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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고 나니,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위로받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눈에 맺혀지는 눈물을 몇번이나 닦아냈지만, 눈에 맺혀지는 눈물을 멈출수 없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마치 피해자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슐로스의 여인숙 이층에 있는 향과 장미 증류수 냄새가 진동하는 방에서 1702년 뮌스에서 인쇄된 아비가엘 슈투렌스 형제의 "산에 자라는 식물군에 대한 책"을 품에 안고 쓰러져 있는 것 같았다.
아니다.
난 죄인이 된 듯 하였고, 가해자가 되어 버렸다.
슐로스 여인숙 홀에 나뭇단 속 버드나무 삭정이들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남자들 속에 서 있던 것 같았따.
내가 이 책을 읽고, 가해자 또는 피해자 그 무엇으로 느꼈는지는 중요치 않다.
나는 브로덱의 보고서를 읽었고, 무거운 죄책감과 끓어오르는 울분만이 마음속에 남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에라이그니스날 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덮으려는 연극무대 마지막 커튼이었고, 온 세상을 덮는 시커먼 달빛없는 밤이었다.
모든 것을 잊는 것 도망가는 것이 오로지 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둠속에서 인간의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덮으려는 어둠이 내리자 눈은 적응하여 본질을 더 정확하게 판단하게 하였다.
브로덱은 렉스 플라메 나비들이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남기 위해 프라테어거카이머에게 내어준 미끼였다.
사실 그는 정화의 밤 한 노인의 죽음에서 두려움을 느껴 자신의 고향이라 생각하는 렉스 플라메들 속에 도망쳐 숨어버렸다.
오히려 브로덱은 프렘더로 몰려 죽은 정화의 밤에 만난 노인처럼 프렘더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브로덱은 죽음에서 살아왔다.
다시 그가 고향이라고 끝까지 믿고 싶었던 그 마을로 돌아왔다.
죽음의 전쟁속에서 프렘더 브로덱은 에멜리아와 페도린에게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살아남음 생존을 위해 스스로 "똥개"가 되었다.
자아는 상실되었지만, 오로지 생존만이 그에게 남아있었고, 그는 살아남았다.
그렇게 살아 돌아온 마을에서도 그는 다시 자신의 모든 것을 다시 버려야 했고, 대서인이 되어야 했다.
똥개, 대서인 이둘에게는 그 어떠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수용소와 마을이라는 장소만이 바뀐 것이다.
생존 또는 죽음이라는 선택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사람을 죽여야 살아남을수 있고, 살기 위해 누군가의 개가 되어야 하는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다른 살육의 시작이었고, 프렘더의 색출이었고, 에라이그니로날 밤으로의 걸음이었다.
그래서, 에멜리아의 그 멍한 눈빛과 '아름답고 친절한 왕자님 너무 멀리 가버렸네'의 노래가 멈추지 않는 이유였다.
차일렌 에세니스 (영혼을 먹는 여자)는 죽은 것이 아니라 만난적도 없는 마을 사람들 속에 살아있었던 것이다.
브로덱은 그들의 요구대로 보고서를 썼으나, 다시 '너'라 불려질지도 모르는 그 줄에서 간수들의 눈빛을 피하며 서고 싶지 않았다.
상처를 받고 영혼을 잃은 채 푸셰트를 낳은 아내 에멜리아의 배에 다시 '진실'과 '자아'라는 것을 남겨 놓고 싶어했다.
책은 '내 이름은 브로덱이고 그일과 무관하다. 이말만큼은 꼭 하고 싶다. 모두들 알아야 한다'로 시작한다.
그러나, 책은 자신의 이름을 브로덱이라 밝힌 사람이 이름이 없는 상태로 살아야만 했던 시대의 기록이다.
그리고, 자신이 브로덱으로 자신의 의지로 세상속에서 존재하기까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해야 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브로덱은 매우 덤덤하게 자신의 불행을 진술하였고, 오어슈비어처럼 이 보고서에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사라지고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애절하게 절규하며 이야기한다.
'내 이름은 브로덱. 나는 그일과 무관하다.
브로덱 이게 내 이름이다.
브로덱
부디, 기억해 주시기를.
브로덱'
작가는 브로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작가는 브로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어느새 잊혀져 가는 홀로코스트, 전쟁, 범죄들 그리고, 거대한 파도와 폭풍우 속에서 비겁하고 비굴한 인간들의 추악함을 이 브로덱 보고서에 담고 있었다.
지나친 감상주의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마력적인 필력으로 냉철하게 잊지 말아야할 추악함을 바라보게 한다.
과거와 현재 다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시간이 아니라, 브로덱의 기억을 중심으로 그가 겪은 이름없는 시절의 잊지말아야 할 것들을 또렷하게 둘아낸다.
브로덱 보고서는 필립 클로델고의 내 생에 첫 만남이었다.
나는 분명하고 또렷히 기억할 것이다.
작가 필립 클로델과 브로덱의 보고서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