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에서 잡스까지 - 상상력의 장인들이 펼쳐온 정보통신 혁신 이야기
신동흔 지음 / 뜨인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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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어떻게 원거리 통신을 이룩하게 되었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1760년에서 1820년 사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면, 1840년에서 1910년 사이에는 정보통신의 혁명이 있었던 시기였다.

 

 

 

모스에서 잡스까지는 인간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전기를 통한 원거리 통신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백과사전적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이면에 숨겨진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사용하는 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통신에 대한 지식이 듬뿍 들어 있다.

 

기술은 과학에 바탕을 두었고, 과학적 발견을 어떻게 기술로 연결시켰는지 설명을 하며, 이러한 발명은 과학자나 기술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가능하다는 역사적 이야기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과학을 좀 더 세심하게 공부하게 할 동기를 줄 것이며, 학교에서 과학을 비롯한 교육을 하는 교사들에게도 상식을 풍부하게 해 줄 교양 도서이다.

 

 

 

정보통신 과학·기술 역사서로 이보다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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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부 - 철학과 과학으로 풀어 쓴 미래정부 이야기
김광웅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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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분류를 보면, 정책/행정/조직/ 정치학일반으로 되어 있다. 본문을 보며 꼭 이 책의 분류를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좋은정부'는 부제로 '철학과 과학으로 풀어 쓴 미래정부 이야기'라고 되어있다. 이 책에 관심이 갔던 것도 철학과 과학이라는 학제간 접근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현대 철학자로 유명하며 의미가 있는 이는 비트겐슈타인 일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 개인으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철학사조의 발전에 이정표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철학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언어와 세상이 일대일로 대응된다는 논리주의 사조는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준다. 이를 따른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 등은 현상을 과학과 논리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는 이들의 성경과 같았다.


논리철학 논고를 쓰고,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고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초등 교사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세계와 일대일 대응을 하지 않고, 다양한 용법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맥락을 공유하는 문화에 의해 언어 사용이 공유된다는 것이다. 이를 가족유사성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설명한다. 사후에 출간된 '철학탐구'는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변환점이 된다. 이는 분석철학에 영향을 주며, 또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된다.


'좋은정부'는 이러한 현대철학의 조류에서 분석철학이나 독일의 비판철학인 프랑크푸르트학파와는 거리가 있는,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의 견해를 주로 차용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개념의 상상력으로 설명하며 깨달음을 주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기까지이며, 현대사회가 가진 병패를 비판만 할 뿐이지 대안을 주지 못하는 것이 한계가 아닐까 한다. 좋은정부는 철학으로 지금까지의 정부를 비판한다. 그리고, 대안을 과학에서 찾은 듯 하다.

 

양자역학에서 양자생물학으로 이어지는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저자의 주장은 다소 허황되다고 할 수 있지만, 과장법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자. 그리고, 이 책의 분류를 다시 한번 생각하자. 약간의 사족을 달자면, 아무리 뛰어난 계산 성능을 가진 양자컴퓨터가 있을지라도 결코 소수의 갯수에 대한 비밀을 풀지는 못 할 것이다. 또한 짝수와 홀수의 곱이 짝수라는 것도 양자컴퓨터의 계산으로 증명하지 못 한다. 이는 AI가 결코 인간을 넘을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정부에서 하는 모든 정책 결정은 알고리즘이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리즘이란 '수학과 컴퓨터 과학, 언어학 또는 관련 분야에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해진 일련의 절차나 방법을 공식화한 형태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된다. 즉, 알고리즘이 정책을 결정하더라도 그 알고리즘을 짜는 주체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행정학, 정치학 책이라 딱딱하고 무거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상상력과 따뜻함으로 가득차 있다. 곰곰히 생각하며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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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비밀 - 나이에 상관없이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개리 마커스 지음, 김혜림 옮김 / 니케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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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상관없이 악기를 배울 수 있는 뇌과학의 비밀]은 책 자체가 다른 책보다 폭이 좁다. 그렇기 때문에 손이 조금 큰 사람들에게는 한 손에 꼭 들어 온다. 저자는 스스로 구제불능의 음치·박치라고 말하며, 기타 연주에 도전한다. 만약 저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으며, 이 책을 읽고 악기 연주에 도전하고 싶어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왼손으로 쥐어 본다면 기타 코드를 잡기에 유리한 신체를 타고 났다고 생각해도 좋을 듯한 크기의 책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13장으로 되어 있는 구성이지만, 크게 뇌과학와 인지심리학으로 음악과 악기 연주에 대한 주제와 저자의 기타 체험기라는 주제로 나눌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선천적 한계, 나이, 그리고 재능의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라고 고백하고 이를 자기 자신이 실험하기로 한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 또는 숙달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연습이며, 10년 또는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지만, 이를 실행할 표본을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저자의 실험이며 체험이 시작된다.

책은 저자의 체험을 시간 순으로 따라 간다. 책의 초반은 뇌과학, 인지심리학, 진화심리학 등의 이론적인 내용이 많이 나온다. 인지심리학자인 저자는 무작정 연습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악기 연습에 대한 인지심리학의 연구 결과로 ’계획적이고 신중한 훈련‘을 통해 숙련도를 향상시킬 것이라고 한다. 또한 연습의 단순한 총량보다는 약점의 개선에 목표를 두고 연습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중요한 점이다. 악기 연주나 수학 공부에서 향상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쉽고 재밌으며 자신이 잘하는 부분만 지속적으로 연습하거나 문제를 풀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부족하고 약점이 부분은 여전히 장애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 장애물을 애써 외면하더라도 장애물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악기 연주를 포기하거나 수학포기를 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재능의 부족은 서술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요즘은 악기 연주에 대한 수 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또한 음악에 관련한 책들도 많이 나와 있다. 이러한 것들은 어떤 지식이 음악을 구성하는지 알려 준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악기를 연주할 수는 없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어떻게 하는 것은 절차적 지식이다. 또한 이 두가지는 의식적으로 숙고하며 전환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악기로 모방적 연주 뿐만 아니라, 즉흥곡을 연주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체험은 단순히 악보에 적힌 음을 악기로 연주하는 차원을 넘어 실제 음악을 향유하는 것으로 향한다. 악기를 연습하며 수준이 높아지면, 이에 대한 지식에 궁금증이 생기고 그걸 해결하며 더 높은 곳으로 향한다.

왜 이런 것을 하느냐라고 저자는 묻는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에게 관계와 의미를 주며, 이것이 곧 행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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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의 심리 -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의 마음으로 읽는 학교폭력
이보경 지음 / 양철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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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의 심리는 학교폭력의 근본 원인과 해결 방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관적으로 쓴 책이라고 하며,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진리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단정한다. 저자는 더 받아들여지고 공감되는 것이 있을 뿐이며, 이러한 소박한 목적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

 

저자는 학교폭력을 이해하기 위해 1부에서 심리학을 바탕으로 인간 행동을 설명하고 있다. 주로 사회심리학의 실험들이다. 아마 이 부분은 학교폭력이나 상담 관련 도서에는 없는 내용이 될 것이다.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으며, 학교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로 되어 있기에 읽어볼 만 하다. 1부만 읽어서 제대로 소화한다면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다.

 

2부에서는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를 각각 분석하고 있다. 기존의 학교폭력은 가해자 위주의 응보적 처벌로 끝났다. 성인이 사회적 위해를 가함으로 처벌을 하는 교화시설도 처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돕는 시설로 바뀌는 마당에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가해자의 처벌만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조류에 의해 생겨난 것이 회복적 정의다. 저자는 회복적 정의를 받아들이고, 피해자의 구제를 적극 지지한다. 학교폭력을 근원적으로 없애기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든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 이것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해소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내가 피해를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며, 가해자는 자기가 한 잘못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과 인문학, 아들러 심리학, 회복적 정의가 섞여 있지만, 학교폭력을 이해하기 위한 소재들을 적절히 섞어서 이야기를 전개했다고 본다. 합리적 정서행동 치료는 글 속에 소개는 되지 않았는데, 전반적인 글을 읽다보면 저자가 공감을 말하지만, 인지적 사고체계가 더 강한 분인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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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까칠한 다문화 이야기
손소연 지음 / 테크빌교육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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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약으로 말한다면 당의정이라고 할 수 있다. ‘까칠한 다문화 이야기라는 무거운 제목은 읽기 전에 몸에 힘이 들어가고 감정을 다잡고 공평무사하게 독서를 하기 위해 책을 편다. 그런데,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보통 아이들의 일상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른다.

 

다문화라 하여 특이하고 신비한 것처럼 보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저런 작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책을 넘기고 넘겨도 뭐가 까칠한 것인가 의아해하며, 다문화 아이들도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구나 하고 안심을 할 때, 정말 까칠한 이야기가 나온다. 글 초반에 그런 조짐들이 보이지만,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저런 일은 한국 아이들과 학부모도 충분히 그렇게 행동하는 일들이다.

 

저자가 다문화 자녀 특별학급에서 오랫동안 경험한 일을 작은 주제들로 소소하게 풀어간 이 책은 초반의 이야기들이 한국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하지만, 조금은 특이한 내용들은 우리가 가진 조그마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꾸면 해결될 일들이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가면 까칠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건 다문화의 문제라기 보다 우리의 문제가 된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고를 담는 그릇이며, 세상을 보는 인식의 창이라는 말이 있다. 다문화 아이들은 우리와 같이 우리의 말과 문화를 배운다. 이들은 한국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어쩌면 순수 한국인보다 더 폭넓은 사고와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문화라는 편견으로 그들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한국어와 한국문화라는 한 날개와 그들의 다른 날개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외모와 형식 문화의 차이는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고 배척할 이유는 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단일의 문화를 가진 곳은 없다. 문화는 전달되고, 흡수되며, 융화되며 발전한다. 그러한 발전의 방향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문화를 접할 필요가 있다.

 

까칠한 다문화 이야기는 인간의 욕구와 바램이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에 저자는 짧게 그러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으며, 전반에 흐르는 이야기는 함축적으로 인간 본연에서 같은 존재로 다문화 가족을 보고 있다. 까칠한 다문화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는 비인간적인 면을 다문화와 연결지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는 다문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언제나 나타날 수 있는 사회 병패의 하나이다.

 

학업 중도 포기는 한국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만큼 사회문제가 될 만큼 중도 포기율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다문화 아이들의-중도 입국 다문화 아이들의 중도 포기율이 높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일반 학생들도 학교를 떠다는 비율이 늘고 있는 현실로 보았을 때, 한국은 미국처럼 변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배움의 기회가 정규교육 기관뿐만 아니라 지역의 여러 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 미국에 간 사람들은 학교 뿐만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 여러 곳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한다. 한국도 다문화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학교 밖으로 나간 아이들을 위해 교육의 혜택을 언제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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