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아닌 곳은 드물었지만, 꽉꽉 들어찼다고 하기엔 20cm가 부족했다. 적설량은 상대적으로 적은데 등산인구는 늘었으니 다지고 다져져 맨얼음 저리가라 할 구간이 적지 않았다. 인적 드물어 푹푹 빠지는 서북능선은 반갑쟎지만, 적설량 많은 주능선이 발에 선사하는 느낌은 오묘한 데가 있었다. 보드라운 흙길보다 푹신하다. 아이젠이 단단한 표면을 뚫고 들어가 박히는 맛이 발자욱마다에 쾌감을 불어넣는다. 먹는 얘기해서 뭣하지만 아이스크림 튀김 쯤 되겠다.

눈은, 깊어서 군데군데 길을 바꿔놓는다. 여름에 산에 올라보면 뚜렷한 행로 옆쪽으로 갓길이 열려있는데, 겨울길이라고 미뤄 짐작하는 편이다. 주로에 눈이 깊으니 그나마 덜 빠지는 옆으로 다닌 탓에 새 길이 열린 것이라는 게 내 나름 개똥주장이다. 그 중에 인상깊은 곳이 토끼봉 정상에 있는 쉼바위 옆길이다. 주등산로는 이 쉼바위 왼쪽(토끼봉에서 연하천 방향으로 봤을때)으로 열려있는데 눈이 깊으면 이 길은 사라진다. 바로옆 능선들의 눈들이 쌓일 새도 없이 바람을 맞아 바람잦은 바위옆길에 굴러떨어져 키만큼 쌓인다. 여름엔 기어올라 땀 식히던 쉼바위 위로 자연스레 새 등산길이 열리는 것이다.

같이 간 사람들에게 이걸 설명해주고 좀 뻐겨보려고 했는데 눈이 적었던 탓에 틀려먹었다.

작년 서북능선 실패탓인지, 올해는 사람들이 '덜 먹고 가볍게' 가보잰다. 압력밥솥에 생닭 지고 가 삼계탕 해먹는 맛은, 뭐랄까, 중학교때의 나이키 운동화 쯤 될 것 같다. 닭고기 앂어 삼키는 맛이 뭐 특별할 게 있겠는가. 냄새 풍기면서 부러운 눈길 받는 맛이 진짜 맛이었던 거다. 올해엔 이거 생략하고 삼겹살 구워먹고, 김치찌개 해먹었다. 김치찌개 기막히다는 인사치레가 식사당번 답례인 줄 알지만, 감사하게 들었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고. 뭐니뭐니해도 최고히트메뉴는 버터구이 꼬마호떡. 레시피는 메뉴이름 그대로. 박팀장은 작년에 서북능선에서 해먹고 너무너무 간절해서 집에서 해먹어봤더니 이 맛이 안나더란다. 할머니들이나 하는 이 얘기는 모두로부터 핀잔세례를 받았지만 집에 가서 해먹어 볼 생각 안 한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싶다.

이번에도 천왕봉 못갔다. 양팀장, 신*철 두사람이 무릎이 안좋았다. 억지로는 끌고가지 않는다고 나름대로 세운 원칙에 충실했지만 이번에는 좀 후회도 된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힘들게 구례까지 밤차타고 왔는데 끝까지 못해내는 경험을 자꾸하게 되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인상구겨서라도 끝까지 데려가서 정상에 세우고 사진 한방 박고나서 축하한다고 한마디 해주는 게 더 낫지 않았나도 싶다.

우겨서 아둥바둥, 가까스로 해내는게 좀 촌스럽긴 해도 재미를 얻는데는 유력한 방법이다.



삼도봉에서




겨울운무는 따뜻한 기후 예보관이라 다들 반가와하고 있다.



연하천대피소-라면7개, 햇반4개 끝낸 후. 표정들이 이렇게 밝을 수가...




명선봉 넘어면서 벌써 무릎이 고장나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았다면(사진솜씨가 좋았던지) 꽤 멋진 사진이 나올뻔했다.



선비샘 가는 길



벽소령대피소



칠선봉 직전 전망대. 이맘때 쯤엔 엄홍길이와도 이정도는 초췌해진다.



영신봉 철계단위에서 전망 감상중인 사람들에게 묻지도 않은 설명을 하는 양팀장



한신계곡 하산길. 그제서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최고인기메뉴-버터구이꼬마호떡



한신계곡엔 건너는 다리들이 많아 설악산 천불동계곡과 주행느낌이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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