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의 물질 -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발견하다
수지 시히 지음, 노승영 옮김 / 까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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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1 저자: 수지 시히.

겨울 경주 여행 때, KTX 신경주역에서 경주 시내로 들어서는 버스 바깥 풍경에 ‘양성자 가속기’란 글자가 새겨진 건물이 보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방폐장 설치에 대한 지원 차원에서 양성자 가속기 연구소를 그곳에 설치했다고 했다. 원자의 구성 물질 중에 양성자가 있다 정도만 알았지, 그걸 가속해서 뭐 어디다 쓰는지는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크지 않았다.

같은 번역가의 수학에 관한 책을 읽다 포기하고, 새로 펼친 과학책, ‘세상 모든 것의 물질’이란 제목만 봤을 때는 화학 관련 책일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물리학, 그것도 입자물리학이라고… 차례에서 뭔 트론트론 하는 가속기들과, 광양자니 힉스 보손이니 하는 이름들이 등장했고, 난 연속으로 이과빔 맞은 문과멍충이가 되나 싶어 조금 심란했다.

걱정한 것에 비해 이 책은 읽기가 아주 까다롭진 않았고, 그동안 봐 온 과학사 책들처럼 더 작고 더 파악하기 힘든 입자를 찾아 분투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었다. 읽고 나니 화학, 물리학 이런 것 배우는 학생들이나 거기 관심있는 아무나 볼 만한 좋은 내용의 책이었다. 다만 도무지 유혹적이지 않은 표지 디자인과 서체는 조금 아쉬웠는데, 친구들과 ‘까치가 까치한다’표현할 정도로 책의 매력도를 올려주지 못하는 겉모양새였다.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를 보고 소설 아니고 과학책이라고 착각하고 펼쳐 본 사람이 (만약) 있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엑스선에서 시작해서, 빛은 입자야, 원자는 더 쪼갤 수 있어, 쪼갠 걸 더 쪼갤 수 있어, 전압 왕창 올려서 가속기를 만들게 돈 줘, 그럼 뭐가 있나 계속 깨볼게, 이런 걸 찾아내기 위해 긴 시간, 때로는 일생을 바친 과학자들이 참 많이 등장했다. 위인전 같은 데서는 유명 과학자 이름만 툭, 한 명 던져주니 그 위업을 마치 한 사람이 달성한 것 같지만, 이 책은 입자에 관한 많은 발견이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시간과 고생과 삽질과 돈과 지능이 합쳐져 이룬 일인 걸 강조한다. 책의 말미에도 모두가 협력하면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낙관을 담은 저자의 연설을 요약해 담아 놓았다.

그렇지. 혼자 되는 일은 없다. 저 높은 건물들도, 내가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는 모바일기기와 인공지능들도, 여러가지 과학사적 발견을 알려준 이 책도 무척 많은 사람들이 이뤄서 내게 닿은 것들이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뭐든 혼자 해결하고 싶고 최소한으로만 사람을 만나고 싶다. 우린 이걸 우울증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알고 싶고 찾고 싶은 집념에 의기투합해 실제로 원하는 것을 얻은 사람들은 이 책에 적혀 있지만, 거기 가는 과정에서 실패하고 그렇지만 그 실패로도 발견의 밑바탕에 도움을 줬을 책에 안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자꾸 실패만 해도, 그게 다 무용하다고 징징대지는 말아야겠다. 물방울 모여 바다를 이루고, 모래 흙 돌 모여 큰 산을 이루듯 나도 인간이란 바다와 산을 이루는 습기이고 먼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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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컨에는 이진수 신호를 비가시광선(적외선)형태로 보내는 LED(발광 다이오드)가 들어 있다. 우리가 단추를 누르면 광자가 리모컨에서 튀어나와 에어컨에 장착된 검출용 광 다이오드를 때리며-밀리컨의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이 광자는 운동 에너지를 부여하여 전자를 풀어준다. 광 다이오드는 반도체라는 물질이 두 개의 층으로 접합된 것이다. 이 접합부는 전기가 한쪽 방향으로 더 수월하게 흐르도록 함으로써 광 다이오드에 빛이 쬐이면 전기가 흐르도록 한다. 에어컨은 이진수 패턴을 해석하여 우리의 명령을 따름으로써 받아들인 전기신호에 반응한다.(78-79, 며칠 전 작은 어린이가 어떻게 리모콘이 작동되는지 물었는데 이걸로 설명 될까…)

-1932년 입자 가속기가 원자를 쪼개는 데에 성공한 그해에 자연에서 발견되는 기본 입자의 목록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전자와 그 반물질인 양전자, 그리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발견되었다. 이 입자들은 모두 나눌 수 없다고 생각되었으나,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양성자와 중성자에도 내부 구조가 있음이 밝혀진다. 빛의 입자인 광자가 도입되었고, 불과 4년 뒤에는 전자와 양전자의 무거운 사촌인 양성 뮤온과 음성 뮤온이 발견되었다. (153, 지난 이야기를 간단히 한 번 정리해 주심)

-중성미자는 호기심에 이끌린 연구가 현실에 응용된 사례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고전적 사례이다. 전자기력을 통해서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날쌘돌이 전자나 강력을 통해서 원자핵과 상호작용하는 중성자와 달리 전하가 없고 질량도 거의 없는. 중성미자는 감지될락 말락 하는 연기같은 입자로, 거의 아무것과도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실험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발견이 어떤 쓰임새를 가지게 될 지가 늘 명백한 것은 아니다. (251, 거대한 규모의 검출기 실험으로 겨우 찾은 중성미자가 아직은 쓸모를 못 찾았음을 당당히 인정… 나중에 새로운 닉네임 쓰게 되면 중성미자라고 해야지.)

-입자물리학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기는 했지만 입실론은 밑바닥에서 단순성이 드러나고 있음을 확증했다. 그것은 자연에 유쾌한 대칭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이론이었다. 존재하는 것은 6개의 렙톤(전자, 뮤온, 타우, 그리고 이들의 중성미자)과 6개의 쿼크(위, 아래, 기묘, 맵시, 바닥, 꼭대기)였다. (290, 이 부분을 그림 하나로 그려둔 게 생각나 어린이 책 ‘처음 읽는 양자물리학’을 찾아보니 입자들에 대한 표기는 조금 다르지만 하여간에 있었다. 생긴 건 어린이 그림책이지만 제목부터 어린이 책이 아닌 걸로…나중에 이것도 읽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도박보다는 공짜 음료를 들고 테이블 주위에 모여 종이와 펜으로 스케치나 계산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쪽을 좋아했다. 그들은 승리가 보장된 유일한 도박 수를 (사전 모의 없이) 집단적으로 선택했다. 그것은 도박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호텔은 그 주에 최악의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학술대회가 호텔에 얼마나 큰 재앙이었던지 대회가 끝날 무렵 라스베이거스 시는 물리학회에 다시는 오지 말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 이야기가 진짜라는 것은 내가 보증할 수 있다. (304, 잭팟 도파민을 이기는 물리학 도파민…)

-표준모형이 믿기 힘든 성공을 거두기는 했어도 우리의 방정식은 중력을 나머지 모든 힘과 조화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우주가 하나인지, 우리가 이른바 “다중우주”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고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왜 반물질이 아니라 물질에 둘러싸여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우주에 스며 있는 암흑물질의 성질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338, 뭘 아는지도 아직 잘 모르지만,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X선 촬영은 말할 것도 없고 방사성 연대 측정, 무선 리모컨, 전자 현미경, 뮤오그래피, 가속질량 분석법, 반도체 제조, PET촬영, 물질 구조 분석, 백신 개발, 입자 요법, 핵개발 감시, 방사선 요법, MRI촬영, 그리고 뜻밖에도 월드와이드웹까지 수많은 분야가 입자물리학과 가속기물리학으로부터 탄생하거나 막대한 도움을 받았다. (384, 역자 후기에서 이 책 속 발견이 기여한 사례들을 정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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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8-02 0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까치가 까치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6-08-02 13:04   좋아요 1 | URL
좋은 책이 가지가지 많은 곳이죠ㅎㅎ표지만 까치즘 벗어나야... 많이 읽히면 좋겠는 책이에요.