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미학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이가림 옮김 / 문예출판사 / 197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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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통 바슐라르는 철학자이며 과학자이다. 

어떤 이는 과학자이며 철학자라고 말을 하는데 그의 글을 읽어 보면 철학이 먼저인것 같다. 

그의 글에는 자연과학의 무미건조함 보다는 그 사이사이에 문장으로 아니 그의 생각을 가득 들어 차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가지고 있는 차이는 설명의 빈 공간을 생각으로 체워 넣는냐 아니면 현상으로 체워 넣는 것인지에 대한 차이라고 조심히 말해본다. 인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많은 책들은 어떤 것을 설명할 때 사실 기반이라기 보다는 생각과 논리를 기반으로 글을 쓰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이 모든 것을 허무 맹랑하게 쓴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부분에서 사물과 사물 사이 또는 사람과 사물 사이를 설명할 때 인문학은 그 설명의 빈 공간을 생각으로 가득 채운다. 그런데 자연과학에서는 그 사이를 설명할 때 실험과 현상으로 설명을 한다. 


물론 우리도 현상을 관찰하고 실험을 하면서 그 결과를 해석하기 위해 설명을 한다. 하지만 그 설명의 기반은 자연에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본것을 안보았다고 하지 않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자연과학은 모르면 모른다고 말을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이 어디까지 인지 그 한계가 무엇인지를 말을 한다. 


이런 면을 고려해 보면 바슐라르의 책은 현상을 관찰 하되 그 설명과 설명의 사이를 다양한 생각으로 가득 체워 넣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렁이는 촛불 아래 우리의 생각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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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리라이팅 클래식 7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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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장회익교수님이 쓴 [물질, 생명, 인간]이라는 책을 읽으며 그동안 말로만 들어 왔던 칸트를 접했다. 

물론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말인지 잘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 끝까지 들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는 내내 철학은 내가 근접하기 너무 어려운 학문인가?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칸트에 한걸음 더 들어가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라는 책을 읽었다. 

칸트 철학에 한걸음 더 들어간 책이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아주 조금 쉽게 읽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은 보기 좋게 착각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정말이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그 순간 앞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왜이렇게 철학책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칸트의 철학이 너무 거대해서 인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조심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다. 그 용어나 논리전개 등 익숙하지 않은 것에 따른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위로 해본다. 


아직은 그 내용을 정리하기에 철학적 사유가 부족하기에 이를 몇마디 문장으로 요약하지 못할것 같다.

다만 어느 인터넷 강의에서 칸트의 철학을 요약한 강의를 첨부하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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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저자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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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 쉬울 수 있지만 그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절대로 알 수 없다. 


저자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보호자 사이에서 태어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를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라 한다. 책은 코다로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 내용으로 시작한다. 


"학부모 모임이 열리면 나는 또 불려 갔다. 어색하게 앉아 수어를 음성언어로, 음성언어를 수어로 옮겼다." p. 18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불쌍한 보호자를 둔 가련한 학생" 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과 동정어린 말들 그런데 정작 저자는 그런 말을 들으면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은것 같다. 코다의 삶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사회적 약자 또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 청인 중심의 사회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들 사이에서 우리 부모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보라네 부모님'이었다. 친구들은 와플과 풀빵을 파는 엄마와 아빠에게 인사하며 수어를 배웠다. (중략) 내가 속한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모님의 얼굴을 사라졌다. 눈썹과 얼굴 근육을 움직여 말하는 '보라네 부모님'이 아니라 가정 설문지 내의 '고졸''자영업''특이사항 :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p. 19


사실 듣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 그 언어를 "수어"라 한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언어는 우리가 쓰는 언어와 다를 뿐이지 의사 소통을 하는 언어이다. 코다의 삶을 이야기 하다 보면 이민자 2세대 아이들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그들의 보호자도 그 나라 말을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자녀들은 그 나라 말을 알고 있고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중간에서 보호자가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대화가 필요할 때 통역을 하게 된다. 코다도 마찬가지 이다. 농인 보호자를 위해 청인 중심사회에서 통역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다져 나간 것으로 보이다. 이런 내용과 함께 제1부는 저자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세상과 만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더 커지면서 그것들과 조우한다. 처음에는 나의 고통, 내가 만나는 세상에 대한 분노, 왜 나만? 이라는 생각에서 눈길을 돌려 더 넓은 곳을 바라보고 알게된다. 그 첫번째가 농인사회를 이해 하는 것처럼 이와 비슷한 재일 조선인 동포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 나는 아무럿도 몰랐어. 부락 밖의 사람들이 오히려 부락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 이렇듯 차별과 혐오는 바깥으로부터 온다." p. 125


재일조선인은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즐겁고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조선인사회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차별하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그 외부에 있었다. 그들의 시선들!!! 재일조선인의 생각이 아닌 외부 사람들의 생각들이 그들을 불쌍하게 또는 차별해야 하는 대상들 등으로 정의 한다. 저자는 여기서 자신의 생각이 넓어진다. 코다의 삶이 단지 농인 보호자의 자녀의 삶이 아니라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이민자 2세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된다. 


몇해전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점에 저자는 한 일간지에 "#나는 낙태했다" 글을 썼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가부장적인 사회임을 고발하는 것이며 여성이 한명의 사람으로 대우 받지 못하는 사회임을 고발하는 글이다. 우리 사회는 많이 발전했다고 말을 하지만 여전히 멈춰 있는 사회이다. 여전히 고인물이 남아 있고 더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의 시선이며 조직적이고 강한 카르텔을 가지고 있는 성차별의 문제이다. 


" 임신 중지를 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어 시를 썼다. (중략) 수업이 끝나자 멘토가 저녁을 먹자고 권했다. 그는 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밥을 먹었다." p. 130-131


우리 사회에 차이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 차이를 "차이"로 바라봐야지 "차별"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또한 차이를 "다름"으로 해석해야지 "틀림"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경험하는 지금 이 사회는 아직도 차별과 틀림이 공존하는 곳이다. 작년 학교에서 인권동아리를 만들고 수업을 하며 "썩은 동아줄"이라는 단편 영화를 학생들과 함께 봤다. 우리가 흔히 보는 지하철 역사에 있는 장애인 리프트와 관련된 내용이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계단 옆에 있는 하나의 풍경일 뿐이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마치 쇼윈도우 안에 들어 있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고 또한 순간의 사고가 운명을 가로지르는 엄청난 장치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을 이를 두고 "썩은 동아줄"이라고 표현한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한 공간이지만 또 다른이에게는 공포의 공간이 된다면 그것은 개선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당신들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구하러 옵니다. 염치도 없나요?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p. 168



그레타툰베리의 말이다. 그는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 시선을 바꾼 사람이다. 처음 그의 작은 행동은 우리의 행동의 마중물 역할을 했으며 지금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 마음대로 활용해 왔다. 너무 편하게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마치 원래 우리들 것인 양 환경을 파괴하고 우리 주변의 생명들을 쉽게 죽였다. 이제 우리가 책임 져야 한다. 지금까지 마구 써왔던 것에 대한 책임 그 책임을 지금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 너무 쉽게 청년들에게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을 넘기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 여기 우리는 당장 행동을 해야 한다.


책의 마지막은 다시 저자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저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로 불린다. 저자는 이 부분에 의문을 가진다. 카메라는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화면을 찍고 영상을 만든다. 그 카메라에게는 공적, 사적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소소한 이야기들은 그것이 거시적 사회 담론이던 두 사람간의 이야기 이던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자가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왜? 사적 다큐가 되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프레임이다. 누구의 것은 사적 다큐고 누구의 것은 사회적 다큐가 되는것 그 시선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저자는 이 문제를 넘어 서려고 한다. 


"이제는 안다.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형식적인 분류로 나의 영화의 가치를 폄훼할 수 없다는 것을, 애정하고 지지하는 사적 영화가 관습과 체제라는 어렵고 복잡하고 감히 건들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개념을 가장 거세게 흔들 수 있는 도구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p. 201-202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는 전문 서적과는 다르게 살짝 맛만 보여주는 책이지만 주제 만큼은 어렵고 무겁다. 그리고 그 무거운 주제이지만 글은 쉽게 잘 읽힌다. 



"학부모 모임이 열리면 나는 또 불려 갔다. 어색하게 앉아 수어를 음성언어로, 음성언어를 수어로 옮겼다." - P18

"그들 사이에서 우리 부모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보라네 부모님‘이었다. 친구들은 와플과 풀빵을 파는 엄마와 아빠에게 인사하며 수어를 배웠다. (중략) 내가 속한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모님의 얼굴을 사라졌다. 눈썹과 얼굴 근육을 움직여 말하는 ‘보라네 부모님‘이 아니라 가정 설문지 내의 ‘고졸‘‘자영업‘‘특이사항 :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 P19

[데프U]의 주인공 중 하나는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수어시를 발효하겠다며 무대에 선다. 말 그대로 ‘온몸으로‘좌중을 휘어잡는다. 입 모양만을 움직여 낭독하는 것이 아닌, 얼굴 표정과 몸동작이 합쳐진 방식으로 시를 표현한다. 수어가 고유하고 완전한 하나의 언어이며 문학이 되고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P31

" 나는 아무럿도 몰랐어. 부락 밖의 사람들이 오히려 부락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 이렇듯 차별과 혐오는 바깥으로부터 온다." - P125

" 임신 중지를 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어 시를 썼다. (중략) 수업이 끝나자 멘토가 저녁을 먹자고 권했다. 그는 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밥을 먹었다." - P130

"당신들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구하러 옵니다. 염치도 없나요?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 P168

"이제는 안다.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형식적인 분류로 나의 영화의 가치를 폄훼할 수 없다는 것을, 애정하고 지지하는 사적 영화가 관습과 체제라는 어렵고 복잡하고 감히 건들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개념을 가장 거세게 흔들 수 있는 도구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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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철학 : 유학편 - 공자에서 최한기까지 마음과 철학
신정근 외 지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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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유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그 의문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런데 과제로 논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나서 "띵"하고 무언가 지나갔다. 동양철학을 공부 한적도 없고 유학에 관심이 없었는데 논어를 읽고 있는데 자꾸 익숙한 문장이 눈에 보이고 예전에 어른들이 했던 말들이  보이는 등 논어는 우리 일상생활에 많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양철학에서 마음에 대한 이론을 공부하면서 과제로 제출 했던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마음이론의 세가지 형태 

 ① 장재의 기(氣)이론  : 장재는 모든 사물을 만드는 재료는 기라고 하며 기는 태허(太虛)와 객형(客形)의 두가지 상태로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태허가 모여 객형이 되고 객형이 흩어지면 태허로 돌아간다고 했다. 또한 마음 안에서 “이성”과 “감정•욕망”의 관계도 이와 같다. 감정•욕망은 객형처럼 생겨났다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성은 태허처럼 ‘마음이 텅 빈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재의 이론에 따르면 마음은 태허와 같은 ‘이성’과 객형과 같은 ‘감정•욕망’으로 분리 된다. 이렇기에 장재의 마음은 기(氣)가 그 근본이다.

 ② 정호의 리(理)이론 : 정호는 장재의 마음이론에서 마음을 텅 비우는 것이 어렵다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마음 속에 도덕 규범의 근원을 상정하고 기의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현상의 바탕에 그 현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본체가 있는데 그 본체는 도덕률의 근원으로 경험되지 않고 원래 있는 것 다시말해 선험적인 것이다. 그러니 들어나는 것이 마음이다. 그에 따르면 본성이 곧 기이고, 기가 곧 본성이다. 이렇기 때문에 리(理)인 본성과 기(氣)인 마음은 같다. 리는 요청된 것이고 기는 원래 있던 것이다.

 ③ 정이의 리(理)와 기(氣)이론 : 정이 이전의 장재와 정호는 마음에 대해 일원론자로 정호는 기일원론 정호는 ‘리-기’의 일원체를 주장했다. 정이는 여기서 정호의 일원체를 리와 기로 분리한다. 정이는 태허인 마음은 텅빈 것이 아니라 리(理)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리인 본성은 기인 마음과 같다는 성즉기(性卽氣)라 했다. 그리고 이 리와 기를 분리 해서 설명을 하기위해 마음이 드러난 것을 ‘이발(已發)’,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미발(未發)’이라 했다. 그리고 그는 마음을 성(性)과 정(情)으로 나누었는데 의식의 흐름을 ‘정‘이라 하며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으로, 마음의 일정한 구조를 가진 것을 ’성‘(=본성)이라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미발은 본성이고 이발은 감성이다. 정이의 이론에 따르면 ’본성은 리이다.(性卽理)‘ 이 명제에 따라 성리학(性理學)이라는 말이 나왔다.


(2) 주희의 마음 이론은 핵심 명제는 (1) 마음은 본성과 감성을 통괄한다.(心統性情) (2) 본성은 리이다.(性卽理) 또한 주희는 이 둘을, 팽개치고 두들겨도 깨지지 않을 명제라고 했다. 

 ① 성즉리(性卽理) : 세상이 모든 사물은 본성이 있고 사물은 그 본성이 드러나는 것인데 이 사물의 본성은 하늘의 명령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명=본성=천리‘이다. 성즉리의 의미는 바로 이것 이다. 그렇다면 하늘의 명령을 받은 본성은 모두 선해야 하는데 사람의 마음에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 마음의 문제를 가능태와 현실태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그 중 가능태는 성즉리이다. 그러니 그 마음 수양을 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게 된다.

 ② 심통성정(心統性情) : 마음의 가능태를 성즉리라고 하면 어떻게 마음을 바라 볼것인가에서 주희는 본성을 본연-기질로 감성은 사단-칠정으로 설명하며 다시 마음은 미발-이발로 설명하였다. 여기서 주희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본연지성은 기질지성 속에 들어있는 리라고 보았다. 본체인 리는 본성이고, 현상은 기이다. 그러기에 기 속에 리인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주희는 ’마음은 본서과 감성을 통괄한다라고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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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 신의 입자 속으로 - 무엇으로 세상은 이루어져 있는가
짐 배것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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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리학을 배우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물리는 인간이 가진 지적 유희의 최고 이다."라는 생각이다. 

힉스 입자를 찾아가는 전제계 물리학자의 숨가뿐 여정을 한권의 책에 담아 놓은 이 책은 손에 든 순간 부터 소설 책을 읽어가듯이 다음이 궁굼해져 놓지 못하고 끝까지 봤다. 


물론 수식이 없는 것은 아니고 양자역학이라던가 물리학계에서만 쓰는 전문 용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소설 처럼 잘 쓰여진 책이여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2001년 대학원을 다닐 때 한창 힉스 입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떄가 생각난다. 내 전공은 입자 물리보다 에너지 레벨이 낮았기 때문에 힉스입자와 관련된 방정식을 풀어 본적은 없지만 자발적대칭붕괴 관련 방정식을 우연히 본적이 있었고 그 그래프(맥시코 전통 모자 또는 와인병 바닥이 볼록 튀오 나온 것 같은 모양)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를 가르쳐 주던 박사님은 현재 물리교육과 정교수로 임용되어 현재 대구에 계신다. 그분께 참 많은 것을 배웠던것 같다. 길지않은 대학원 시설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이 공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나를 가르쳐준 박사님 덕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대학원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대학원은 물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현장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주 살짝 본 것이지만 그때 배운 것으로 지금도 즐겁고 행복하게 물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책 속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재미 한국인 물리학자 한무영에 대한 내용인데 이제는 고인이 되신 한무영교수는 일본인 물리학자인 요이치 난부와 함께 쿼크에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한권의 책이지만 책을 읽는 순간 물리학과 3층에 있던 핵물리 이론 연구실에서 오래된 논문을 찾아 보고 도서관 깊은 곳에 있던 물리책을 찾아서 읽었던 그 시간으로 돌려 보내줬다. Dirac의 논문, Feynman의 논문 등을 찾았을 때 그 순간의 기뻐했던 기분을 오랜만에 느켰다.



요이치 난부는 "위커크는 두 종류, 아래쿼크와 야릇한쿼크는 세종류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제안했고, 뉴욕주 시러큐스대학교의 젊은 대학원생이었던 한국 출신 물리학자 한무영과 함께 논문을 작성하여 1965년 말에 발표했다. - P124

CERN에서 발견된 새로운 입자는 쿼크의 질량이 힉스장과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었음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쿼크는 원래 질량 없이 태어났다가, 이 상호작용을 통해 질량을 가진 입자로 거듭났다. 힉스장 속에서 움직이는 쿼크는 물속을 헤쳐나가는 물고기나 군중 속을 헤쳐나가는 유명인사처럼 운동에 방해를 받게 되는데, 바로 이 ‘가속에 대한 저항‘이 질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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