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1
홍수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사랑합니다. 고객님.
오늘의 세일 상품은 사과입니다.
당도가 좋고 단단한 최상급의 사과를 좋은 가격으로 판매하고.......가격은 오천원.....'

이런...
이제는 하다하다 슈퍼 총각도 나를 사랑한단다.
전화안내언니가 다짜고짜 전화만 걸면 밤낮으로 사랑한다고해서 한동안 날 울렁거리게 하더니
이제는 사람이 늘 바글거리는 아랫동네 슈퍼 멀끔하게 생긴 총각도 저런다.
사과를 골라들다가 촌스럽게도 순간 뭘 잘못 먹은것처럼 멈짓 거렸다.
온 세상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한다고 외치지 않는사람은... 모두 유죄인것처럼 모두가 사랑타령이다.

사랑한다면 표현해야하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갖고싶어하는 선물도 사다 바쳐야하고
돈이 없으면 광장에 나가서 소리라도 질러야하고
못치는 피아노라도 아니면
초등학교때 배운 리코더라도 불면서 온 세상이 다 듣도록 고백해야 하는게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할까.
모든 것을 다 내어줬지만 그 흔하디 흔한 사랑을 입밖으로 낼 수 없던 서진의 마음은...
모든 것을 다 잃었던 저 아이의 마음은...

유원과 서진이는 실패에 감겨진 이어진 실의 한쪽 끝과 또 다른 끝처럼
속속들이 같지만  결코 나란히 설 수없는 인연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조이는 수많은 사건을 지나
먼 시간을 돌고 돌아 결국 마침내 서로를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었을 때에는
나 또한 가슴에서 돌 하나를 내려놓은듯 편안해졌다.

유원과 서진,

잘못이 있더라도 아픔이 있더라도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인 이들.
바라보고 싶고,
머물고 싶고,
스며들고 싶고,
그래서 온전히 하나이고 싶은
그들이 결국 같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바람은 다 읽고도 한참동안 마음속에 아릿한 여운이 남았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마지못해 책을 덮는데
공룡내복을 입고 잠들기전
열심히 책을 고르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 바디워시의 향이 배어있는 아이의 말랑한 몸을 끌어안고 말해줬다.

'사랑해, 베이비....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그러다 오후의 일이 떠올라 덧 붙였다.
'그런데 가끔 심술을 부리면 때론 아주 조금 진짜 밉기도해'
아이는 바로 묻는다.
'개미만큼?'
'그래, 개미만큼'
'...그리고 거인만큼 사랑해?
'그래, 거인만큼 사랑해.'

내게 사랑은 그런것 같다.
거인만큼 사랑하고 때론 개미만큼만 미운...그러면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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