만의 언어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 음울함이 무어란 말인가 의문을 가지려는 찰라..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림책의 첫문장이라니... 파격적이고 놀라운 말로 그림책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 그런 날이 있지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눈을 떴다는 그 사실조차도 너무나 버겁게 느껴지고 그대로 다시 잠들고 싶어지리만큼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때가요. 그러나 그런 기분은 어른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이들도 이런 기분을 느끼며 살고 있었던 건가요...
점점 더 나빠져서 결국엔 모든 일은 터져버리고 자기자신에 대한 정체성마저 의심이 가게 되는 그런 암울함...그 하루가 다 끝나가도록 아무런 희망이 없는 거 같았지만 ..그러나 내가 찾아낸 것은...내 자신 속에 피어나고 있는 빨간 나무...라는 내용인데 아마도 아이들은 이 책을 이해하기가 난해할지도 모릅니다. 왜 이런 그림이 그려졌는지 왜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하지만 어느날엔가...굉장히 우울하고 힘든 날... 그때 그래도 내게는 빨간 나무가 있다는 그런 위로를 줄 수 있을까요? 그 눈부심 앞에서 비로소 빙그레 웃음 짓는 소녀와도 같이 말이죠. 하지만 분명 재미없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건 이렇게 절망적인 기분이며 이런 날이 누구나에게 있는 그런 공감을 불러일으킬테니까요.
지독한 하루을 돌고 돌아 결국에 빨간 나무를 찾은 것은 자신의 방안이라는 다소 뻔히 보이는 결말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휴우~ 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책에 남발(?)하는 우연적인 만남 내지는 어떤 절대자의 도움 혹은 불밝히고 음식을 데워놓고 기다리는 부모님의 사랑...이런 것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나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여서 말입니다.
이 그림책의 작가, 숀 탠. 1974년생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나이로 31살이로군요. 이렇게 젊은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어린아이라고 해서 늘 행복하기만 하고 늘 단순하기만 하고 늘 희망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 그것 아니었을까요? 어린 아이들에게도 깜깜해보이기만 하는 그런 날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숀탠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먼저 소개된 것은 북하우스의 공포 이야기 애프터 다크 시리즈(After Dark Series)인데 공포소설이라니...오싹해지더군요. 으흐흐흐~~역쉬..그런 생각도 들었구요.
이 책의 그림 또한 음울하고 초현실적이면서도 상징적인 표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신문꼴라쥬, 액자기법에다가 줌 아웃(Zoom out)기법까지 마치 이야기 속의 소녀, 그 내면 깊숙히 들어기는 것을 원치 않는 듯하네요. 불 켜진 무대 위에 덩그러니 구경꾼처럼 놓여있는 것은 나야, 결코 네가 아니야! 라고 외치는 듯.
이 책은 아마도 제 책꽂이에 오래도록 꽂혀있게 될 거 같습니다. 7살 호야에게 읽어주었을 때 재미있다는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그 녀석이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더 많이 슬퍼지고 더 많이 힘들어지고 더 많이 절망하게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이 책을 아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