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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일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4
장 주네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20260803 저자: 장 주네.
제목만 보고 기대를 너무 했나 보다.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에 도둑을 집어 넣은 이 남자는 무작위로 과거를 회상하며 두서없이 거쳐온 장소들과 남자들에 대한 썰을 풀었다. 그 모든 걸 아름다움으로 치장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딱히 재미있지도 않았고, 추한데 자꾸 보게 되는 그런 종류도 아니었고, 미감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이전에 읽은 ‘길 위에서’와 ‘폭력적인 삶’을 섞어 놓은 것 같았다. 넓은 지역을 떠돌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는 남자는 앞의 책을, 사랑을 갈망하는 가난한 남자는 뒤의 책을 닮아 있었다. 세 가지 책의 공통점은 아저씨들이 썼고 민음사 세계명작 시리즈이며 두꺼운데다 매우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화자는 남자에 미친 새끼이다. (그가 생각하는) 강력한 남성성을 지닌 사람에게-그가 범죄자이든 경찰이든- 금세 사랑에 빠진다. 다만 그 넓은 사랑은 남성에 한정이라서, 그의 이야기에 여성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자기가 사랑한 남자가 착취하며 사는 성매매 여성 정도가 가끔 등장한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인류애 같으면서도 반쪽 짜리이다.
도둑질, 강도짓, 성매수자 쫓아가 협박해서 돈 털기, 살인, 사회에서 말하는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도 그런 삶의 형태를 성스러운 것으로 표현하고, 심지어 신성모독으로 보일 만한 생각도 하는 인물들과 화자를 보며 어떤 감흥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덤덤했다. 이거 이미 이백 몇 년 전에 사드가 하던 짓이잖아. 걔는 귀족이었다만 감옥 가고, 성적 스캔들 일으키고, 나중에 사회운동(혁명)도 하고, 뭐 그런 비슷한 점들이 보였다. 나는 너무 매운 걸 많이 먹어서 이제 웬만한 건 암시롱 안 혀.
어려서 이십 년 가까이 살던 셋집에는 도둑이 여러 번 들었다. 부모가 금은방 하다보니 왠만한 건 가게 금고에 있었지만, 외국에서 노동하던 삼촌들이 사다 준 향수병들, 코니카 카메라, 수집한 외국 잔돈, 나와 동생이 모으던 저금통 같은 게 사라졌다. 뭔가 없어진 것도 안타깝지만 집이 그야말로 이것저것 빼내던져 난장판이 된 모습이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다. 신발을 신고 들어와서 밥상에 쭈그리고 앉아 발자국과 청바지의 엉덩이 자국을 고스란히 남긴 도둑, 현관 유리를 부수고 문을 따고 들어온 도둑, 지하실과 연결된 뒷문을 열고 들어온 도둑... 누군가의 침범은 내가 사는 곳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다. 물론 집안에도 이미 위험요소(=아빠)가 있긴 했지만…
부모의 가게에도 여럿이 와서 손님인 척 정신을 빼놓고 그 사이 진열장을 열어 물건을 빼가거나, 앉아서 잠시 밥 먹는 중에 소리없이 들어와 귀걸이 진열대를 통째로 들고 달아난 도둑들이 있었다. 나와 내 동생의 동갑내기이던 옆집 자매도 자잘한 물건이나 돈을 우리집에서 꺼내가고, 자매 중 동생은 내 동생의 열쇠를 훔쳐 빈집을 열고 들어오다 다행히 엄마가 집안에 있었어서 잡았던 적도 있다. 도둑 이야기하면 다들 이렇게 뭔가 털려 본 경험이 있을까… 아니면 내가 열악한 동네 살아서, 아니면 운이 없어서 그렇게 도둑을 많이 겪은 건가 잘 모르겠다.
이 책 제목은 ‘도둑 일기’이지만 사실 ‘도둑의 사랑(들)’에 더 가까웠다. 물건 훔치고 교도소에서 지내는게 일상인 화자는 정작 좋아하는 상대로부터 마음은 제대로 못 훔쳤다. 오히려 홀따닥 사랑에 빠져 상대도 정말 날 좋아할까, 얘를 배신할까 말까, 애태우며 내내 주체성이나 주의력을 도둑맞은 모습이었다. 뭐 하고 싶은 대로 하다 그 이야기들을 도둑이 싸 놓은 똥처럼 글로 남겨놓고 갔으니, 그리고 변태 문인들이 칭송도 해 이름도 남겨줬으니 스스로는 살만한 삶이었을 것 같다. 다만 고통이나 절망의 정서는 의도적으로 숨긴 것인지, 정말 그런 감정을 강렬하게 느끼지 않은 것인지 글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이미 문인이 되고서 회고하듯 과거 이야기와 지나간 사람들에 대해 쓰다보니 그렇게 설탕가루 뿌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성애 사랑들을 이렇게 나열해 놓았다면 정신 사납고 진부하고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고 할 것 같아서 갑자기 소수자성에 샘이 나기도 하는 이상한 정신이 되는 독서였다.
+밑줄 긋기
-나는 너무나 무거운 슬픔을 몸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생을 계속 그렇게 떠돌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방랑은 단순히 나의 생애를 장식하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104, 책 내내 장은 스페인,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 곳곳을 떠돈다.)
-독자들은 분명 이 책에 실망할 것이다. (145, 진작 알았으면 됐어.)
-그의 부드러움은 저절로 얽히고 수축되며, 또 여러 겹으로 포개져 하나의 무서운 용수철로 변할 것이다.
“형이 나를 버리면 난 미칠 거야.”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야말로 깡패 중에 가장 난폭한 깡패가 될 거야.” (209, 누구나 사랑을 잃으면 가장 난폭한 깡패가 되지.)
-그래서 나는 그가 나의 남창 경험을 알고, 그것을 인정해 주기를 요구했다. 그가 가장 비열한 나의 절도 행위들을 상세하게 알고, 그 때문에 그 자신이 심적 고통을 겪고, 또 그런 행위들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의 출신, 나의 비역질, 나의 비겁한 행동, 허옇고 엉큼한 얼굴의 늙은 도둑년을 어머니로 갖기 원하는 나의 괴상한 상상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구걸하러 다닐 때의 태도, 거지들이나 일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말하자면 거지들에게 일상적으로 통하는 , 거짓으로 변조한 탁한 음성, 남색가를 유혹하기 위해 꾸며 낸 교묘한 수단들, 히스테릭한 남창으로서의 거동, 미모의 젊은이들을 상대할 때의 부끄러움, 그들 중 한 젊은이가 대담하게 나의 사랑을 거역하던 장면, 어떤 깡패가 내게 은총을 베풀던 장면, 프랑스 영사관 직원이 내 모습을 보고 코를 막던 장면, 유럽 각지를 떠돌면서 누더기를 걸치고 허기와 모욕과 피로와 추악한 사랑 놀이로 계속 되던 끝없는 여행….... 이 모든 것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239-240, 뤼시엥이 알길 바라는 것이 동시에 독자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 같다. 여태 읽은 이 책 내용은 이 문단 하나로 요약 가능하다. 누더기와 비참함에 미사여구를 더덕더덕 붙였다 정도)
-배반과 절도와 동성애가 이 책의 근본 주제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관련이 있다. 그 관련성이 언제나 명백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배반과 절도와 동성애에 대한 취향 사이에는 어떤 밀접하고 상호적인 교류가 있음을 인정한다. (245, 본인 한정 아닐까...혐오 멈춰)
-나 역시 모든 종류의 방탕한 삶을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절망한 자의 자유로움과 단순한 멋을 가지고 있다. 나의 용기는 모든 인습적인 삶의 존재 이유를 저버리고 새로운 삶의 목적을 발견하는 데 있다. 그 발견은 서서히 이루어졌다. (250-251, 따르고 싶진 않은 방향이지만 자기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멋져…)
-그는 도덕에 관한 이야기를 건넸다. 모든 행위를 미적 관점으로만 보고 있던 나로서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덕주의자들은 나의 행동을 악의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들의 선의는 나의 악의와 충돌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어떤 행동들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그들이 증명해 보여 줘도, 나는 단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노래를 통해 그 행동들이 아름다운 것인지 혹은 우아한 것인지 판단할 것이다. 오직 나만이 그것을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나를 정해진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없다. (277-278, 삶을 극단의 예술로 살면 이렇게 될 수도…)
-나는 이 세계와 대립하고 있다. 이 세계는 나를 구속하고 재단하면서 상처를 주고 날카로운 각을 내세운다. 그것은 내가 오려 낸 형태보다 더 날카롭고 더 잔혹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아름답고 더 찬란한 존재가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행위가 완성될 때까지 그것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그것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든 그 끝은 아름다워야 한다. 어떤 행동이 추잡하게 보이는 것은 그것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310-311, 완성의 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