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엇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답게 2004-04-1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이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이별하려면 난 몇 번의 이별을 거쳐야만 하는가?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워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장석남


죽은 꽃나무를 뽑아낸 일뿐인데
그리고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컵 마시고는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잘못 꾼 꿈이 있었나?

인제 꽃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잔상들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손금을 펴보던 모습이었을 뿐인데

인제는 다시 안 올 길이었긴 하여도
그런 길이었긴 하여도

이런 날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하겠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답게 2004-04-18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에게 그런 날이 오겠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해할 날이 오겠지.
그 날은 언제일까.
난 지금 많이 아프다.
 

목련이 지고 있다.

개나리보다 진달래보다 빨리 꽃을 피워 봄이 왔음을 알리던 목련이 지고 있다.

올해는 꽃이 탐스럽지도 않았고, 커다란 등처럼 환하게 피지도 않았던 목련이 지고 있다.

잎도 없는 마른 나뭇가지에 꽃을 피워, 모랫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던 목련이 지고 있다.

목련이 지는 것을 봐야 하는 것은 힘이 든다.

작년까지는 목련이 지는 것을 보면서 늙은 여배우가 짧은 젊은날을 잊지 못해 화장하는 모습을 연상했었는데,

목련이 지는 것을 보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녹슨 철사처럼 죽어가고 있는 목련을 지켜봐야 하는 이 봄이 싫다.

어느 시인은 꽃이 진 다음에 열매를 맺는다고 했지만

목련이 지는 것을 봐야 하는 이 봄이 싫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주말에 텔레비젼에서 이 영화를 봤다.

극 중에서 은수와 상우는 계속해서 라면을 먹기에,

나도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을 먹으면서 난 은수가 되었겠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난 상우가 불쌍했다.

두번째, 세번째 봤을 때는 은수가 이해되더군요. 마치 내 모습 같아서...

이제 네번째 봤어요. 그리고 지금은 은수의 열정이 부럽다.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은데...

누군가를 만나고, 또 옛사랑을 찾아올 수 있는 은수의 열정이 부럽다

다섯번째 이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