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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
이영문 지음 / 양문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력서 칸을 촘촘히 채우는 화려한 학력보다는 자연과 인생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들, 진짜 실력자들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영문 아저씨도 그 중 한사람일 거다. 왜냐하면 남들과는 다르게 땅 안갈고, 비료 안주고, 농약 안뿌리는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책 내용이 너무나 낯설었다. 지렁이가 땅을 갈고 거미와 무당벌레가 해충을 없애주는 논에서 과연 벼들이 잘 자랄 수 있는지 계속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아저씨는 태평농법을 연구한지 28년이 되었고 지금 경상도에서 3만6천여평의 농사를 태평농법으로 혼자 짓고 있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아저씨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볼까?
'아니 이럴 수가!, 어머머!,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이 책을 읽으며 나온 감탄사들이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책이다. 이웃집아저씨가 들려주는 듯한 소탈한 문체지만 글안에서 천천히 뿜어져 나오는 강한 내공에 압도되고 말았다. 빠른 속도로 읽었다간 많은 것을 놓칠 거같아 조금씩 꼭꼭 씹어가며 읽었다.
이 책에는 아저씨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생물학, 생태학, 화학, 기상학, 기계학, 교육학, 경제학, 환경학, 미래학, 처세, 역사가 나온다. 이 여러 분야들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서로 어우러져 이해하기 쉽다. 아마도 이 책의 참고문헌이 유명한 학자의 이론과 책이 아닌 철저하게 아저씨가 경험한 자연과 옛사람들의 지혜이기 때문일 거다.
이 책에는 자연이야기, 흙이야기, 농사이야기가 나온다. '자연이야기'는 조카들이 조금 더 크면 소리내어 읽어주려고 한다. 특히 자연 농사꾼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청개구리에 대해 꼭 알려주고 싶다. 아저씨가 발견한, 생물학자도 모르는 청개구리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치 숨겨둔 보물을 찾은 듯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항상 남향집을 선호하지 않았고, 지역과 자연조건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집을 짓는 융통성과 지혜가 있었다고 한다. 자연도 똑같은 것을 싫어하는데, 어려서부터 무조건 기차소리를 '칙칙폭폭'으로 시냇물은 '졸졸졸' 흐른다고 가르치는 교육 때문에 어른이 되어도 누가 좋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간다고 하는 해석은 정말 공감이 간다.
아저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흙의 건강함'이다. 흙이 건강하면 씨만 뿌려주어도 자연 농사꾼들이 알아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그냥 되는게 아니라 사람 농사꾼은 자연 농사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하고, 환경을 만들어주고 지켜주어야 한다.
요즘 우리 농민들이 너무나 힘든 이유는 한국의 토질과 맞지않은 과학농법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과학농법은 40~50년전에 농대를 졸업한 뒤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보급했고, 일본에서 사용하는 기계와 비료, 농약이 차례로 들어왔는데, 더욱 슬픈 것은 씨앗까지 수입하면서 우리 토종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충격적이어서 믿고 싶지않은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한탄이나 비아냥거림으로, 무조건 옛날로 가자고 주장하지 않고 대안책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기계의 달인인 아저씨는 우리 땅에 맞는 여러 기계를 만들었고 특허출원 중이라고 한다. 또 옛사람들의 지혜를 기억하여 잃어버린 종자를 다시 만들어내고 있고, 변하는 기후에 알맞은 작물인 커피도 실험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아저씨는 21C의 진짜 농사꾼은 소비자이고,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한다면 농민은 자연스럽게 바뀌고 우리 먹거리가 건강해져 수출도 늘어날 거라고 말한다. 지금 조금씩 전개되고 있는 여러 움직임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조금씩 꼭꼭 씹으며 읽어온 이 책을 덮으며 잠시 눈을 감아본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한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 아무래도 몇번 더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