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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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260809 저자: 미시마 유키오.


국외 여행은 귀찮아졌다.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타 본 게 2018년 초 베트남에 다녀올 때였다. 전에 걸린 혈전증은 이코노믹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장거리 비행 승객이 노출되는 위험이라고 알게 되어서 더 비행기가 꺼려진다.
큰어린이와 곁의 사람은 듀오링고로 일본어를 열심히 배운다. 둘다 일본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 2016년 작은어린이 없던 시절 우리 셋은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그랬으니 일본 체험은 끝 아닌가, 싶은데 두 사람은 일본에 한 번 더 다녀왔으면 했다. 작은어린이는 비행기를 한 번도 못 타 봐서 다른 나라를 가보고 싶어한다. 귀찮다, 귀찮다, 하면서도 한 주 전에 내년 2월 말에 맞춰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숙소를 예약한 것도 결국 나였다.

오사카에 머물며 교토와 나라를 방문하고, 유니버셜 스튜디오에도 가는 게 대략 짜인 여정이다. 귀찮다던 내가 리얼 교토, 리얼 오사카, 이런 여행 가이드북을 전자책으로 빌려 제법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여행은 시작하기 전부터 사람을 움직이고 이것저것 하게 만든다.

교토에 킨카쿠지와 긴카쿠지가 있다고 했다. 그게 그거 아냐? 했는데 금각사, 은각사, 서로 다르고 위치도 각기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금각사에 가게 되겠지? 그러다가 펼친 소설이 금각사였다.

취재와 상상을 바탕으로 했겠지, 했는데 바탕이 되는 사건을 상세히 적어둔 책이 이미 있었다고 해서 조금 배신감이 들었다. 영리하게 머리 굴려 쓴 책이로구나… 예전에 엄마를 살해한 9수생 이야기도 다 읽고 나서 마지막 소개말에 실화라고 해서 뭐야, 했던 기억이 난다. 씨앗 없는 이야기가 어디있겠어. 현실은 현실이고 이야기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때로는 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마음과 행동과 동기를 상상해 보고 결국 어떤 결과 내지 결말을 향해 가는 과정을 읽는 이가 좇게 만든다. 스님 연습생(?)이던 미조구치가 금각에 사로잡혔다가 금각에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작가는 화자의 마음 속에도 들어갔다가,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 것도 쫓아갔다가, 주변 사람들의 영향과 그에 대한 화자의 반응도 살피다가, 미리 밑밥을 깔고 어떤 일의 우연성에 대해, 그렇지만 실제 저질러지는 큰일들은 우발적이지는 않다는 것(그니까 사전 준비도 치밀하고 이미 굳은 마음을 먹은 경우가 많다)을 주의깊게 그려놓았다.

덕분에 일본에 불교 문화의 흔적(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걸 알았고, 교토에 가서 오래된 느낌의 건축물을 볼 때 저게 무슨 의미야 오래됐을 뿐… 하는 마음은 덜게 되었다.

미조구치 나이 언저리에 읽었다면 그때마다 (십대든 이십대든) 다른 감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나이의 나는 채팅방에서 수다 떨고 온라인 대항해시대 하는 걸 책 대신 선택했기 때문에 그 감상은 다른 세계에만 남아 있다. 이제 왠만한 등장인물을 보면 다 나보다 어려… 그래서 더 거리를 두고 읽을 수 있는 건 좋은 점일 수도 있고, 어린 마음의 불안을 많이 잊어버려서 몰입과 공감을 하기엔 너무 무미한 인간이 된 건 좀 안타깝기도 하다.

영화를 봐도 책을 봐도 자꾸 분석하려고만 든다. 그냥 하하호호 웃기다 훅을 날릴 땐 엉엉 슬프다 클리셰를 보면 익숙함에 편안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정도의 감식안이라면 조금 더 행복했을까? 그렇다고 이 소설을 막 따지고 분석하고 본 건 아니었다. 그냥 읽는 도중 나오는 인물에 대해 어떤 감정이나 평가 같은 게 조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다음이 어떻게 되나 보자, 할 뿐.

호오의 마음이 없는 문학 읽기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덤덤함에 대해 여러 원인-수험 공부로 과부하가 왔다, 노화가 왔다, 향정신성 약물 탓일지도 모른다, 그냥 원래 이런 놈이다-을 떠올려 본다. 원래 그런 건 없을 것이고, 지금의 난 하여간에 그렇구나, 학교에 불 질러 버려! 하고 장난삼아 어디선가 말하거나 생각했던 것 같은데, 판사님 방금 앞 구절은 제 토끼 인형이 쓴 것입니다, 확실히 돌아버린, 잃을 게 없는 사람의 마음을 난 아직까지는 다행하게도 겪지 못했구나, 불행히도 누군가는 그런 걸 겪었구나, 한다. 아니,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이렇게 쓰는게 맞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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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신도 모르는 곳에 이미 미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만과 초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가 명백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미로부터 소외된 것이 된다. (25, 아름다움은 자기 머리 속에 있는 걸 화자는 몰랐다.)

-나는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혹은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동도 일지 않았다. 그것은 낡고 거무튀튀하며 초라한 3층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꼭대기의 봉황도, 까마귀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름답기는커녕 불안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미라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29, 사람은 상상력이 있어서 실망하는 거지.)

-교토 시 전체가 불에 휩싸이는 것이, 나의 은근한 꿈이 되었다. 이 도시는 너무도 낡은 것들을 원래의 모습대로 지키고 있었고, 수많은 신사나 불당들은 그 속에서 생겨났던 작렬하는 재의 기억을 잊고 있었다. (51, 오래된 것들 보러 가 봐야지)

-나는 다만 재화를, 큰 파국을, 인간적인 규모를 초월한 비극을, 인간도 물질도, 추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깡그리 동일한 조건하에서 말살시켜 버릴 거대한 하늘의 압착기와도 같은 것을 꿈꾸고 있었다. 때로는 초봄 하늘의 심상치 않은 광채가, 지상을 덮어 버릴 정도로 커다란 도끼날의 시퍼런 빛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단지 그 낙하를 기다렸다. 생각할 틈도 주지 않을 정도로 신속한 낙하를. (52, 히로시마 다음으로 고려된 폭격 지역이 교토였다는 걸 안다면 이런 소리 못하지...에반게리온의 나라)

-미라는 것만을 골똘히 생각하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암흑적인 사상에 자기도 모르게 직면하게 된다. 인간은 아마도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52, 인간 말고 예술가로 한정하죠. 대부분이 남들이 아름답다는 대로 따라하며 살다 죽어요.)

-흙투성이가 되어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신발을, 무한한 관용에 의하여 머리 위에 올려놓음으로 해서 보살도를 실천한 것이다. (71, 칠조어론에서 칠조도 같은 모습으로 열반했다.)

-인간처럼 필멸하는 것들은 결코 근절되지 않는다. 반면에 금각처럼 불멸의 것은 소멸시킬 수 있다. 어째서 사람들은 그러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내 독창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메이지 30년대에 국보로 지정된 금각을 내가 불태운다면, 그것은 순수한 파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며, 인간이 만든 미의 전체 무게를 확실히 줄이는 일이 된다. (205, 비대한 자아는 이리저리 튄다. 숭례문 불태운 사람이 저렇게 난 천재야, 미의 감축, 이랬을까? 술김에 불지르는 것보다, 명료한 정신이 저런 방향이면 참 곤란하다. 사랑이 없어서 그래.)

-금각이 언젠가는 불타리라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견디기 쉽게 되었다. 죽음을 예감한 사람처럼, 절간 사람들에 대한 내 감정은 좋아지고, 대응하는 태도도 밝아지고, 무슨 일이건 화해하려고 들었다. (211, 그렇다면...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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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강아지 - 몰티즈 앤 리트리버의 행복한 일상 ㅣ 사랑스러운 강아지 1
몰티즈 지음, 서미영 옮김 / 대원앤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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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8 저자:몰티즈.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으로 적립금이 생겼다. 장바구니에는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박상영)’와 ‘사랑스러운강아지’가 담겨 있었다. 몰티즈와 리트리버가 귀염떠는 짧은 영상을 인스타그램에서 가끔 보곤 했다. 최근 넋놓고 보는 아이돌은 광고에 잔뜩 등장하는 필릭스 용복이 있고, 뇌 빼고 귀엽다 하게 되는 캐릭터는 이 두 강아지들인 것 같다. 그래서 상 탄 김에 질렀다.
진짜 개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개를 키운다는 건 너무 사람 중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뭔가 기고만장해서 나를 보고 짖거나 물려들거나 앞발을 들어 아랫다리를 팡 찍는 것도 싫고, 반대로 눈치가 너무 빨라서 아 저 사람 개 싫어해...하면서 흘끔 보다 눈 피하고 다시 흘끔 보는 것도 싫다. 싫어해서 미안해 개야. 어려서 키운 개들이 늘 사람보다 먼저 사라져서 그게 슬퍼서 일부러 싫어하는 지도 모르겠어.
캐릭터로 아예 사람인 듯 아니면 개인 척 사람인 귀여운 것들은 그래서 그냥 가볍게 소비해도 크게 죄책감은 안 든다. (아니 귀여운 걸 보고 왜 죄책감 걱정까지) 이 책의 얘들은 대부분 둘이서 서로 도닥도닥해 주니까 사람이 개를, 이 아니고 개끼리 개를, 이라는 비현실적이지만 내 세계관 안에서는 허용되는 장면 같다. 이마의 언잖은 11자 주름도, 꼬질꼬질해지거나 비 맞아 푹 젖어도, 울어도 웃어도 귀여운 강아지들이다.
그냥 귀엽다! 헤헤 하면 될 걸 이렇게 굳이 T하고 분석하는 인간인 나마저 홀린 멍멍이들, 한 번에 쭉 보고 끝 아니고 그냥 기분 꿀꿀할 때 필릭스 찾아 피드를 훑듯 책 페이지 몇 장 넘기면 좀 잡생각이 줄어들 것 같다. 귀여운 이미지로 기분 나아짐을 만든다는 건 그거대로(지은이나 소비하는 이나)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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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일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4
장 주네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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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3 저자: 장 주네.


제목만 보고 기대를 너무 했나 보다.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에 도둑을 집어 넣은 이 남자는 무작위로 과거를 회상하며 두서없이 거쳐온 장소들과 남자들에 대한 썰을 풀었다. 그 모든 걸 아름다움으로 치장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딱히 재미있지도 않았고, 추한데 자꾸 보게 되는 그런 종류도 아니었고, 미감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이전에 읽은 ‘길 위에서’와 ‘폭력적인 삶’을 섞어 놓은 것 같았다. 넓은 지역을 떠돌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는 남자는 앞의 책을, 사랑을 갈망하는 가난한 남자는 뒤의 책을 닮아 있었다. 세 가지 책의 공통점은 아저씨들이 썼고 민음사 세계명작 시리즈이며 두꺼운데다 매우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화자는 남자에 미친 새끼이다. (그가 생각하는) 강력한 남성성을 지닌 사람에게-그가 범죄자이든 경찰이든- 금세 사랑에 빠진다. 다만 그 넓은 사랑은 남성에 한정이라서, 그의 이야기에 여성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자기가 사랑한 남자가 착취하며 사는 성매매 여성 정도가 가끔 등장한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인류애 같으면서도 반쪽 짜리이다.

도둑질, 강도짓, 성매수자 쫓아가 협박해서 돈 털기, 살인, 사회에서 말하는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도 그런 삶의 형태를 성스러운 것으로 표현하고, 심지어 신성모독으로 보일 만한 생각도 하는 인물들과 화자를 보며 어떤 감흥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덤덤했다. 이거 이미 이백 몇 년 전에 사드가 하던 짓이잖아. 걔는 귀족이었다만 감옥 가고, 성적 스캔들 일으키고, 나중에 사회운동(혁명)도 하고, 뭐 그런 비슷한 점들이 보였다. 나는 너무 매운 걸 많이 먹어서 이제 웬만한 건 암시롱 안 혀.

어려서 이십 년 가까이 살던 셋집에는 도둑이 여러 번 들었다. 부모가 금은방 하다보니 왠만한 건 가게 금고에 있었지만, 외국에서 노동하던 삼촌들이 사다 준 향수병들, 코니카 카메라, 수집한 외국 잔돈, 나와 동생이 모으던 저금통 같은 게 사라졌다. 뭔가 없어진 것도 안타깝지만 집이 그야말로 이것저것 빼내던져 난장판이 된 모습이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다. 신발을 신고 들어와서 밥상에 쭈그리고 앉아 발자국과 청바지의 엉덩이 자국을 고스란히 남긴 도둑, 현관 유리를 부수고 문을 따고 들어온 도둑, 지하실과 연결된 뒷문을 열고 들어온 도둑... 누군가의 침범은 내가 사는 곳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다. 물론 집안에도 이미 위험요소(=아빠)가 있긴 했지만…
부모의 가게에도 여럿이 와서 손님인 척 정신을 빼놓고 그 사이 진열장을 열어 물건을 빼가거나, 앉아서 잠시 밥 먹는 중에 소리없이 들어와 귀걸이 진열대를 통째로 들고 달아난 도둑들이 있었다. 나와 내 동생의 동갑내기이던 옆집 자매도 자잘한 물건이나 돈을 우리집에서 꺼내가고, 자매 중 동생은 내 동생의 열쇠를 훔쳐 빈집을 열고 들어오다 다행히 엄마가 집안에 있었어서 잡았던 적도 있다. 도둑 이야기하면 다들 이렇게 뭔가 털려 본 경험이 있을까… 아니면 내가 열악한 동네 살아서, 아니면 운이 없어서 그렇게 도둑을 많이 겪은 건가 잘 모르겠다.

이 책 제목은 ‘도둑 일기’이지만 사실 ‘도둑의 사랑(들)’에 더 가까웠다. 물건 훔치고 교도소에서 지내는게 일상인 화자는 정작 좋아하는 상대로부터 마음은 제대로 못 훔쳤다. 오히려 홀따닥 사랑에 빠져 상대도 정말 날 좋아할까, 얘를 배신할까 말까, 애태우며 내내 주체성이나 주의력을 도둑맞은 모습이었다. 뭐 하고 싶은 대로 하다 그 이야기들을 도둑이 싸 놓은 똥처럼 글로 남겨놓고 갔으니, 그리고 변태 문인들이 칭송도 해 이름도 남겨줬으니 스스로는 살만한 삶이었을 것 같다. 다만 고통이나 절망의 정서는 의도적으로 숨긴 것인지, 정말 그런 감정을 강렬하게 느끼지 않은 것인지 글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이미 문인이 되고서 회고하듯 과거 이야기와 지나간 사람들에 대해 쓰다보니 그렇게 설탕가루 뿌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성애 사랑들을 이렇게 나열해 놓았다면 정신 사납고 진부하고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고 할 것 같아서 갑자기 소수자성에 샘이 나기도 하는 이상한 정신이 되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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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나 무거운 슬픔을 몸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생을 계속 그렇게 떠돌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방랑은 단순히 나의 생애를 장식하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104, 책 내내 장은 스페인,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 곳곳을 떠돈다.)

-독자들은 분명 이 책에 실망할 것이다. (145, 진작 알았으면 됐어.)

-그의 부드러움은 저절로 얽히고 수축되며, 또 여러 겹으로 포개져 하나의 무서운 용수철로 변할 것이다.
“형이 나를 버리면 난 미칠 거야.”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야말로 깡패 중에 가장 난폭한 깡패가 될 거야.” (209, 누구나 사랑을 잃으면 가장 난폭한 깡패가 되지.)

-그래서 나는 그가 나의 남창 경험을 알고, 그것을 인정해 주기를 요구했다. 그가 가장 비열한 나의 절도 행위들을 상세하게 알고, 그 때문에 그 자신이 심적 고통을 겪고, 또 그런 행위들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의 출신, 나의 비역질, 나의 비겁한 행동, 허옇고 엉큼한 얼굴의 늙은 도둑년을 어머니로 갖기 원하는 나의 괴상한 상상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구걸하러 다닐 때의 태도, 거지들이나 일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말하자면 거지들에게 일상적으로 통하는 , 거짓으로 변조한 탁한 음성, 남색가를 유혹하기 위해 꾸며 낸 교묘한 수단들, 히스테릭한 남창으로서의 거동, 미모의 젊은이들을 상대할 때의 부끄러움, 그들 중 한 젊은이가 대담하게 나의 사랑을 거역하던 장면, 어떤 깡패가 내게 은총을 베풀던 장면, 프랑스 영사관 직원이 내 모습을 보고 코를 막던 장면, 유럽 각지를 떠돌면서 누더기를 걸치고 허기와 모욕과 피로와 추악한 사랑 놀이로 계속 되던 끝없는 여행….... 이 모든 것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239-240, 뤼시엥이 알길 바라는 것이 동시에 독자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 같다. 여태 읽은 이 책 내용은 이 문단 하나로 요약 가능하다. 누더기와 비참함에 미사여구를 더덕더덕 붙였다 정도)

-배반과 절도와 동성애가 이 책의 근본 주제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관련이 있다. 그 관련성이 언제나 명백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배반과 절도와 동성애에 대한 취향 사이에는 어떤 밀접하고 상호적인 교류가 있음을 인정한다. (245, 본인 한정 아닐까...혐오 멈춰)

-나 역시 모든 종류의 방탕한 삶을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절망한 자의 자유로움과 단순한 멋을 가지고 있다. 나의 용기는 모든 인습적인 삶의 존재 이유를 저버리고 새로운 삶의 목적을 발견하는 데 있다. 그 발견은 서서히 이루어졌다. (250-251, 따르고 싶진 않은 방향이지만 자기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멋져…)

-그는 도덕에 관한 이야기를 건넸다. 모든 행위를 미적 관점으로만 보고 있던 나로서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덕주의자들은 나의 행동을 악의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들의 선의는 나의 악의와 충돌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어떤 행동들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그들이 증명해 보여 줘도, 나는 단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노래를 통해 그 행동들이 아름다운 것인지 혹은 우아한 것인지 판단할 것이다. 오직 나만이 그것을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나를 정해진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없다. (277-278, 삶을 극단의 예술로 살면 이렇게 될 수도…)

-나는 이 세계와 대립하고 있다. 이 세계는 나를 구속하고 재단하면서 상처를 주고 날카로운 각을 내세운다. 그것은 내가 오려 낸 형태보다 더 날카롭고 더 잔혹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아름답고 더 찬란한 존재가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행위가 완성될 때까지 그것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그것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든 그 끝은 아름다워야 한다. 어떤 행동이 추잡하게 보이는 것은 그것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310-311, 완성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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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물질 -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발견하다
수지 시히 지음, 노승영 옮김 / 까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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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1 저자: 수지 시히.

겨울 경주 여행 때, KTX 신경주역에서 경주 시내로 들어서는 버스 바깥 풍경에 ‘양성자 가속기’란 글자가 새겨진 건물이 보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방폐장 설치에 대한 지원 차원에서 양성자 가속기 연구소를 그곳에 설치했다고 했다. 원자의 구성 물질 중에 양성자가 있다 정도만 알았지, 그걸 가속해서 뭐 어디다 쓰는지는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크지 않았다.

같은 번역가의 수학에 관한 책을 읽다 포기하고, 새로 펼친 과학책, ‘세상 모든 것의 물질’이란 제목만 봤을 때는 화학 관련 책일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물리학, 그것도 입자물리학이라고… 차례에서 뭔 트론트론 하는 가속기들과, 광양자니 힉스 보손이니 하는 이름들이 등장했고, 난 연속으로 이과빔 맞은 문과멍충이가 되나 싶어 조금 심란했다.

걱정한 것에 비해 이 책은 읽기가 아주 까다롭진 않았고, 그동안 봐 온 과학사 책들처럼 더 작고 더 파악하기 힘든 입자를 찾아 분투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었다. 읽고 나니 화학, 물리학 이런 것 배우는 학생들이나 거기 관심있는 아무나 볼 만한 좋은 내용의 책이었다. 다만 도무지 유혹적이지 않은 표지 디자인과 서체는 조금 아쉬웠는데, 친구들과 ‘까치가 까치한다’표현할 정도로 책의 매력도를 올려주지 못하는 겉모양새였다.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를 보고 소설 아니고 과학책이라고 착각하고 펼쳐 본 사람이 (만약) 있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엑스선에서 시작해서, 빛은 입자야, 원자는 더 쪼갤 수 있어, 쪼갠 걸 더 쪼갤 수 있어, 전압 왕창 올려서 가속기를 만들게 돈 줘, 그럼 뭐가 있나 계속 깨볼게, 이런 걸 찾아내기 위해 긴 시간, 때로는 일생을 바친 과학자들이 참 많이 등장했다. 위인전 같은 데서는 유명 과학자 이름만 툭, 한 명 던져주니 그 위업을 마치 한 사람이 달성한 것 같지만, 이 책은 입자에 관한 많은 발견이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시간과 고생과 삽질과 돈과 지능이 합쳐져 이룬 일인 걸 강조한다. 책의 말미에도 모두가 협력하면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낙관을 담은 저자의 연설을 요약해 담아 놓았다.

그렇지. 혼자 되는 일은 없다. 저 높은 건물들도, 내가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는 모바일기기와 인공지능들도, 여러가지 과학사적 발견을 알려준 이 책도 무척 많은 사람들이 이뤄서 내게 닿은 것들이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뭐든 혼자 해결하고 싶고 최소한으로만 사람을 만나고 싶다. 우린 이걸 우울증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알고 싶고 찾고 싶은 집념에 의기투합해 실제로 원하는 것을 얻은 사람들은 이 책에 적혀 있지만, 거기 가는 과정에서 실패하고 그렇지만 그 실패로도 발견의 밑바탕에 도움을 줬을 책에 안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자꾸 실패만 해도, 그게 다 무용하다고 징징대지는 말아야겠다. 물방울 모여 바다를 이루고, 모래 흙 돌 모여 큰 산을 이루듯 나도 인간이란 바다와 산을 이루는 습기이고 먼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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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컨에는 이진수 신호를 비가시광선(적외선)형태로 보내는 LED(발광 다이오드)가 들어 있다. 우리가 단추를 누르면 광자가 리모컨에서 튀어나와 에어컨에 장착된 검출용 광 다이오드를 때리며-밀리컨의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이 광자는 운동 에너지를 부여하여 전자를 풀어준다. 광 다이오드는 반도체라는 물질이 두 개의 층으로 접합된 것이다. 이 접합부는 전기가 한쪽 방향으로 더 수월하게 흐르도록 함으로써 광 다이오드에 빛이 쬐이면 전기가 흐르도록 한다. 에어컨은 이진수 패턴을 해석하여 우리의 명령을 따름으로써 받아들인 전기신호에 반응한다.(78-79, 며칠 전 작은 어린이가 어떻게 리모콘이 작동되는지 물었는데 이걸로 설명 될까…)

-1932년 입자 가속기가 원자를 쪼개는 데에 성공한 그해에 자연에서 발견되는 기본 입자의 목록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전자와 그 반물질인 양전자, 그리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발견되었다. 이 입자들은 모두 나눌 수 없다고 생각되었으나,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양성자와 중성자에도 내부 구조가 있음이 밝혀진다. 빛의 입자인 광자가 도입되었고, 불과 4년 뒤에는 전자와 양전자의 무거운 사촌인 양성 뮤온과 음성 뮤온이 발견되었다. (153, 지난 이야기를 간단히 한 번 정리해 주심)

-중성미자는 호기심에 이끌린 연구가 현실에 응용된 사례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고전적 사례이다. 전자기력을 통해서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날쌘돌이 전자나 강력을 통해서 원자핵과 상호작용하는 중성자와 달리 전하가 없고 질량도 거의 없는. 중성미자는 감지될락 말락 하는 연기같은 입자로, 거의 아무것과도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실험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발견이 어떤 쓰임새를 가지게 될 지가 늘 명백한 것은 아니다. (251, 거대한 규모의 검출기 실험으로 겨우 찾은 중성미자가 아직은 쓸모를 못 찾았음을 당당히 인정… 나중에 새로운 닉네임 쓰게 되면 중성미자라고 해야지.)

-입자물리학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기는 했지만 입실론은 밑바닥에서 단순성이 드러나고 있음을 확증했다. 그것은 자연에 유쾌한 대칭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이론이었다. 존재하는 것은 6개의 렙톤(전자, 뮤온, 타우, 그리고 이들의 중성미자)과 6개의 쿼크(위, 아래, 기묘, 맵시, 바닥, 꼭대기)였다. (290, 이 부분을 그림 하나로 그려둔 게 생각나 어린이 책 ‘처음 읽는 양자물리학’을 찾아보니 입자들에 대한 표기는 조금 다르지만 하여간에 있었다. 생긴 건 어린이 그림책이지만 제목부터 어린이 책이 아닌 걸로…나중에 이것도 읽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도박보다는 공짜 음료를 들고 테이블 주위에 모여 종이와 펜으로 스케치나 계산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쪽을 좋아했다. 그들은 승리가 보장된 유일한 도박 수를 (사전 모의 없이) 집단적으로 선택했다. 그것은 도박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호텔은 그 주에 최악의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학술대회가 호텔에 얼마나 큰 재앙이었던지 대회가 끝날 무렵 라스베이거스 시는 물리학회에 다시는 오지 말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 이야기가 진짜라는 것은 내가 보증할 수 있다. (304, 잭팟 도파민을 이기는 물리학 도파민…)

-표준모형이 믿기 힘든 성공을 거두기는 했어도 우리의 방정식은 중력을 나머지 모든 힘과 조화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우주가 하나인지, 우리가 이른바 “다중우주”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고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왜 반물질이 아니라 물질에 둘러싸여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우주에 스며 있는 암흑물질의 성질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338, 뭘 아는지도 아직 잘 모르지만,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X선 촬영은 말할 것도 없고 방사성 연대 측정, 무선 리모컨, 전자 현미경, 뮤오그래피, 가속질량 분석법, 반도체 제조, PET촬영, 물질 구조 분석, 백신 개발, 입자 요법, 핵개발 감시, 방사선 요법, MRI촬영, 그리고 뜻밖에도 월드와이드웹까지 수많은 분야가 입자물리학과 가속기물리학으로부터 탄생하거나 막대한 도움을 받았다. (384, 역자 후기에서 이 책 속 발견이 기여한 사례들을 정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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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8-02 0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까치가 까치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6-08-02 13:04   좋아요 1 | URL
좋은 책이 가지가지 많은 곳이죠ㅎㅎ표지만 까치즘 벗어나야... 많이 읽히면 좋겠는 책이에요.
 

-20260726 저자:박상륭.


‘산해기’를 읽다 말고 전집의 앞부분을 펼쳤다. 마침 내가 좋아하고 또 슬퍼하는 ‘죽음의 한 연구‘의 큰 사건, 곡진한 여성 수도부 한 명이 몹쓸 촛불중 때문에 죽고, 그 죽음을 오래도록 애도하는 육조의 모습을 한동안 좇아 읽었다. 그러고나서 다시 산해기를 읽으니 그동안 읽은 장편 소설들의 씨앗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박상륭의 세계관은 제법 일관성 있고 또 끝없이 변주되고 있었다.
그래서 읽던 중간에 같이 펴놓고 보라고 일부러 따로 떼어 놓은 주석책을 아주 오랜만에 폈다. 편집자의 말과 연보를 보았다. 아마 박상륭 전집 사고 금세 봤을 건데 또 처음 읽는 것 같았다. 산해기가 언제쯤 나온 책인가, 궁금했는데 정작 그건 안 들여다봤다.
한 책을 보는 중이면 거기에 충실하자, 주의라서 책 아닌 다른 곳에 한 눈 팔지, 아니면 아예 치워버리고 다른 책을 보지, 하던 나였다. 전집 덕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는지도 모른 채 찾는, 아마도 ‘박상륭 읽기’를 하고 있다.

산문집이라고 해서 펼쳤는데, 이 글 속 목소리도 직접 저자가 나선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장편소설과 차이점을 크게 못 느꼈다. 공주를 납치하는 에켄드리아 독룡, 산해경의 이상한 동물처럼 이상한 인간들이 사는 이상한 세상을 떠도는 자라투스트라 등의 입을 빌려 세계에 대해 나름대로의 설명을 하려고 한다. 이원론은 그렇게나 싫은지, 늘 3개의 우주, 색, 삼각관계, 그렇게 셋을 위한 왈츠는 아니고 넋두리 같은 걸 독자 들으라고 잔뜩 적어놨다. 그리고 어딜 가든 열여섯 아름답고 무서운 소녀의 이미지가 따라온다. 주석도 안 보고 신화도 성경도 힌두교도 불교도 잘 모르는 나는 그냥 저자가 풀어놓은대로 말장난을 즐기며 따라가기는 따라갔다. 오랜만에 박상륭체를 읽으니 반가운 친구 내지 은사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읽었다고는 해도 뭐 하나 설명해 봐, 하면 아는 게 없고, 이거 읽었지, 하고 말 나눌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 책들이 있다. 고독한 읽기이지만, 나무 위 상자에 갇히고, 지하 굴속에 산 채로 묻히고, 발이 붓도록 계속 떠돌아야 하는 이야기 속 인물들만큼은 조금도 못 미치니, 엄살을 떨 수도 없다. 그저 박상륭 전집에서 ‘륭’(칠조어론)에 이어 ‘상‘(장편소설과 산문집)을 다 봤다, 이제 ’박‘(단편소설집)만 남았다, 자랑 아닌 자랑, 미련맞음의 전시, 연꽃 아닌 개망초 위의 보석(돼지 목에 진주, 소 귀에 경 읽기) 말고 내놓을 게 별로 없다. 단편까지 전집 다 읽고 나면, ’죽음의 한 연구‘를 한 번 더 볼까, 아주 나아아아아아중에, 생각을 하는데 ’칠조어론‘은 다시 보라 하면 살려주세요, 할 것 같다. 이렇게 저자가 꾼 악몽인지 길몽인지 계시몽인지 모를 꿈을 더듬더듬 짚어가는 중이다.


+밑줄 긋기
-한 삶(지바)이, 육신에 억류되기. 육신은, 헤쳐나가기에 그중 어려운(고) 바다(해)-그 한 바닷물은 죽음, 그 간단 없는 흐름은 노쇠, 풍랑은 병, 삶(지바)은 한 조각의 조그만 조각배, 를 뒤집어엎으려 덤비는 상어며 고래 떼는, 만족을 모르는 욕망, 마라, 이 궂디궂은 밤, 방위도, 그 거리의 멀고 가까움도 모르는, 피안을 향해 유정은 항해에 나섰으되, 차안 객줏집에 내걸린 흐린 등불 몇 개밖에, 세상은 왼통 어두움뿐이며, 쉼 없는 흐름뿐이며, 풍랑뿐이며, 배고픈 상어 떼며, 아으, 차안 객줏집에 내걸린 홍등 몇 개, (2620, 삶은 고해. 매번 반복되는 괴로움의 바다, 나에게는 한 번 뿐인.)

-하으 그러고 보니, ‘물질주의’가 일어난 날, 동시적으로, 공자가 이해하고 있는 그 ‘그림자’가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말이군입지. 조직이라든, 말입지, 제도라든, 말입지, 율법이라든, 말입지, 모든 자유스러운 정신을 억압하는, 끊어낼 수 없는 줄, 심지어는 운명보다도 더 강인한 줄-그런즉슨 아으 무정부주의 만세?(2644, ‘그림자를 판 사나이’도 있는데 이야기 속 웅공자는 그림자를 없애려고 온갖 애를 써도 실패한다.)

-어쩌면, 귀의 독후감 같은 것이라고나 일렀으면 싶은,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하려는 것인데, 그럼에도, 귀를 말하려 하며, 대략이라도, (귀에 관해) 밝힌 건 밝혀두고 넘어가야, 귀의 독후감이, 귀의 문맹자가 엮어내는, 같잖은 소리만은 아니라는, 그런 변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독후감’이란, 알다시피, ‘독서’를 전문 업으로 삼지 않은, 일반적 독자들의 어떤 책을 읽고 난 뒤의 감상을 이르는 것이기도 하여서, 열의 독자가 있다면, 열의 독후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수긍할 만하다 할 것인데, 독후감이란 그러니, 독자의 사견, 편견, 심지어는 맹안에 의존해 있음도, 쉽게 부정할 수도 있는 얘기는 아니다 할 것이다. 이 얘기는 그런 의미에서, ‘귀의 독후감’이라 이른 것이다. (2650, 귀를 읽기 전 미리, 독후감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지, 그러니 내가 오독해도 뭐라하지 마러, 이렇게 밑밥부터 깔고 시작한다.)

-자아란, 자기를 흘겨보는 눈을, 둘씩이나, 셋씩이나, 다섯씩이나 되게, 너무 많이, 그리고 크게 해 갖고 있는 것이 탈이다. 아니면, 저렇게나 광활한 우주를 내어다보려하며, 눈을 너무 적게, 그리고 작게 해 갖고 있게 된 것이 탈이다. (2674,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나나니(말벌)(2692, 둘은 완전 다른 벌 종류인데 나나니 나올 때마다 계속 말벌이 괄호로 따라다니는 게 저자의 주석인지 편집자의 주석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다르다.)

-그리고도 어쩌면, 모든 영혼들의 무게를 달아보러 오시는 이는, 따로 어디 밖에서 오는 자이기보다는, 유정들 각자가, 자기들의 영혼의 값을 매기는 자들이나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유정들 각자가, 자신들에 대하여 최후의 대심판관이 아니겠는가 하는데 말씀입지요,…...(2728, 구원은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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