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적으로 어떤 운동이나 취미를 새로 시작할때

장비에 대해서 상당히 무관심한 편이다.

어차피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초보수준의 기량일테니까

장비에 대해서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전혀 모를것이라는 생각과

나는 원래 운동신경이 좋아서 장비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남보다 잘할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과

'훌륭한 목수는 연장탓을 하지 않는다'라는 평소 생활신념이 결합된 고집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사람들을 보면 나같은 사람은 잘 없어 보인다.

거의 모든 (특히 요즘들어) 사람들이 새로운 스포츠나 레저를 시작할때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잘 할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어떤 장비를 구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한다.

그들은 그 장비의 인터넷 쇼핑몰을 며칠이고 몇주일이고 서핑을 하면서 가격과 품질을 비교하고

기존 구입자들의 리뷰를 탐독한다.

그러고 나면 그들은 그 분야에서 장비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파워유저 수준이 된다.

실제 그들의 스킬은 아직 초보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평소 그런 사람들을 우습게 생각하던 나는 최근 오랫동안 손을 놓았던 탁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근무지가 KBS 강서88체육관 근처이다 보니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회사 동료들중

탁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동호회를 만들었는데 거기 참가하게 된 것이다.

탁구는 초보는 아니고 왠만큼 친다고(동네 탁구 수준에서 ^^;) 생각하기에 원래 라켓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왠만한 동네 탁구 플레이어는 하우스 라켓(탁구장에서 빌려주는 공용 라켓)으로 쳐도

나는 잘 칠 수 있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첫 모임에 나가고 발생했다.

분명히 나보다 실력이 못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이길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전부 5-10만원 정도를 들여서 탁구용품 전문 브랜드의 고급 라켓을 구입한 상태였던 것이다.

예전에는 같이 친 사람들이 같이 하우스 라켓을 쓰던가 자신의 라켓이 있더라도 중저가품이었기에

별 차이가 나질 않았는데 전문 브랜드의 고급라켓을 가지고 덤비니 이건 당해내기가 너무 힘들고

내가 치면서도 장비의 차이를 뼈져리게 느끼게 된 것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객관적으로 봐서 나보다 실력이 위인 사람에게 지면

그리 아쉬워하는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다시 도전하고 싶고 더욱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딱 봐서 나보다 아래로 보이는데 내가 졌다면 보통 쓰는 말로 상당히 "열받는다"

그게 장비의 차이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라면 더더욱 그 정도가 심하겠다

(유치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이런 것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재미중의 하나이다 ^^;)

 

결국 나는 그다음날 역시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보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말았다

솔직히 아직도 탁구 라켓에 10만원 가까운 거금을 들이는건 아깝다.

하지만 이젠 중고로라도 왠만큼 품질이 보장된 라켓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는 솟아나게 되었다.

그리고 순간순간 새 라켓으로 동호회 회원들을 이겨버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 -;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중해진다는게 이런게 아닐까 싶다

어릴때, 보다 더 젊을 때는 그 당시의 어떤 생각에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다.

"난 절대 이렇게는 안해" "난 절대 저 사람들처럼은 안 살아"

하지만 오래지않은 기간 살아오면서 저런 장담이란 것이 얼마나 부도확률이 높은 수표인지 알게된다.

아직도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장비부터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나 10만원을 훌쩍 넘는 농구화,

축구화를 신고와서 코트에서 뒤뚱거리는 사람들을 우습다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없지만

이제는 그들을 예전처럼 경멸하지 않으며 보다 높은 수준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에

자신의 여유를 이용해서 그 분야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다

 

난 고집이 세서 왠만하면 내 생각을 굽히지 않지만 스포츠를 통해서는 많이 배운다

(그래서 좋아하는 건 아니고 원래 태생적으로 스포츠에 환장한다)

아무래도 머리로, 말로, 글자로 습득하는 것보다는 직접 몸으로 부딪혀서 느끼는게

가장 깊게 몸속으로 들어오고 가장 오래도록 남는다는 일반적인 법칙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거라 본다.

 

이런 사소한 변화에 나의 심경을 다시 한번 리뷰해볼 수 있는 차분함이 생겼다니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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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1-1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구라켓이 그렇게 비쌉니까? 최근에 저는 27만원짜리 중고테니스 라켓을 10만원에 산 뒤부터, 펄펄 날고 있습니다. 탁구도 라켓이 그리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언제 저랑 탁구나 한판...하핫.

maverick 2005-01-1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구 좋죠 언제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마태우스님과 친다면 음주후 탁구도 재밌을거 같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