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까지 안되어보였는데, 횡성군 둔내면까지 190km가 나왔다. 강원도 가는 길엔 대관령이 아니라도 고개들이 있었다. 황고개, 양두구미재 같은 이름들을 봤던 거 같다. 황고개 넘으면서 '황됐다고 황고개냐'는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 시시껄렁함에 쪽팔렸다. 삼남대로는 따지자면 군 경계마다인 것에 비해 강원도 가는 길엔 면 경계마다 업힐구간이 있다고 보면 되겠다.

차창을 내리고 "아저씨, 파이팅!"해 주는 꼬마들에게 "그래~ 재밌게 놀아라"고 못해줘서 미안했다. 속도가 시속 2km쯤 더 나온 걸로 봐선 기운을 얻었던 건 맞지만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승용차, 아이 둘, 엄마, 젊은 아빠. 슬퍼보인다. 나? 나도 슬프다. 돗자리 필 기회가 있으면 상추쌈을 되도록이면 크게 만들어 먹었다. 이러면 좀 덜 슬프다. 코 찔찔이/짱구/먹통/짜증쟁이/떼쟁이 두 놈 때문에 내가 산다고 선언을 해버리고 나면 기쁘기도 하다. 내 새낄 두고서도 심사가 이렇게 배배 꼬였는데. 세상살이. 기뻐 날뛰지 않으면 볼 품 없으리로다.

마지막 20km 페달질은 그야말로 허위적허위적. "태기산장"이라고 기껏 멋내놓고도 혹여나 손님들의 오해가 있을까 싶었던 듯, 옆에다 "MOTEL" 큼지막하게 박아놓은 여관에 5,000원을 흥정해서 25,000원에 들었다. 혼자라서 식사배달 안 해 줄거라는 여관주인 말에 슬리퍼를 끌어 면소재지로 나섰다. 매콤한 맛이 있는 일품 청국장을 배불리 먹고나서도 과자, 아이스크림, 우유에 거봉까지 사들여 다 먹어치웠다. 오랜만에 보는 TV를 도저히 껄 수가 없다. 12시까지 이세돌, 이창호를 봤다.

다음날. 대관령은 사진빨이 좋다. 실제로 보니 시시했다. 광화문 네거리보다 더 막혀버린 자동차 행렬의 짜증 때문이었던지, 흐린 날씨 탓에 시야가 짧았던 탓이려니 한다. 풍차 몸통에다 지금은 생각이 안나는 무슨 안내문구를 새겨둔 건 실용 쯤 되겠다. 강릉까지 20km 정도는 10m이상되는 오르막이 없는 완벽한 다운힐 구간이다. 최고속도 62km 찍었다. 잦은 브레이크질이 부담되긴 했지만 통쾌한 기분을 가실만한 정도는 못되었다. 그야말로 신났다. 그 다운힐을 넣어서도 90km 페달질의 평속이 18km/h 밖에 안나올 정도로 다리가 지쳤다.

상경길에 사 본 "완득이".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다 읽어치울 수 있을 정도로 잘 읽혔다. 뒷힘은 떨어지겠구나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소설 한권 칭얼대지 않고 다 읽어냈으니, 작가에게 감사할 따름. 낮은 곳만으로는 힘들지 않겠나 싶었다. 낮은 것 뿐 아니라 잘 안보던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잘 안보던 것이어야 하리라. 높은 곳이던 낮은 곳이던. 김애란일지 오쿠다히데오일지 모르겠으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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