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오리 구지구지
천즈위엔 글 그림, 박지민 옮김 / 예림당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악어오리  구지구지를 읽고서 첨에 딱 떠오른 생각은 나름대로 시대가 정체성도 확립하는구나 였습니다.

좀 어렵게 생각을 하게 된 걸까요?
미운오리새끼이야기가 오버랩되면서 그동안 갖고 있던 생각이 새삼 정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안데르센의 오리이야기와 천즈위엔의  이 악어오리 이야기는 그 주제며 강조점이 분명 다릅니다.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남들에게 보잘것없다고 멸시받고 스스로 비참하게 여겨지던 존재가 사실은 알고 보니 굉장히 고귀한 존재이더라 하는 것으로 안데르센 본인의 이야기를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만
어린 시절 미운오리이야기를 참 좋아했지요.
저 자신이 미운 오리로 여겨지면서 나도 언젠가는 백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상상의 나래를 폈더랬지요.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니 글쎄요..생각이 삐딱해지기 시작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미운오리새끼가 겨울이 지나서 아름다운 백조가 되기까지 본인이 한 노력은 사실 이야기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헤엄을 치기는 했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굉장히 못생기고 무시당하는 존재이지만 그걸 비참해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어떤 자긍심을 갖는다거나 자신의 존재의 고귀함을 느끼려는 그 어떤 노력이나 생각의 개진이 전혀 보이지 않다가 백조로 변하는 외모의 변화를 통해서야 존재감을 갖는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그런 의문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안데르센이 살던 그 시대, 어찌보면 사회계급에 의해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던 그 시대에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자체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이 진짜로 어려운 일이었겠지..
또 안데르센이 원래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안데르센 자신이 결혼도 못하고 못생기고 가난한 글쟁이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겠지...라고 이해한다 치더라도 마음속에 들기 시작하는 삐딱함은 지워지지 않더군요.

아...여기서 잠깐.
위에 쓴 것은 제가 아직 안데르센 원전을 읽지 못해 제가 알지 못하는 빠진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워낙에 우리나라에서 읽혀진 고전동화들(그림이야기, 안데르센 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 걸리버여행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등의 서양이야기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전래이야기까지 )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 의해 각색되고 윤색된 것이 하도 많아 그 원래의 이야기와 전혀 다르게 전해져 왔던 것에 비추어 보아 원전에는 제 생각을 깨는 그 무엇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여간 위에 뭔소리인지도 모르는 횡설수설 제 생각은 그냥 대중적으로 알고 있는 미운오리새끼에 대해서라고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렵니다.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든다고나 할까요? 좀 유식하게 배수의 진을 친다고도 합지요 흐흐흐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오늘날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이 시점에서 이 이야기가 어쩌면 정말로 못생기면 누구나에게 무시당하고 심지어 엄마에게 쫓겨나기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될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비약적이고 오버하는 걸까요?

또 좀더 오버해서 이야기한다면 장애아로 태어난 동생을 바라보는 큰아이의 시각이 미운오리새끼의 형제오리들과 같을 수도 있을 것을 감안한다면 과연 이 동화는 어떻게 읽어주어야 하는 걸까요?
다 읽어주고 나서 "아, 미운오리새끼가 사실은 백조였구나"라는 한마디로 과연 만회할 수 있을까요?
지나치게 오버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세상사에 뭐든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저하고는 달리 순수하고 또 이야기를 이야기 자체로 즐길 뿐이지 결코 이러니 저러니 과장되게 해석하고 오버하지 않으니까요.
또 그림책을 이렇게 억지로 꿰어맞추고 구구절절 해석해서 보기 시작하면 참으로 피곤하고 괴로운 일이 되겠지요.

어쨌든 미운오리새끼에 대한 생각을 아직 채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난 악어오리 구지구지는 참으로 신선한 그림책이었습니다.


구지구지에서는 엄마오리는 물론이고 형제 아기오리들을 비롯한 다른 모든 오리들에게서 구지구지에 대한 적대감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똑같이 사랑했다고 말하지요.
또 구지구지의 재치로 악어들을 물리치자 구지구지를 영웅으로 떠받들기도 합니다.
외모의 차이를 전혀 인식하지 않는 폭넓은 사고를 보여줍니다.
거기에는 구지구지가 왜 다른 오리들과 다르게 태어났지? 라는 의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책을 보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악어가 오리랑 같이 살수 있어? 에이~ 말도 안돼 라는 의문을 던지기보다는 아~ 그래서 구지구지는 악어오리가 되는 거로구나 납득하게 만드는 것이죠.

구지구지의 갈등은 짧지만 함축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난 오리가 아니었어. 악어인가 봐"
"이것봐! 난 오리도 아니지만, 무서운 악어는 진짜 아니야. 난 악어오리야"

그렇게 갈등을 끝낸 구지구지에게 악어는 그냥 자신의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지요.

거기에는 저자인 천즈위엔의 미국계 한국혼혈아 친구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에 대한 위로와 공감이 담겨있기 때문이겠지요.
천즈위엔은 우리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너그러이 감싸주며 보다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를 희망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그 자체만으로 기적이므로 우리 모두에게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답니다.

천즈위엔이 안데르센의 동화를 의식하여 일부러 오리를 주인공으로 했을런지도 모릅니다.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겠지요.
그런 점에서 상당히 제 마음에 들었던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그림 또한 유머러스하면서도 먹물로 그린 중간톤의 담채(? 히히히 미술에는 문외한입니다)적인 그림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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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맘 2004-04-05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읽고 서점에서 아이랑 보았는데, 둘다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코멘트 쓰고 할인쿠폰 받으면 사야징~ ㅎㅎㅎㅎ

반딧불,, 2004-04-12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원영맘님도 똑같은 생각을??
밀키님 서평 보면 마구마구 사고싶어져요...어쩌죠??
저 좀 말려주세요~~~(속닥속닥..솔님도 그렇고..참..대단...)

밀키웨이 2004-04-1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 참... 이 아짐들이 ^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