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프로젝트는 8개월짜리 대형 프로젝트이다.
작년 6월부터 시작하여 올해 2월에야 끝나는 상당히 긴 축에 드는 프로젝트이다.
사실 일의 내용과 절대적인 양을 봤을때 8개월이 그리 모자란 기간은 아니었다.
허나 규모가 큰 회사들의 치명적 단점중의 하나인 구린 냄새 물씬 풍기는 문제점으로 인하여
일정은 계속 늦춰졌고 오픈일이 얼마 남지 않은 요 몇달 강행군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매일 야근은 기본이고 원칙적으로 주5일 근무임에도 토요일 출근은 당연지사이며 일요일 출근도
심심치 않게 하는 생활을 어느덧 4개월째 하고 있다.
이 상황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에 몸담고 있는 모든 팀원들이 마찬가지이다.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PM은 항상 미안해하면서도 어쩔수 없는 상황앞에 팀원들을 몰아붙일 수
밖에 없고 팀원들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먹는 사태는 너무나 싫기에 힘든 상황도 참아가며
다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중이다.
다들 건강상태가 눈에 띄게 안 좋아졌고 (나는 근데 왜 이렇게 야근만하면 살이찌냐 젠장)
얼굴색이 눈에 띄게 보기 좋지 않게 변해간다.
원래 널럴하게 일하자는 모토로 사는 내가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내가 맡은 파트의 일을
최대한 속도를 내어 이제 마무리만 문제없이 해내면 상황으로 겨우 만들었고 지난 주부터는
가끔 정시에 퇴근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제 일이 터졌다.
PM이 심각한 얼굴로 개발자 몇명을 소집하더니 양해를 구한다는 말을 먼저 꺼내는 것이다.
우리도 다 알고 있는 가장 뒤쳐진 파트가 있는데 그 파트에서 쩔쩔 매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지탱하던 여자분이 있었다. 그분이 지난 금요일부터 출근을 안하는 것이다.
요 몇주 계속 몸이 안 좋다고 얘기하던 분이었고 더군다나 그 분은 작년 말 임신을 한 것을
다 알기에 건강이 좀 악화돼서 쉬어야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던 나는
굳은 표정으로 PM이 '그분은 당분간 못나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역할을 다른 분들이
좀 나누어 지고 가야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대략의 사태를 짐작했다.
그분과 가까운 분들에게 넌지시 타진한 결과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그분은 유산을 하셨던 것이다.
사실 다들 잊고 있었지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확률 높은 사고였다.
그 분은 첫 임신이었고 따라서 임신 초기에 많이 힘들다고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 와중에 쉬지도 못하고 휴일까지 반납하며 일을 했고
그 분이 맡은 부분이 까다로운 기획자들에 의해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괴물이 되었던
것도 다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자신의 바쁨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마침내 일이 터진 것이다.
개인적으로 주변에서 유산이라는 걸 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기에 그 구체적인 충격은 잘 모르지만
그냥 짐작만으로도 이건 보통일이 아니란게 절실히 와 닿았다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그 분이 맡았던 부분중 많은 부분을 내가 떠안게 되었다.
내가 맡은 부분을 먼저 마무리단계까지 올려놓은 부지런함이 더욱 일을 늘려놓은 결과임에도
이 엄청난 사고 앞에 한마디 불평조차 할 수 가 없었다.
PM 또한 한마디 언급도 못하고 다만 나와 그리고 같이 짐을 더 떠안은 몇몇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고생해주길 부탁한다는 말밖에 못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나 자신으로선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긴 한데 그것보다는 그 여자분에 대한 측은지심과
그 여자분을 이렇게까지 만든 상황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원래 허무주의에 빠지기 쉬운 내 성격에 또한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라는 생각이
하루지난 오늘까지 사라지지가 않는다. 힘든 와중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지내시던 그 분의
미소가 떠오르고 그 분과 그분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너무나 클 것을 알기에 또 슬퍼진다.
거기에 또 내가 떠안은 이 짐덩어리에 대한 처리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져서 오늘 내 상태는
거의 최악을 달리고 있다. 더욱 급박해진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이렇게 알라딘에서
얼쩡거리면서 하루에 글을 두개나 쓰는 데뷔후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 ;
이제 내 앞에 닥친 불도 꺼야겠기에 마음 추스리고 다시 다람쥐 쳇바퀴를 굴려야겠다.
더불어 그 분의 몸과 마음의 빠른 회복을 기원해야겠다... 힘내세요 조대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