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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곽재구


이른 새벽
강으로 나가는 내 발걸음에는
아직도 달콤한 잠의 향기가 묻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 중
눈빛 초롱하고 허리통 굵은 몇 올을 끌어다
눈에 생채기가 날 만큼 부벼댑니다
지난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낡은 나룻배는 강둑에 매인 채 출렁이고
작은 물새 두 마리가 해 뜨는 쪽을 향하여
힘차게 날아갑니다
사랑하는 이여
설령 당신이 이 나루터를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내 기다림은 끝나지 않습니다
설레이는 물살처럼 내 마음
설레이고 또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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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2004-06-0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마음은 언제까지 설레일까?
그만 설레면 좋으련만...

톡희 2008-11-13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 선생님이 되려고 하세요?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교육에 회의를 느끼는 일이 생기더라고요.
'교육'이란 건 이미 물 건너 갔구나...
대학 때 품었던 이상같은 건 없더랍니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엇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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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2004-04-1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이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이별하려면 난 몇 번의 이별을 거쳐야만 하는가?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워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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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장석남


죽은 꽃나무를 뽑아낸 일뿐인데
그리고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컵 마시고는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잘못 꾼 꿈이 있었나?

인제 꽃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잔상들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손금을 펴보던 모습이었을 뿐인데

인제는 다시 안 올 길이었긴 하여도
그런 길이었긴 하여도

이런 날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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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2004-04-18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에게 그런 날이 오겠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해할 날이 오겠지.
그 날은 언제일까.
난 지금 많이 아프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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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2004-04-10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지금도 세상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