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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 ㅣ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평점 :
김진숙 지도위원과의 인연은 5년 전교조 안산지회에서 그의 강의를 요청하면서 부터이다.
지도위원이 부산에서 오셔야 했기 때문에 기차역에서 안산의 강의하는 장소까지 개인차로 이동을 해야 했다.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내가 그 일을 맞게 되면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당신 난 지도위원이 전교조를 탐탁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의 강의를 들으며 그 해답을 찾았던 기억이난다. 그에게는 노동 해방이라는 단어가 그의 삶을 대변하는 것처럼 해고는 살인이고 그 살인을 1년에 한번씩 당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것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함께 살자라는 말을 던지시며 전교조도 이 문제를 깊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학교는 그 특성상 아주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꼐 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특별한 이름을 붙여 기간제교사라는 말을 한다. 2004년 어느해인가 학교에 함께 발령 받은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다 그가 내게 한 말이 있다.
"너는 기간제교사의 설움을 몰라! 넌 졸업하고 바로 임용되었잖아." 그의 말에 내가 다른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왜 이런 대화를 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내가 어느 선생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이야기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때 들었던 가장 기억 남은 말은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이 커진다."라는 그 친구의 말이 내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다. 그 친구의 말 한마디가 없었다면 난 어쩌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교직생활을 했을거라 생각이든다.
지난 금요일 인사발령이 나와서 우리학교에 계셨던 선생님들 한분한분께 연락드렸다. 그분들께 한시라도 빨리 결과를 알려 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하지 못하는 말을 전해 드려야 하는 그 천근보다 무거운 단어를 전해야 했다. 너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계속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십년을 넘게 경험하는 상황이지만 이때 마다 어딘가에 숨고 싶다. 같은 교육 노동자로서 어제까지 함께 이야기 하면서 지냈는데 오늘은 그렇게 되지 못하는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은 그래서 중요하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해고는 살인이다. 총으로 사람을 쏴서 죽이는 것 누군가에게 상처를 줘서 물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살인인것 처럼 자본주의 국가에서 해고는 그 사람을 서서히 말려 죽이는 독국물과 같은 살인이다. 더이상 그 살인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땅의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곳이 었으면 좋겠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해 많은 곳에서 연대를 하고 함께 걷기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책을 꺼내들고 읽으며 그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라 믿는다.
김진숙 동지의 복직 투쟁에 힘을 보탭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주는 방식이 같은나라.". 2003년 10월 22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탄압 규탄 전국대회에서
"학교 내 비정규직, 나아가 보육 교사나 학습지 교사를 바라보는 눈길이 아이들이 바라보는 눈길만큼 따사로웠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육아 휴직 중이던 선생님의 자리에서 아이들 곁에 머물렀던 기간제 선생님이 그 자리를 떠날 때 어떤 마음일까 헤아리는 일.". 214p
"내 걸 나눌 수 있을 때 진정한 연대는 가능하고 그래서 연대는 용기이다. 밥을 벌지 않고 빌어머는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상처받지는 말 일이다. 그러나 인사도 못 한 채 아이들 곁을 떠나야 하는 기간제 선생님의 소리 없는 눈물에는 상처 받아야 한다. 변절을 합리화하기 위한 참새보다 얇은 혓바닥에 노하기보다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거나 겨우 미칠 급식 노동자들의 형편에 분노할 일이다. 전교조엔 그 화룡점정의 과제가 남아 있다.". 215p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 깊은 곳에 묻어 주오.
그떄만이 우리는 비로소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권미경의 왼쪽 팔뚝에 쓰인 유서
내가 거기서 살아 나온 게 견딜 수 없는 자책이었던 적이 있었다. 1년뒤, 박종철 학생이 거기서 그렇게 죽어 나왔을 때, 이철규, 이내창 그들이 내가 그랬음직한 모습으로 저수지에서 떠올랐을 때......... 그리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시신조차 건사하지 못한 수많은 죽음이 있는데, 그 새빨간 눈빛들이 이 세상에서 없어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 P31
그러나 삐삐 차고 핸드폰 들고 아반떼를 살까 레간자를 살까 고민하면서 당구장을 들라거리고 호텔에서 수련회를 하면서 박찬호나 차범근을 떠들어대며 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간부들에게 전태일은 11월쯤이면 한 번씩 회자되는 옛날 위인쯤인 게 여전히 안타깝다. - P50
420만원 때문에 사람이 죽었답니다. 살아 보려고, 어떻게든 마누라 품고 자식들 품고 살아 보겠다고, 길바닥에서 밥 먹고 길바닥에서 자며, 길바닥에서 울고 웃었던 마흔여덟의 노동자 하나가 420만원이 없어 죽었답니다. 그가 압류당한건 420만원이 아니라 목숨이었을 겁니다. - P144
민들레에게 올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낮추는 게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집니다.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만으로는 봄을 알 수 없습니다. 민들레가 피어야 봄이 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에 처음 민들레를 기다리는 봄. 이 설렘을 동지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P163
동지 여러분. 세상은, 역사는 늘 싸우는 사람이 움직여 왔습니다. 처음 같은 마음으로, 늘 처음 같은 결의와 신념으로 끝까지 투쟁해서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 주인으로 사는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꼭, 꼭 물려줍시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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