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가 안 맞네요. 블로그 글을 옮기고 있는 탓입니다. ^^;

12일부터 19일까지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존 크랑코 안무의 드라마발레 <오네긴>을 하고 있다. 새삼 공연 설명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으므로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http://pann.news.nate.com/info/252334252 을 참조하면 되겠다. 12일 7시 공연을 보았는데, 참... 여러 모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작품이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연기에 대해서는 그저 감탄 말고는 보내고 싶은 것이 없지만(발레는 피겨스케이팅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다.

제 1막이 끝나고서는 너무나 감동했는데, 차이코프스키보다 나은  너무나도 적절한 편곡과 은근하면서도 알기 쉬운 표현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올가와 렌스키의 2인무는 철없고 경박한 올가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이었고, 그러면서도 시골 소년과 소녀의 해맑고 자연스러운 애정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책에 파묻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감출 길 없는 타티아나의 몸짓과, 그런 그녀를 뒤에서 너무나도 부드러운 가벼움으로 들어올리는 오네긴의 안무는 푸슈킨의 시를 그냥 축약해 놓은 것만 같았다. ㅠㅠ 타티아나가 오네긴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는 유모(바로 그 유모!)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디테일도 아름다웠고, 타티아나가 편지를 쓰다 잠든 후 꾸는 꿈 안무는 상투적이지만 정열적인 편지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증폭되는 기대감으로 인터미션을 보낸 것도 잠시... 2막에서 나는 너무나 당황하고 말았다. 타티아나의 명명 축일 파티 장면에서 오네긴은 타티아나와 2인무를 추는 듯 하더니 힘차게 그녀의 허리를 밀어내 버린다. 여기에서부터 나는 '오버 액션'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1막에서 그 많은 성격들과 감정선들을 안무만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냈기에 더더욱 여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것 같다. 드라마'발레'가 아니라 '드라마'발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라도 하는 듯... 오네긴이 그 자신의 권태와 우울, 사랑에 대한 불신 때문에 타티아나의 사랑을 거절해야 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지겹게 따라다니던 스토커 애인을 발로 걷어차기라도 하는 듯이, 오네긴의 급변한 행동에 당혹스러워하는 타티아나를 붙들고 그녀를 세게 흔들며 눈 앞에서 편지를 박박 찢어 던져버리기까지 한다.

나는 정말 내가 뺨을 맞은 줄 알았다... 1막에서의 그 은근한 표현력은 어디 간걸까. 타티아나의 명명 축일 파티에서는 소극적으로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고, 편지는 돌려주는 것 정도로 거절할 수는 없었던 걸까. 나는 이 작품의 해석이 점점 더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예브게니 오네긴>>이 아니고 <<오네긴>>이다. 대체 존 크랑코의 '오네긴'은 어떤 사람인 걸까? 그저 질 나쁜 바람둥이? 

작품에 대한 재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할 터. 오네긴이 질 나쁜 바람둥이어도 사실 상관은 없다. 질 나쁜 바람둥이로서 끝까지 이해될 수만 있다면. 하지만... 오네긴은 렌스키와 춤을 추는 올가를 빼앗아서(심지어 두 사람이 올가를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기까지 한다) 춤을 추고, 여기까지는 약혼녀를 빼앗아 춤을 추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안무라고 이해한다고 해도,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렌스키가 그런 올가의 팔을 다시 잡아당겨 자신에게 오라고 하자 올가가 두 팔을 흔들며 NO, 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올가는 별 생각이 없는 아가씨로, 정혼자가 있든 없든 그 나이대 아가씨가 젊은 남자에게 으레 보일 수 있는 애매한 태도로 인해 오네긴과 춤을 추게 되어야 한다. 렌스키에게 적극적으로 NO, 를 표현한다면 그저 오네긴과 바람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원작에서 오네긴이 올가와 춤을 추는 이유는 그가 타티아나의 사랑을 거절하긴 했지만 무의식 속에서 타티아나를 강력하게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한 오네긴을 움직이는 것은 일종의 자살 충동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선이, 슬프면 우는 시늉을 하고 기쁘면 자리에서 방방 뛰며 거절할 때는 손을 내젓는 것 같은 단순한 제스처로 표현될 수 있는 걸까? 1막에서 안무만으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해냈던 안무가의 능력은... 어디로 간 것일까?

격분한 렌스키와 오네긴은 급기야... 서로 싸대기를 번갈아 날리는 막장 치정극을 연출하며 갈등을 표현한다. 아아,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저히 박수를 칠 수가 없었다. 이 극의 클라이막스여야 할 부분들이, 줄거리 읊듯 표현되고 있다. 이런 것은 연극으로도 보고 싶지 않다. 하물며 발레는... 더욱더.

오네긴과 렌스키는 결투를 한다. 원작과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 질 나쁜 바람둥이 오네긴과 올가의 바람난 이야기여도 된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원작에서 오네긴은 렌스키와의 결투를 피하고 싶어한다. 자격 없는 입회인을 골라 결투의 예법을 다하지 않고, 결투장소에 늑장을 부리며 나타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오네긴과 렌스키는 서로 격렬한 증오를 표출하고, 이를 타티아나와 올가가 매달려 말림으로써 결투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복선을 준다. (정말 치정 살인극이다. ㅡㅡ) 그래서 분노는 서로를 향한 채로, 오네긴은 총을 발사하고 렌스키는 바로 맞아 죽는다. 그리고

무대 뒤쪽에서 렌스키를 쏴 죽인 오네긴은 몸을 휙 돌려 무대 앞쪽으로 나오더니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고뇌한다. 갑자기.

...대체 원작을 읽지 않은 채로 이 발레를 보는 사람들은, 렌스키를 죽이게 된 오네긴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게 될까?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1막 인터미션 후에 사람들에게 꼭 보라고 호들갑을 떨며 남겼던 구글 플러스의 포스팅을 취소하고 싶었다.

3막을 보러 들어가는 기분은 아쉬움으로 인해 참담한 기분이었다. 1막의 표현력에 감탄했기에 더더욱... 3막은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와도 같이, 수도의 파티장으로 시작한다. 공작과 결혼한 타티아나는 성숙하고 안정적인 춤을 춘다. 2막의 충격이 아니었더라면 이 안무도 아마 아름답게 보았으리라. 실제로 타티아나가 오네긴을 발견하고 한번 더 되돌아보는 장면과, 오네긴의 구애 편지를 받고 심적으로 갈등하는 장면은 적절해 보였다. 특히 아름답게 느낀 것은 편지를 읽고 있던 그녀의 방으로 남편인 공작이 들어왔을 때의 2인무다. 공작은 사람 좋게 아무 것도 모르고 춤을 추고, 타티아나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충실함을 확인하듯 춤을 춘다. 타티아나의 몸짓은 '이 사람이 내 남편이야.' 라는 것을 자신에게 거듭 확인시키는 듯한 몸짓이다. 과연 1막에서 확인한 표현력이었다.

이어 오네긴이 그녀의 방으로 들어오고, 타티아나는 그의 때늦은 구애를 거절하는 제스처로, 편지를 또 박박 찢는다. (아, 이번엔 내가 따귀를 날리는 것 같다...) 처음에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편지를 찢을 때 너무 충격이 커서 차라리 이 부분이 대구를 이루는 것이 그나마 이 작품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이어 마음 속은 어쩔 수 없이 오네긴에게 끌리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듯, 안기고는 또 밀어내는 2인무가 펼쳐진다. 이 피날레는 이 작품을 그나마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마지막에 오네긴을 내보내고 난 후, 타티아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끝나는 장면은 본래의도상 타티아나의 오열로 읽어야겠지만, 내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주먹에 너무 힘이 들어간 나머지 '타티아나의 분노'처럼 느껴지긴 했다.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들이 치정 살인극이 되어버린 이상, 타티아나의 분노가 옳은 해석은 아닐까? ㅡㅡa

그리하여 이 작품은, 줄거리를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그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없는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드라마'의 요소만을 뽑아내서 만든 명실공한 '드라마'로, 발레의 표현력을 통해 서정시를 읽고자 했던 원작 팬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고 끝났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굳이 평할 목적이 아니라면, 이 작품이 무척 아름다운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보기에 굉장히 재미있다는 것을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황혜민/엄재용 캐스팅으로 보았는데, 다른 캐스팅으로 또 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다음 주는 출장을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안무가의 원작 해석에는 의문을 금할 길 없었지만, 올가와 타티아나, 오네긴과 렌스키가 토슈즈와 발레 타이즈를 입은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예브게니 오네긴>> 팬들에게는 큰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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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와 플라토노프는 둘 다 1899년에 태어났다. 나는 한동안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것 같다. 그 때문에, 마샬 버만의 <<현대성의 경험(All that is solid melts into the air)>>을 읽을 때, 구체적 개인들의 모습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이 사람들이다. 이 두 작가와 그들이 살던 시대를 각각 따로 또 같이 생각하는 것이란.

나보코프 전기에 이어 플라토노프의 전기적 사실을 주워삼키기 위해 Thomas Seifrid의 <<Andrei Platonov - Uncertainties of spirit>> 을 보고 있다. 플라토노프에 '대한'책은 커녕 작품도 다 번역이 되지 않은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한국어로는 플라토노프에 대해 읽을 만한 것이 없어서 돌아다니는 pdf 파일을 검색해서 찾았다(쿨럭). 플라노토프에 대한 전기적 사실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플라토노프의 작품에 대해 제기된 주요한 비평적 관점과 플라토노프가 영향받은 러시아 사상가/철학자들을 다룬 후 작품 해설로 나아가는 좋은 플라토노프 가이드인데 안타깝게도 주저 <<체벤구르>>와 플라토노프의 다른 면모들을 엿보게 한다는 초기 시선을 비롯한 작품들이 아직 출간되지 않아 이 책의 반은 이해하지 못하게 생겼다. 지금부터의 내용은 내가 알고 있는 이런저런 전기적인 이야기에 Seifrid 의 책에서 본 내용을 더한 것이 될 것이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1951)는 1899년 9월 1일 러시아 남서부 보로네시(Voronezh) 의 마부촌에서 철도 기계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플라토노프가 태어났을 당시 이 지역은 철도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황량한 농촌과 다른 한 쪽은 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산업사회와 농촌의 대조, 어중간한 중간자적 환경을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셈이다. 그의 단편들에서 두드러지는 빈곤에 대한 묘사를 볼 때 플라토노프 가정은 풍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나보코프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게도 문화적 주변부에 살았고 겨우 초등 교육 정도를 받았으며, 혁명의 덕택에 교육 기회를 부여받고 고향의 공업 학교에서 기술자 학위를 받는다. 조상 대대로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은 데다가 자유주의자 부친으로 인해 유럽 각지의 다양한 가정교사를 두고, 정치, 외교, 군사,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에서 한 가닥씩 하는 친척들과 지인들에 둘러싸여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나보코프와 같은 1899년에 태어났다는 것이 매우 극적인 차이인 것처럼 느껴진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일찍이 지역 문단에서 활동하면서 재능을 나타냈으나, 러시아 혁명 이후 전 인민이 혁명적 재건의 역사적 과업을 떠맡게 되자 문학과 같은 사변적인 일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 집필을 잠시 중단하고 토지개량 기술자와 댐 기술자로 근무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전념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보이며, 후일에는 비록 문학활동은 제재를 받았을지언정 이런 저런 편집이나 잡지 기고 등 글 쓰는 일을 전업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는 문단에서 보리스 필냐크와 교류하였는데, 필냐크와 공저한 작품들이 잇따라 당시 문단의 주류를 차지하던 프롤레타리아 작가연맹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점차 창작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주된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필냐크였으나, 플라토노프는 필냐크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여겨져 함께 공격을 받았으며, 러시아 농촌지역에서의 집단농장화 사업에 대한 풍자 소설들이 잇따라 공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1931년에서 1934년에 이르는, 플라토노프가 알아서 조심하는 '침묵의 시기' 가 이어진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플라토노프는 조심스럽게 회복과 복귀를 꿈꾸었으며 경제 5개년 계획을 비롯한 소비에트 재건에 참여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플라토노프는 침묵하는 기간동안 자신의 작품을 당시의 정치적 기후에 맞게 다듬으며, 자신이 소비에트 작가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아니면 이미 이것은 불가능하게 된 것인지를 애타게 알고 싶어 했다(고리키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행동을 저항심의 부재나 문학적 타협으로 보기에는 플라토노프는 좀더 예민하고 또 복잡한 인물이다. 플라토노프가 한 말에서 인용된 것으로 보이는 다음의 서술을 보아도 그렇다.
 
"I will not be a professional writer if I expound only my own unchanged ideas. Nobody will read me. I have to vulgarize and vary my thoughts in order to produce works that are acceptable... If I were to put into my works the real blood of my brain, nobody would read them... My true self I have never shown to anyone, and probably never will. For this there are many serious reasons, but the chief one is that nobody really needs me."

"내가 나만의 변하지 않는 생각들에 대해서만 장황하게 설명한다면 나는 직업 작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내 작품을 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받아들여질 만한 작품을 써내기 위해 내 생각들을 다양화하고, 격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내가 내 머리에 진짜로 흐르는 피를 내 작품에 주입한다면, 아무도 그것을 읽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나 자신을 나는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으며, 아마 앞으로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중대한 이유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Thomas Seifried, <<Andrei Platonov - Uncertainties of spirit>> p.20에서 재인용) 

플라토노프에게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전업 작가로서 만드는 일이었으며,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읽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의식했다. 그에게 예술과 문학은 독자와 비평가, 다시말해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플라토노프가 속한 사회가 소위 요즘 말하는, 잘 팔린다는 의미에서의 '먹힐 만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도 더불어 생각해 보면, 위의 인용문은 플라토노프가 작가가 된다는 것, 작품을 쓴다는 것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타인을 강하게 의식했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자서전에 따르면 나보코프는 치기어린 시절 쓴 시가 출판된 후 굉장히 쑥스럽고 부끄러웠으며, 이 때의 악연으로 평생 비평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뭐라 하건, 어떻게 생각하건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 따라 다소 거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엘리트주의적이라는 것은 작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몇 번을 고쳐 쓴 자서전을 통하여 그는 비평가와 심지어 독자까지도 조롱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마 그는 읽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도, 자신의 예술적 성취에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범인들이 거기 있는줄도 모르고 지나치고 마는, 나무에 붙은 나방의 보호색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충만했기 때문이다. 나보코프는 자신이 예술을 희구하는 한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나보코프에게는 기억과 회상의 탐색으로 얻어지는 인상과 표현들이 작품의 재료였다. 기억이 물질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를 통하여 그는 일종의 절대적인 것을 향해서 나아갔다. 그것은 순간과 영원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예술은 이것들을 밝히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플라토노프에게 있어서 작품의 재료는 언제나 구체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를 대리하는 그의 주인공들은, 그와 아버지 플라토노프의 이름을 따서 진리를 희구하는 이들이지만, 이들 앞에는 언제나 진리를 밝힐 목적이자 과정으로서 존재하는 현실과, 이 현실을 표현하는 구체적이고도 물질적인 대상이 있었다.

플라토노프는 지역에서 댐 기술자로 일하다가 탐보프(Tambov) 로 파견을 가게 되었는데, 일종의 중앙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에서 그는 업무를 지도하러 나가는 농촌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지역 관리들의 저항과, 댐의 배수(背水, backwater)이라는 엄청난 자연-기계적 현실을 마주하고 이를 다스리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는 편지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탐보프에서의 고생, 외로움을 토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략) "...wandering these backwaters I've seen such dreary things that it was hard for me to believe that somewhere there exist Moscow, art, and prose. But it seems to me that genuine art and thought in fact can only appear in such a backwater."

"이 배수(背水) 주위를 배회하며 나는 너무나 황량한 광경들을 보았고, 내게는 이 세상 어딘가에 모스크바와 예술, 산문시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실한 예술과 사유는 실은 이러한 배수 안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고 느꼈다." (같은 책에서 재인용)

나보코프에게 당신의 작품들은 망명 작가로서 당신을 형성한 사건들, 정체성들과 떼어놓을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러시아 혁명이 당신의 작품을 만든 셈이라고 말한다면 지독한 악담일 것이다(세계 안의 존재로서 이 점을 부정할 다른 방법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하지만 플라토노프는 이러한 점을 더욱 깊이 의식하는 작가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 혁명은 플라토노프를 작가로 만들었고 키웠으며 그에게 많은 고통과 슬픔만큼이나 많은 재료를 주었다. 진실한 예술과 사유를 길어낼 수 있는 구덩이나, 댐, 철도 같은 것을.

플라토노프를 작가로 만든 혁명은 그러나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플라토노프의 15세 아들은 1938년 반 소비에트 활동단체를 이끌었다는 죄목으로 수용소로 보내지고, 숄로호프의 중재로 풀려나긴 했으나 1943년 수용소 생활 중 얻은 결핵으로 사망하게 된다. 아들을 돌보던 플라노토프도 이 때 결핵이 옮아, 1951년 1월 5일 52세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플라토노프의 대표작으로 여겨지지는 <<체벤구르>>와 <<코틀로반>>이 후기 작품들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아쉽고도 또 아쉬운 죽음이다. 그의 작품들은 1958년이 되어서야 겨우 복간되며 조금씩 복권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서구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며 알려진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였다.

플라토노프와 나보코프... 이 두 사람을 대조하는 것의 의미가 같은 년도에 태어난 다른 계급의 작가라는 데에 있다면 그것은 그냥 -프 자 돌림에서 유사성을 찾는 것만큼이나 한심한 일일 것이다. 지표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자의적이기는 하나, 두 사람의 너무도 대조적인 삶과 정치관,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작가관과 문학관의 차이로 나타났는지를 생각하면 할 수록, 마샬 버만만큼 능숙하지는 않더라도 이 작가들의 표정을 통해서 20세기 문학의 표정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과연 서로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있는지, 그랬다면 어떻게 평가를 했을런지가 못내 궁금하다. 나보코프는 플라토노프를 읽었을지도 모르겠다(나보코프가 플라토노프에 대해 언급한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아시면 꼭 제보를...) 플라토노프는 아마 나보코프를 몰랐을 것이다. 플라토노프는 소비에트 러시아에 살았기에. 그리고 나보코프보다 26년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p.s. 보로네시 현지에 세워진 플라토노프 동상. http://www.panoramio.com/photo/5488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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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읽은 책에 대해 리뷰할 수는 없어서 페이퍼로.

<<문화로 먹고살기>>라는 책을 또 낸 우석훈은 경제학자들이 보통 손을 안대는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것 같은데, 활동가로서의 위치에 한 발을 걸쳐놓고 생태, 세대, 여성, 환경, 문화... 이런 것을 건드리면서 비주류 경제학자인양 하지만 결국에는 경제학자라는 타이틀로 발언에 힘을 싣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좌와 우를 떠나서 유물론적으로 사태를 파악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신뢰하지 않아서(게다가 그가 경제학자라면 더욱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강준만 옆자리로 분류해두고 있다(학자처럼 보이지만 인상비평가).

문화산업에 대한 경제학적 보고서는 정부출연 연구소 것을 보면 되겠고('~이다'의 영역), 이 책을 보는 사람은 우석훈의 "지금보다 딱 2배만 더 많은 청년들이 문화로 먹고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사회는 과연 토건 중독에서 벗어나 건강한 문화 생태계를 가꿀 수 있을 것인가?"('~해야 한다'의 영역) 에 더 관심이 있을 텐데, 이런 소리를 들으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1. 어떠한 세대, 어떠한 계층(청년)이 다른 분야가 아닌 문화로 먹고살자고 하는 것은 그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산업논리에 포획된 '문화'와 무엇이 같고 다른가? (왜 '청년'이어야 하며, 왜 청년이 '문화'여야 하는가?)

2. 토건의 반대항은 왜 '문화' 인가? 그리고 그의 '문화' 는 왜 도서, 연극영화, 음악, 스포츠인가?

돈 주고 살 생각은 없으니 그저 목차만 뚫어져라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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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어둠 후마니타스의 문학
아서 쾨슬러 지음, 문광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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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담백한' 명예감각 때문에 시원하게 망해버린 <<한낮의 어둠>> 의 류바쇼프를 보면, 어느 정도의 허세, 실속없는 제스처, 설익은 분별력들은 존재 자체로 세계의 평화를 짊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프롤레타리아에게 밤이 필요한 이유인 것일까.

루바쇼프와 옆방 수감자 "402호"가 벽을 두드려가며 나눈 대화. 
심문 끝에 루바쇼프가 항복을 결심하자,

"난 당신이 예외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명예가 남아 있나?"
루바쇼프는 코안경을 손에 쥔 채 등을 대고 누웠다.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그는 다시 두드렸다.
"명예에 대해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
402호는 빠르고도 정확하게 두드렸다.
"명예란 자기의 신념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다."
루바쇼프도 즉각 대답했다.
"명예란 허영심이 없는 유용한 것이다."
402호는 더 크게 그리고 더 날카롭게 답했다.
"명예란 품위다, 유용함이 아니라."
"뭐가 품위인가?"
루바쇼프가 글자에 간격을 두면서 물었다. 그가 조용히 두드릴수록 402호가 두드리는 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당신 같은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야."
402호가 루바쇼프의 질문에 대답했다.
"우린 품위를 이성으로 대체해 버렸다."
루바쇼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두드렸다.
402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아서 쾨슬러, <<한낮의 어둠>> p.235-6, 문광훈 역, 후마니타스, 2010.


p.p.s.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평전을 읽던 중에 봐서 그런가, 나는 루바쇼프가 트로츠키를 모델로 한 줄 알았는데 부하린이라고 한다(부하린의 평전은 아직 못 읽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부하린: 혁명과 반혁명의 사이>> (김남국)을 구했다. 젊은 인텔리겐치아 혁명가의 삶이란 대개 비슷비슷했던 것 같다. 잠시 전선이 소강상태일 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엄청나게 읽는다든가... 

또, 모스크바 재판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데 아이작 도이처판 트로츠키 평전의 1부작이나 로버트 서비스의 레닌 평전을 보건대 모스크바 재판 뿐만 아니라 당시 러시아의 어떠한 정치범이 놓인 상황이어도 기본적으로 비슷했을 것 같다. 나보코프도 - 러시아 혁명이 곱게 보였을 리가 없겠지만 - 서구(그러니까 나보코프 입장에서 서구) 좌파들이 으레 러시아의 잔혹한 사건들은 스탈린 시기에만 일어나고 레닌 때는 없었다고 생각하거나 이상이 꽃핀 호시절인 양 생각하는 것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는데 그것도 수긍할 만 하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마... 거의 모든 정치감옥의 이야기이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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悼む人 (單行本)
텐도 아라타 / 文藝春秋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텐도 아라타를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만 가두는 게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호들갑도 자제해야 할 작가라는 생각.

어린시절에 겪은 트라우마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영원한 미성년의 주인공들과, 자식들에 의해서 극복되지 못하는 마찬가지로 미성년인 부모들을 다룬 전작 <<영원의 아이>> 는 5권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어쨌거나 미스테리에 있으니, 웬만한 논문 주석보다도 더 긴 자료 조사에 들인 공력과 동급의 일본소설들 중에서는 꽤나 야심찬 심리묘사가 장점이라 하겠는데,

죽은 이들의 말없이 잊혀진 자리, 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에 압도되어버린 인간을 그리고자 했다는 <<애도하는 사람>> 은 실로 오랜만에 "일본 소설 같은거 읽지 마시고, 좋은 거 읽으세요." 라고 하고 싶어지는 작품이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발견한 사망 기사를 토대로 사람이 죽은 장소를 찾아다니며 나름의 간단한 애도 의식을 치르는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

어릴 적부터 주위의 죽음을 쉽게 잊어 넘길 수 없었던 그는, 사고든 자살이든 병사든,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노인이든 갓 태어난 아기든 가리지 않고 애도하는 순례길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다른 이로부터 감사를 받은" 공통점이 있고, 이것이야말로 '확실히 살아있었던'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이름과 자취들을 잊지 않는 방식으로 지금은 없는 이들을 기리고자 한다.

그의 순례 여정을 주 플롯으로 해서, 온화하고 단란한 그의 가족사에 드리운 생과 사의 대립(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와 임신한 여동생), 그리고 순례길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뒤틀린 애정의 귀결로 남편을 살해하게 된 여자 유키요가 갖고 있는 생과 사의 긴장이 얽혀드는 야망 가득한 작품이다.

없으면 세상이 끝날 것 같았던 죽은 이들을 어느샌가 잊고 덤덤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모습을 문득 낯설게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즈토 안에서 자신의 어떤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않겠다고 발버둥쳐보지만 사람은 죽음을 묻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고, 그 항상성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법. 이에 대한 해답 비슷한 것은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작가는 말하려는 듯 보인다. 일본 소설, 장르소설이라는 틀을 넘어 보편적인 주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제의 깊이에 도달하고자 작가가 들고 있는 '생과 사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는 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얄팍해서, 도대체 이런 그물로 어떻게 대왕고래를 낚을 수 있을까 싶은 것. 

예를 들자면 이런 건데, 시즈토의 어머니는 자기보다 사교성도, 운동 실력도 뛰어났지만 어릴적 백혈병으로 죽게 된 오빠에 대해서 <내가 아니라 오빠가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오빠의 남은 생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았다>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오빠는 심지어 여동생에게 <너는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 네가 사는게 더 낫다> 라 하고 있으며, 시키지도 않은 고생을 하며 구도의 길에서 생의 가치와 죽음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주인공 시즈토(애도하는 사람) 조차도 아이들을 고쳐주기 위해 의사가 되었던 친한 친구가 과로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자 <나보다도 그 친구가 사는 것이 세상을 위해 더 도움이 될텐데> 하고 생각한다.

세상의 죽음은 대리될 수 없고 모든 삶은 특별한 것이며 목숨에 가치의 우열을 부여할 수 없다는 주제를 건드리기 위해서는 세상에 더 가치있는 삶이 있고 남아 있는 자는 그들을 대리해 부채를 지고 살아간다는 식의 사고에 일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정작 작가는 이 부분을 스리슬쩍, 두루뭉실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건 작가의 역량이 미치지 않은 부분이라기보다 일본 소설의 특징 같기도 한데, 간단히 말해서 <폐(메이와꾸)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가 도처에 흩뿌려진 문화적 편집증이라고 하겠다. 이 사람들은 생과 사의 문제에 있어서도 죽은 이를 떠올리며 "살아 있어서 죄송합니다." 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죽은 이에 대한 부채의식은 산 자의 공통 감각이지만, 이 때의 죄송함은,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써서 죄송한 게 아니라 더욱더 쓸모있는 당신이 오래 살아있어야 하는데 나같이 별거 아닌게 밥을 축내서 미안해, 라는 죄송함이라 그 뿌리가 악하다. (먼 선배인 다자이 오사무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生まれて、すみません)"이라고 하면서 세상이라도 규탄했지...)

결국 불필요한 신경증을 앓는 이들이 지극히 피상적인 인간 이해에서 비롯된 그럴싸한 대화를 하다가 말기 암에 걸린 어머니가 숨을 거둘 때쯤 딸의 뱃속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데, 신파 치고는 들어간 공력이 헛스윙이고, 장르라 관대해지기에는 재미가 없으니, 요즘 일본 소설에 기대하는 깊이란 고작 텐도 아라타 정도인가 싶어서 한숨이 더 깊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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