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悼む人 (單行本)
텐도 아라타 / 文藝春秋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텐도 아라타를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만 가두는 게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호들갑도 자제해야 할 작가라는 생각.
어린시절에 겪은 트라우마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영원한 미성년의 주인공들과, 자식들에 의해서 극복되지 못하는 마찬가지로 미성년인 부모들을 다룬 전작 <<영원의 아이>> 는 5권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어쨌거나 미스테리에 있으니, 웬만한 논문 주석보다도 더 긴 자료 조사에 들인 공력과 동급의 일본소설들 중에서는 꽤나 야심찬 심리묘사가 장점이라 하겠는데,
죽은 이들의 말없이 잊혀진 자리, 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에 압도되어버린 인간을 그리고자 했다는 <<애도하는 사람>> 은 실로 오랜만에 "일본 소설 같은거 읽지 마시고, 좋은 거 읽으세요." 라고 하고 싶어지는 작품이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발견한 사망 기사를 토대로 사람이 죽은 장소를 찾아다니며 나름의 간단한 애도 의식을 치르는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
어릴 적부터 주위의 죽음을 쉽게 잊어 넘길 수 없었던 그는, 사고든 자살이든 병사든,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노인이든 갓 태어난 아기든 가리지 않고 애도하는 순례길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다른 이로부터 감사를 받은" 공통점이 있고, 이것이야말로 '확실히 살아있었던'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이름과 자취들을 잊지 않는 방식으로 지금은 없는 이들을 기리고자 한다.
그의 순례 여정을 주 플롯으로 해서, 온화하고 단란한 그의 가족사에 드리운 생과 사의 대립(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와 임신한 여동생), 그리고 순례길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뒤틀린 애정의 귀결로 남편을 살해하게 된 여자 유키요가 갖고 있는 생과 사의 긴장이 얽혀드는 야망 가득한 작품이다.
없으면 세상이 끝날 것 같았던 죽은 이들을 어느샌가 잊고 덤덤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모습을 문득 낯설게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즈토 안에서 자신의 어떤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않겠다고 발버둥쳐보지만 사람은 죽음을 묻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고, 그 항상성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법. 이에 대한 해답 비슷한 것은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작가는 말하려는 듯 보인다. 일본 소설, 장르소설이라는 틀을 넘어 보편적인 주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제의 깊이에 도달하고자 작가가 들고 있는 '생과 사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는 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얄팍해서, 도대체 이런 그물로 어떻게 대왕고래를 낚을 수 있을까 싶은 것.
예를 들자면 이런 건데, 시즈토의 어머니는 자기보다 사교성도, 운동 실력도 뛰어났지만 어릴적 백혈병으로 죽게 된 오빠에 대해서 <내가 아니라 오빠가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오빠의 남은 생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았다>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오빠는 심지어 여동생에게 <너는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 네가 사는게 더 낫다> 라 하고 있으며, 시키지도 않은 고생을 하며 구도의 길에서 생의 가치와 죽음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주인공 시즈토(애도하는 사람) 조차도 아이들을 고쳐주기 위해 의사가 되었던 친한 친구가 과로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자 <나보다도 그 친구가 사는 것이 세상을 위해 더 도움이 될텐데> 하고 생각한다.
세상의 죽음은 대리될 수 없고 모든 삶은 특별한 것이며 목숨에 가치의 우열을 부여할 수 없다는 주제를 건드리기 위해서는 세상에 더 가치있는 삶이 있고 남아 있는 자는 그들을 대리해 부채를 지고 살아간다는 식의 사고에 일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정작 작가는 이 부분을 스리슬쩍, 두루뭉실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건 작가의 역량이 미치지 않은 부분이라기보다 일본 소설의 특징 같기도 한데, 간단히 말해서 <폐(메이와꾸)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가 도처에 흩뿌려진 문화적 편집증이라고 하겠다. 이 사람들은 생과 사의 문제에 있어서도 죽은 이를 떠올리며 "살아 있어서 죄송합니다." 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죽은 이에 대한 부채의식은 산 자의 공통 감각이지만, 이 때의 죄송함은,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써서 죄송한 게 아니라 더욱더 쓸모있는 당신이 오래 살아있어야 하는데 나같이 별거 아닌게 밥을 축내서 미안해, 라는 죄송함이라 그 뿌리가 악하다. (먼 선배인 다자이 오사무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生まれて、すみません)"이라고 하면서 세상이라도 규탄했지...)
결국 불필요한 신경증을 앓는 이들이 지극히 피상적인 인간 이해에서 비롯된 그럴싸한 대화를 하다가 말기 암에 걸린 어머니가 숨을 거둘 때쯤 딸의 뱃속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데, 신파 치고는 들어간 공력이 헛스윙이고, 장르라 관대해지기에는 재미가 없으니, 요즘 일본 소설에 기대하는 깊이란 고작 텐도 아라타 정도인가 싶어서 한숨이 더 깊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