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오연호기자의 노통인터뷰 읽고나니 패배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절로 젖는다.

노무현대통령을 뽑던 2002년 선거일에 근무를 했었다. 물류센터 이전과 이전 까짓것이야 산들바람에도 못미칠 물류개편작업이 결국은 실패폭풍속으로 치닫고 있던 터라 아쉬운 마음 깃들 구석도 없었다. 일은 해야겠기에 목구멍으로 밀어넣던 밥 한숟가락에 얹힌 밥알들의 생김새와 촉감을 잡아내던 식도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할 수 있던 때였으니까.

투표는 못했지만 열렬하게 지지하고 응원했던 노무현의 집권 5년 술회를 들으며 드는 생각은 복잡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계시는 양반이지만 언감생심 은근한 동질감, 동류감을 가져왔다. 실패라고 본인이 자평해버린 정치전술들에 나는 열광했었다. 참신했고, 창의적이었다. 절묘했고, 통렬했다. 정치던 유통이던 일은 이렇게 하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는 정치적소수파였고, 나는 업계4위 회사의 직원이었으니까.

인터뷰는 솔직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해 보였고, 터져나오고 게워내어지는 듯 했다. 패배자의 그것이 확실해서 처연한 느낌이다. 패.배.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니 노무현은 패배자의 자격을 두루 제대로 갖추었다.
1) 소수파이고
2) 명분이 뚜렷하고 취지가 훌륭했으며
3) 전술과 시도는 진심어리고 창의적이었나
4) 적은 강대하고
5) 여건은 미성숙해서
6) 패.배.했.다.

이런 걸 두고 아름다운 패배라고 한다던가. 승자와 관객들이 승리감과 즐거움을 만끽한 끝에 이 등신!이라는 말 대신 패자에게 들려준다던 "아름답다"는 그 말. 흥! 이 정도도 안했다면 그냥 패배가 아니라 승패를 떠난 관객인게지. 게이머가 아니었다면 패배할 수조차 없으니 대단한 거라고 하면 동의해 줄 수 있겠다. 세상의 패배자들은 모두들 이정도는 다하고 패배한단 말이다.  

사람들은, 나는 너무나 "아슬아슬하게, 안타깝게 실패하는 법"에 익숙해 있다. 실패는 다 아슬아슬, 안타깝다. 그렇지 않은 실패를 본 적이 없다. (검정눈이 없건만)흰눈처럼 형용사 남용이지 않은가. 어떤 때는 혹은 어떤 액션을 보면, 내가 승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인지, "최선을 다했으나 안타깝게도 패배한 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의도 자체가 헷갈릴 때도 있다. 노무현은 전자였던가? 후자였던가? 나는? 우리는?

노무현이 패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사에 빛나게 자리할 것은, 알라딘이 1등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없이 사라져갈 것처럼 명백하다.(역사가 어쩌구해서 승리라는 평가에 동의하기 힘들다. 모든 상품들이 시장에서 성공/실패를 겨루는데, 어째서 유독 정치상품만이 역사라는 곳에서 평가받는단 말인가?)사람들아! 우리가 하고 있는 것, 아름답고 안타까운 패배를 향하고 있는지, 승리를 향하고 있는지 되짚어보자. 찬물 한바가지 뒤짚어쓰자.  

패배를 두고 "아름답다"고 하는 건 승자와 관객들이지 패자가 아니다. 그건 머저리를 본 적이 없다. 장렬하건, 안타깝건, 최선을 다했건, 취지가 빛나건, 느닷없는 악조건탓이건, 어쨌거나 패배는 꼴불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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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07-10-1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승자라고 자부하는 한나라당은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