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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1집 Infield Fly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노래 / 미러볼뮤직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처음에 이 독특한 밴드의 이름을 접했을때 가진 느낌은
그냥 요즘 많이 나오는 인디밴드의 이름이고 이름을 보아하니 대충 펑크나 모던락 스탈이겠구나 했다
이들의 1.5집이라는 EP 음반의 곡들을 들어보면서 많이 틀리지 않구나 했고
다만 약간 복고풍 느낌이 묻어나는구나... 세간의 음반평 그대로 드라마 주제가로 어울릴법한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네.. 왜 주목을 못 받았을까... 했다.
대학 초년생때 학사 경고를 받을만큼 학과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새로운 문화들을 흡수하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던 2학년 무렵... 그땐 그렇게도 왠지 '패배자 정서'라는 문화코드가 와 닿았다.
딱히 어렵게 살지도 않았고 인생의 별 난관도 없었으면서 학점따려고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은
주류로 내 마음대로 치부해버리고 나는 아웃사이더로서 그런 코드가 나한테 맞다는 유치한 생각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90년대 모든 젊은이들의 우상 커트 코베인이 있었다.
난해한 가사와 한없이 우울해지는 사운드, 그리고 그 자신의 비극적인 죽음.
90년대 락 신을 얼터너티브가 장악하도록 한 결정적 주인공이자 천재는 요절한다는 공식을
지킴으로서 사람들 가슴속에 더욱더 깊이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떠난 너바나의 리더.
그 당시 난 커트의, 정확하게는 너바나의 음악들을 들으며 양키들도 난해하다는 영어 가사를
내 맘대로 오역하며 왠지 모를 우울감을 즐기고 패배자 정서를 멋있게 보고 살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좀 더 어릴때 열광하던 강렬한 비트의 음악들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감성을 적시는, 혹은 재기발랄한 음악들을 찾아 들어가면서 그리고 세상에 찌들어가면서
유치함은 떨쳐버렸지만 어릴적의 풍부했던 감성또한 잃어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던
요즘이었다. 신해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밴드가
소개되고 나서 반향이 대단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진 않지만)
새 밴드들을 나름대로 발굴해서 듣기를 즐겨하던 나로서는 당연히 한번 들어보게 되었고
생각과는 너무 틀린 음악에 꽤 놀라게 되었다.
이 밴드의 1집은 모던 락이 아니라 요즘은 사장되어가는 포크락이었다.
비록 전자음이 많이 섞이긴 했지만 분명히 그 토대는 포크락이었고 밴드 멤버 또한
단 한명인 1인 밴드였다. 그것도 30대의 배나온 아저씨!
그는 음악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 허덕이며 30줄에 들어선 결혼도 못한 소위 말하는
'패배자'에 속한 어디서나 볼수 있는 한 남자였다.
그리고 만루홈런이란 밴드이름을 무색하게 만드는 앨범제목 "Infield Fly"
(Infield Fly 란 야구에서 주자가 1루를 채운 상황에서 내야 플라이가 떴을때 무조건 아웃을 선언하는
규칙을 말한다. 결국 관중과 동료를 허탈하게 만드는 소위 말하는 '삑사리'인 것이다)
자신을 어딘가 장애가 있는 패배자 인생으로 치부하는 섬뜩하지만 우울하지는 않은 가사들
그런 우울한 가사들을 이끌어가는 멜로디는 밝고 가볍다는 것이 단순한 밸런스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역설적인 의도였을까
이 밴드를 소개하는 신문기사 어디에도 잘 빠지지 않는 '패배자 정서' 라는 단어의 조합.
이걸 보면서 왠지 '피식' 하고 웃게되는 건 예전의 유치하면서 지금보단 조금 더 순수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일까. 오랜만에 그때같이 이유없이 자신을 멜랑꼴리하게 만드는 음악을
들으며 기분이 묘한것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앨범의 멜로디는 커트 코베인의 그것처럼
우울하지 않아 실제로 나 자신이 처지는 일도 없고 말이다.
포크락 스타일의 음악에 특별히 거부감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도 좋을 듯하다.
멜로디는 쉽고 가사전달도 좋으며 가사에 들어있는 위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한다.
이런 괜찮은, 그리고 대중에게 충분히 어필할 요소를 가진 뮤지션들이 그냥 사장되고
참 기분좋은 듣기좋은 음반들이 묻혀져 간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사람들에게 들을 기회만 준다면 체리필터나 윤도현 밴드만큼의 몫은 감당할 수 있는
능력들인데 말이다..
p.s 이 밴드의 노래를 공중파 티비는 물론이고 라디오에서도 듣긴 힘들듯하다
방송심의 위원회에서 이 밴드의 대표곡인 '절룩거리네'는 장애인을 비하한다는 이유로
(도대체 가사를 읽어보기나 한거냐!!), 다른 대표곡인 '스끼다시 내인생' 은 불분명한 단어를
썼다는 이유로(너네는 일식집도 안가냐!!) 방송금지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