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입사한 김**가 9월15일자로 사직. 사장님과 상의해서 공로패를 전하기로 함.

문구가 대략 이랬다.
"알라딘은 1997년 7월 물류서비스를 개시하였다.
2006년 9월 성수기까지 7년동안 21전 21패하였고
2006년 12월부터 2007년 9월까지 1년동안 3전3승하였다.
2006년 12월부터 2007년 9월까지 출하관리담당은 김**였다."

사직 술 한잔 하면서 알라딘 이후의 빛나는 김**의 인생비전을 들으면서 사실은 알라딘이 이제 지겨워졌구나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출하관리담당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뜨겁고 치열한 보직이어서 성수기의 참맛은 뭐니뭐니해도 출하관리담당이 만끽한다. 그런데도 지겹다고? 총알이 난무하는 참호속에서도 병사들은 지겨움을 느끼겠구나 싶었다.   

실패했다는 7년동안 팀장 하나와 팀원 십수명이 떠났고, 회사까지 힘들게 만들어 옆 본부의 유망한 젊은 팀장들을 여럿 떠나게 만들었다. 2주일 동안 사이트를 닫고 장사를 중단하였고, 고객불만은 폭증하 여 전화응답율이 65%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다. 독기는 넘쳤지만 작은 것 하나도 힘에 부쳤다.
최근 2년은 절치부심의 결과까지는 아니지만 어찌어찌 기사회생했다. 속도에 열광하는 고객도 여럿 계시고, 깔끔한 AS 뒷처리를 칭찬하는 글도 심심찮다. 경쟁사들의 물류센터 견학방문도 부쩍 늘었다.

지난주 출고약속준수율 99.79%. 이걸로는 성과평가 C가 안된다. 100%에 모자라는 0.21%를 마저 채우고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할까? 어쩐지 신명이 나질 않는다. 

지난 1년 6개월은 기록경기 같았다. 프로덕트페이지의 예상수령일안내부터 최고수준의 당일출고율, 최초의 당일배송... 따르는 경쟁자가 없으니 우리끼리 99.95%의 목표를 정해놓고 기록게임하듯이 지내왔는데. 9월3일부터 Y경쟁사는 프로덕트페이지를 토시하나 틀리지 않게 베껴갔다. 힐난하는 마음은 사실 눈꼽만큼도 없었고, 워~ 이제 링에 올라오는거야? 라는 심정이어서 손가락 꺽어서 우두둑 뼛소리도 내보았다.

9월 성수기를 지내고보니 이 게임 도통 재미가 없다. 당일출고율 몇 % 앞서고, 당일배송율 뒷단이 시스템적으로 잘 꾸려져있다는 거. 아무 감동도 없고, 재미가 없다. 이 상태에서 0.21%를 채우겠다면 '마른수건 쥐어짜기'에 머무를 것 같다. 유효한 전략이지만 재미는 없잖아? 이 링을 떠나야한다. 경쟁사Y는 아무도 없는 미들급링에서 헛손질하도록 내버려 두고 알라딘은 헤비급링으로 무대를 옮겨야만 한다. 별 차별성없이 미들급 링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거 관중들도 재미없을 것이다. 우리가 링을 옮기면 관중들도 따라 올게 틀림없지. 같은 돈 주고 누가 2군경기 보고 앉았겠냐구. 

지난 1년6개월동안 경쟁자없이 기록경기 한 것, 편하고도 편한 날들이었구나. 내 서비스道伴들과 헤비급무대에 올릴만한 걸 찾아봐야겠다. 9년을 쓴맛보고 겨우 단맛본 1년. 아깝다 생각않고 미들급 링을 떠난다. 대가리쳐박고 눈알 부라리며 찾아야 보인다. 

뭐 하나 나오면 잘 빚어서 3개월만 이걸로 재미 좀 보자구. 링 위에 또 올라오면 씨발 니 무라~하고 또 떠나는거지 뭐. 정답고 지겹고 고단하고 숨 헐떡이며 두눈퀭한, 그래도 용맹정진하는 내 道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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